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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JFM] 한반도의 통일과 북한의 주체사상 해체에 대한 선교적 연구

명드보라

복음수용 연구를 위한 주체사상의 기저사상 이해

1. 구조주의

1.1 구조주의 태동 및 역사적 배경

여기에서는 구조주의를 이해하기 위해 그 사전적인 정의를 처음부터 주기 보다는 그것이 어떻게 발전하고 의미를 갖추어 가는지 살펴보는 과정 가운데 이해할 수 있도록 전개하기로 한다.

20세기 후반의 현대사상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와 불우한 일생을 보냈지만 20세기 들어 대 활약한 경제철학자 마르크스는 주체사상의 토대를 형성한 인물이다. 이들이 등장하기까지 역사적으로 어떤 영향력 있는 사상적 발전이 있었는지 요약해 본다. 그 이유는 역사의 발전적 기승전결의 이해가 앞으로 만들어 갈 역사적 행보를 준비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교훈이자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한 사상적 조류의 시작으로 19세기 ‘나폴레옹의 전쟁’을 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나폴레옹은 18세기의 계몽주의에 빠진 조국을 바로잡아 프랑스를 개혁하려는 정신을 가지고 전쟁을 시작했다. 마침내 독일의 여러 도시에서 승리를 거두고 예나(Jena)에 입성해 말을 타고 행진하는 나폴레옹을 보고 젊은 헤겔은 “저기 세계정신이 간다”고 속삭였다고 한다.(Foucault 2012, 132)

역사의 변곡점에 서 있던 또 다른 인물은 헤겔이다. 헤겔은 1832년 사망했지만 19세기 전반 및 그 이후에도 그의 철학이 세계의 사상기류를 지배했을 만큼 영향력을 행사했다.1) 그러나 시대의 관심은 철학에서 사회학으로 옮겨갔고 이런 과정에서 칸트(1724-1804)가 사후 재평가 되었다. 종래의 철학은 형이상학의 경험주의였는데, 그는 이성이나 판단력의 한계를 분명히 하여 착상이 사변 속에 말려드는 것을 막으려고 한 사람이다. 사람들은 칸트의 비판철학분석(신칸트파들의 업적 중) 과정에서 ‘자연과학에는 법칙이 있고 문화과학에는 개성이 있다’라고 하였다.2) 이 테두리에서 수학과 자연과학을 철학화한 것이 마르부르크(Marburg)학파이고, 문화과학을 중심으로 철학화한 것이 바덴(Baden)학파이다. 이 두 학파가 대학 철학교수의 자리 대부분을 차지할 즈음에 그는 바젤대학에서 강의를 접고 저술에 전념하였고, 또 한 때는 바그너 음악과 쇼펜하우어 철학에 도취했으나 곧 환멸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Foucault 2012)

그 후 기독교가 노예의 원한을 숨기고 있다고 판단, 근대문명의 이면 세계를 찾으려 했으나 드러나지 않는 정신의 이면에 있는 무의식을 체계적으로 분석하여 의식화한 지그문트 프로이트(Sigismund S. Freud)가 등장한다. 프로이트는 갈리치아(체코슬로바키아령)의 유대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빈 대학에서 수학하였다. 또한 이런 프로이트에게 영향을 받은 프롬(Erich P. Fromm)은 단순하게 심리를 대상으로 하지 않고 사회 및 경제 조건도 고려했다는 점에서 프로이트와 마르크스를 통합했다고 평가된다. 그는 후에 정신분석과 윤리의 결합을 시도했다. 그는 1942년에 파시즘을 분석한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내어 놓았다.(Fromm 2012)

프로이트는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의식에 의해 인간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고, 이 주장은 20세기 후반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19세기에도 의식·무의식이란 용어는 사용하지 않았지만 이 생각을 독특한 형태로 전개한 인물이 마르크스다. 그는 ‘하부구조’, ‘상부구조’, ‘생산양식’이란 언어로 표현했으며 토대가 되는 하부구조(경제)의 중심적 개념은 ‘생산양식’이며, 상부구조는 정치, 사회, 이데올로기를 귀정한다는 단순한 골격을 만들었다.

하부구조의 생산양식은 생산력과 생산관계로 이루어지는데 곧 계급관계와 비례하는 것으로 본다. 이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숨겨진 곳에서 인간의 행동을 조종한다는 것이다. 현재 북한은 시장에서 자본을 생성한 신흥계급들이 생겨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사회주의자들이 자본시장경제에 대해 기피해왔던 이념적 한계는 현실에 더 이상 맞지 않음을 스스로 방증하고 있는 것이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Critique de la Raison pure) 중 “시간은 더 이상 연속성에 의해 정의되지 않는 것”으로 연속성이라는 것은 오로지 시간 속의 사물들, 시간 속의 운동들과만 관련된 성질로 본다. 왜냐하면 시간 자체는 사물들과의 관련 가운데에서만 정의될 수 있기 때문이다.(김재호 2004, 114-115)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 자체를 연속성이라고 주장한다면, 시간은 또 다른 시간 속에서 무한정으로 연속해야 한다는 결과를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와 반대로 사물들은 계속 연속한다고 칸트는 정의한다. 동일한 시간 속에서 동시에 있기도 하며 또 어떤 시간 속에서는 그대로 머물러 있기도 한다.

