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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쟁점및이슈분석] 선교가 촉매가 되는 교회

선교가 촉매가 되는 교회
이재훈 목사(온누리교회)
‘교회 없는 선교’, ‘선교 없는 교회’의 위험성에 대한 롤렌드 알렌의 경고는 우리에게도 뼈아프게 다가온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서구교회가 걸어온 길을 따르고 있지는 않은가? 교회의 본질로서 사도적 기능을 진지하 게 고민하고, 교회의 조직과 기능, 그리고 사역에 선교적 본질과 역할을 구현해 내고 있는가? 우리는 서구로 부터 배운 교회조직과 구조, 그리고 전통에 지나치게 묶여 있지는 않은가? 또 선교단체는 선교를 자신들만의 전문영역으로 생각하고 장벽을 쌓고 있지는 않은가? 한국교회는 지금 갱신의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교회를 어떻게 선교적 구조와 기능으로 변화시킬 것인가? 열방과 타 문화권을 향한 선교적 책임뿐 아니라, 교회가 지역 사회안에서 그리고 다음세대에 대해 어떤 선교 적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지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현실에서 교회는 통일 문제를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교회가 민족의 분단문제에 대한 선교적 책임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때, 향후 한 국사회가 교회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가 결정될 것이다.
2015년 11월, 설악산 켄싱턴 호텔에서 “대형교회의 선교책무”라는 주제로 열린 KGMLF 포럼은 온누리 교회가 위와 같은 쟁점을 다시 한 번 진지하게 고민해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고 하 용조 목사는 온 누리 교회를 개척할 때부터 선교 중심의 교회를 꿈꾸었다. ‘예수님이 주인 되시고 성령님이 이끌어 가시는 바로 그 ‘교회’, ‘사도행전적 교회’의 꿈은 변할 수 없는 온누리 교회의 비전이다. 필자도 온누리 교회 2대 담 임 목사로 취임하면서 “사도행전적 선교영성”은 온누리 교회가 견고하게 붙들어야 할 닻과 같은 비전임을 선 포한 바 있다. 필자가 볼 때 고 하 용조 목사는 온누리 교회를 시작할 때부터 매우 독특한 실험을 시도했다. 즉 교회 개척 초기부터 많은 선교단체들을 후원하고 협력하였을 뿐만 아니라, 온누리 교회가 두란노 서원, 두 란노 해외 선교회(TIM), CGN TV, 더 멋진 세상 등 선교단체를 설립하여 선교에 직접 참여하는 모험을 한 것 이다. 물론 이처럼 교회가 직접 선교에 참여하는 모델은 단점도 있다. 특별히 선교현장에서의 전문성 결여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 그러나 이러한 교회와 선교의 융합구조는 교회가 타문화권과 직접 접촉하고, 그들 의 필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그들과 소통하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하고 영적 긴장과 창의성을 발휘 하게 하는 장점이 있다. 선교적 비전이 이끌어 가는 이러한 교회모델은 교회의 다른 기능인 예배와 양육, 공 동체적 요소에도 활력을 불어넣고, 방향성을 부여한다.
필자의 이러한 생각은 지난해 호주의 선교학자이자 선교실천가인 마이클 프로스트와 앨런 허쉬가 지은 「모험으로 나서는 믿음」이라는 책을 만나면서 더 다듬어 졌다. 프로스트는 이 책에서 교회의 여러 기능 중 선 교적 기능이 촉매(catalyst)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는 교회의 본질적인 기능을 크게 예배, 공동체, 제자도, 선교 등으로 분류한다. 이 네 가지 기능은 다른 기 능으로 대체할 수 없는 교회의 본질적인 기능이다. 이중 어떤 기능도 다른 기능보다 우위에 있을 수 없다. 교 회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이 네 가지 기능은 반드시 필요하다. 또 서로 깊이 연관되어 있을 뿐 아니라 서로를 자극한다. 그러나 프로스트의 시각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즉 이 네 가지 중 하나를 우위에 놓을 수는 없지만, 한 기능이 다른 기능을 촉진시키고, 활성화시키는 촉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 한 촉매의 기능을 선교가 담당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 사도행전과 초대교회는 이렇게 선교가 촉매로 작용하는 교회였다. 그러나 4세기에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선포되고, 중세시대를 지나면서 예배(미사)가 교회생활의 중심에 놓이게 되었고,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되었다. 공적예배에 규칙적으로 출석하는 것을 신앙생활의 전부로 여겼고, 다른 기능은 부수적인 요소가 되 거나 잊혀졌다. 결국 이렇듯 많은 기능이 사라진 교회모델이 선교사들을 통해 전 세계에 전해졌고, 오늘날 한 국교회도 여전히 이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사에서 제자도가 촉매가 되어 형성된 교회모델이 흔치는 않지만, 재세례파의 모델에서 제자도가 촉매 기능을 하는 교회의 또 다른 모델을 만날 수 있다. 재세례파는 급진적 제자도를 실천하고자 했던 그룹들로 많 은 사람들에게 호감과 도전을 주는 교회분파다. 그러나 선교라는 외부 지향적 추진력을 상실한 그들의 제자 도는 결국 도피주의적이고 분리주의적인 사적 경건주의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난 세기 교회론 논쟁을 통해 우리가 새롭게 발견한 것이 무엇인가? 기독교 공동체는 공동체 밖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도록 세상에 보냄 받은 선교적 공동체라는 것이다. 프로스트는 선교가 촉매가 되 는 교회모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선교가 다른 것들을 인도하고 지침을 내려줄 때, 예배가 우리의 세계를 하나님께 바치는 행위로써 참되게 이해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선교가 제자도를 인도하면, 그리스도를 더욱더 닮아 가는 것이 그저 편협한 경건주의의 성향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구원과 성화 가운데 하나 님께서 우리의 세상에 구원의 씨앗을 심어 놓으신 것이라고 인식하게 된다, 선교가 다른 사람들과 동행하는 우리의 삶을 인도하게 되면, 우리는 공동체가 더 이상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는 것을 깨닫게 된다. 공동체는 나로 하여금 공동체 안에서 예수님을 섬기게 하고, 공동체 자체는 세상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프로스트의 이러한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그는 선교가 촉매의 기능을 수행하면 교회의 다른 기능 들이 축소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강화 될 것이라고 말한다.
온누리 교회는 창립 30주년을 맞아 지난해부터 사도행전을 다시 강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는 사도행 전의 교회야말로 선교가 촉매가 되어 거침없이 세상속으로 나아가 하나님 나라의 영향력을 확산했던 선교적 교회의 원형이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교회는 지금 커다란 도전 앞에 놓여 있다. 교회가 더 이상 세상에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소통하는 방법도 잃어버린 듯하다. 우리는 그 원인을 교회 밖, 급변하는 세상에서 찾을수도 있겠지만, 교회내부를 성찰 하는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 어쩌면 우리가 교회의 본질인 세상에 대한 책임과 부르심을 잊어버렸기 때문이 아닌가? 우리는 너무 자기 중심적이고 내향적인 공동체가 되어 버린 것은 아닌가? 우리는 교회가 지역사회를 향한, 그리고 열방을 향한 선교의 소명을 어떻게 끌어안을 수 있을지 더 진지하 게 고민해야 한다. 이 땅의 순례하는 공동체로 부름받은 교회는 선교적 긴장감과 종말론적 시각을 가지고 교 회의 본질을 다시 성찰해야 한다. 그럴 때 한국교회는 다시 한번 민족과 세계와 다음세대를 향해 선교적 소명, 즉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실현해 가는 변혁적 소명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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