1.2. 구조주의의 영향

구조주의는 과거의 사상철학이라는 닫힌 공간을 벗어났다. 그것을 벗어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구조주의의 일부는 사회주의 이론에 교묘하게 흡수되었고 학습되었다.

소련이 붕괴되었을 때 구조주의도 한 물 갔을 것이라 여겨졌지만 그것은 놀라운 속도로 사람과 국가, 기관을 통제하는 경제 시스템으로 옮겨와 시장경제 아래 움직이는 자본주의 국가들의 전 영역으로 스며들기 시작해서 지금은 사회주의 보다 더 무섭게 직접 문제의식을 가지고 느끼지 못하게 인간의 삶을 통제하고 있다. 즉 전 지구의 어느 곳에서라도 번역본을 읽으며 인간의 존엄성을 기계화한 구조적 인식에 매력을 느끼도록 사람들의 생각과 삶 속으로 흡수되고 있다.

특이한 것은 북한은 공간을 폐쇄한 상태에서 구조주의를 유지 보존하고 있으나, 열린 세계에서는 거꾸로 통제되고 닫혀진 인식이나 사상에 대한 도구들을 수용하는 아이러니 가운데 있다. 루이 알튀세르(Louis Althusser)는3) 구조주의에 마르크스 주의를 적용 재구성한 인물이다. 그는 구조주의에 마르크스 이론을 적용 재구성했지만 실제 유물사관은 구조적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단지 그는 이것을 자신의 시각으로 재구성하였다.

1.3. 구조주의 영역 접근방식

여기서는 구조주의가 무엇인지 간략하게 살펴보고 구조주의가 어떻게 주체론과 연결이 되는지 밝혀보자. 그 이유는 통일 전후의 한반도에 단일 국가 정체성을 새롭게 갖게 될 때 주체론은 북한 주민들의 인식과 삶에 박혀 이질적 사회와의 통합에서 열등한 집단으로 남게 될 것에 대한 우려이고 더 나아가 통합사회에서 진보적인 삶에 적응하기 위해 한반도 공동체가 다 함께 안고 가야 할 숙제이기 때문이다. 주체론을 해체하면 통일을 앞당길 수 있다는 피상적이고 순진한 이야기는 피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주체론에 대한 정확한 인식은 주체론 해체 이후, 남·북의 화합을 위한 새로운 삶의 적응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을 기대한다. 실체를 대략 긍정하는 것과 실체의 본질을 알고 다음 행보를 결정하는 것은 ‘삶의 질’과 ‘신앙의 행동화’라는 의미를 되짚어 보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경의이기도 하다.

구조주의가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 구조주의를 설명하는 접근방식에 익숙해져야 한다. 구조주의는 그 형태가 그대로 제기되지 않고 변형을 거쳐서 제기 되기 때문에 여기서는 누가 구조주의자인가를 먼저 거론했다. 구조주의 기원은 언어학이다. 체계라는 용어를 구조주의에 사용한 소쉬르(Saussure)와4) 모스크바학파와 프라하학파로 시작된 구조주의는 다양한 영역으로 확산되었다.

구조주의는 들뢰즈에 의하면, 1) 상징적인 것, 2) 장소와 위치, 3) 차등적인 것과 특이한 것, 4) 차이화하는 것, 5) 계열적인 것, 6) ‘주체에서 실천’으로의 항목을 통하여 인지할 수 있음을 설명하고,(Deleuze 2007)5) 라캉은6) 심상 혹은 상상계(the Imaginary), 기표 혹은 기호계(the Symbolic), 원초 혹은 실재계로(the Real) 이루어지는 주체의 인식과 소외가 일어나는 공백의 개념으로 설명한다.(어도선 1998, 27)

이러한 정의에 따르면 구조주의는 결코 주체를 떠날 수 없다. 즉 구조주의는 주체를 분산시키며 체계적으로 분배하는 사유, 주체의 동일성에 저항하는 사유, 주체를 흩뜨리며 이리저리 이동시키는 사유, 그리하여 비인격적인 개별화나 선-개인적인 특이성을 가지고서 언제나 유목적인 주체를 만드는 사유이다.(Deleuze 2007, 415) 푸코가 분산을 거론하는 것에 이와 같은 의미가 있다.

2. 구조주의와 주체

2.1. 주체 용어의 기원

주체사상의 기저는 언어학에서 출발했다.(Deleuze 2007, 364) ‘체계’라는 용어를 사용한 소쉬르(Saussure)와 모스크바 학파 및 프라하 학파로 시작된 구조주의가 이후에 다른 영역으로 확산되어갔다. 구조주의에서 언어는 발성을 넘어 의식과 무의식의 언어의 구조를 가리킨다.

주체론의 바로 이전 단계의 모체가 되는 마르크스의 유물사관에 영향을 받은 물질에 관한 해석은 “사물들 또한 그들이 기호의 언어라 할 수 있는 일종의 침묵의 이야기를 유지하는 한 구조를 지닌다”고 주장하므로(ibid. 365) 우리가 통상 이해하는 ‘누가 구조주의자인가(형태)’ 라는 접근만으로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비가시적이고 비감각적인 구조로서의 ‘언어적인 것들’을 말하는 것이라고 들뢰즈는 주장한다.

이는 이념이라는 이름과 별개이지만 2012년 현재까지 이런 사상적 기류를 형성하는데 명맥을 이은 푸코(Foucault)의 저술들이 직간접적 영향을 주고 있다.(Foucault, 2007; 2010; 2012) 한 예로 푸코가 연구한 “니체, 프로이트, 마르크스”에서 니체는 새로운 개념과 해석방법을 제시하였다고 여기는데, 그것은 기호(signes)는 유비의 공간을 만들어 가는 속성이 있다는 것이다. 공간은 기호를 품고 분배되며 계속 비슷한 기호들의 공간이 생성되며 그 공간은 다른 모습으로 바뀌면서 이전의 첫 의미가 현재는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드러나게 되는 그런 새로운 ‘깊이(profondeur)’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더불어 모든 해석은 동일한 가치를 지니지도 않고, 동일한 평면 위에 있지 않다고 한다.(Deleuze 2007, 223) 즉 그는 해석과 의미의 복수적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기호의 해석은 다른 해석 속에 숨겨져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해석은 이제 더 이상 기준이나 참과 거짓의 좌표가 되는 것을 소유하지 않으며 그것의 의미가 무엇인가가 중요하지 않고 누가 그 의미를 부여하는가를 물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신은 죽었다라고 말한 이 사람들의 영향은, 사회주의에서는 유물론과 주체론으로, 자본주의에서는 기호와 시스템(system)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와 문화 속에 얽혀있다.

같은 의미가 사회주의 안에서는 소수의 권력자가 집단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민주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사회집단의 경쟁구도 안에서 개인의 욕망과 편리를 위한 상반된 목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구조주의는 언어학에서 시작되어, 보이는 구조의 문제와 방법, 해결에 대한 영역들 간에 외적으로 비슷해 보이는 유비관계 보다 더 근본적인 관념과 이념으로의 ‘구조’를 겨냥한 것이다. 참과 거짓에 대한 의미가 없는 것을 연구하는 인간이성은 어디에 사용하기 위함인가 본인은 묻게 된다.

2.2. 주체론 개관

그것은 레비스트로스의 역사관에 의하면 주체는 포지션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고 구조주의에게서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정신구조의 보편성에 관심을 두고 있었으며 거기에 ‘주체’의 포지션을 둔 것이다. 그가 연구한 배경은 18세기와 20세기에 이르는 자신의 시대까지의 관찰이었다. 레비스트로스의 ‘나’라는 존재는 관계에서 존재한다고 주장했으며 황장엽의 인간론에서는 ‘발전적 주체로서의 인간은 사회적 관계와 자기보존을 위한 운동능력의 강화로 다른 대상을 끌어 당겨 자기 존재를 강화한다’고 하였으니 누구도 황장엽이7) 레비스트로스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다.(황장엽 2008, 46) 사실 영향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레비스트로스가 사용한 용어를 차용하여 독재 정권 유지를 위한 주체론으로 발전시켰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2.3. 황장엽과 레비스트로스

1920-1930년대의 마르크스와 프로이드, 1950년대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 및 1960년대의 사상구조가 다음과 같은 연유로 황장엽의 용어구조에 접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 레비스트로스는 타인의 시각에서 개인의 존재 구조를 보며 인류학을 발전시킨 공로가 있다. 2012년 현재 선교적 용어로 사용하는 내부자 및 외부자적 관점이라는 용어는8) 이미 1950년대 레비스트로스의 용어에서 발견된다고 할 수 있다.(Lévi-Strauss 1998)

둘째, 레비스트로스는 ‘주체’라는 용어를 구조주의에서 사용하였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틀 안에 갇힌 의식을 깨지 않으면 그 구조에서 나올 수 없다는 그의 말은 토마스 쿤(Thomas S. Kuhn)의 패러다임과 상응한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Kun 1999) 즉 패러다임 전환이 의식의 전환이기 때문이다. 이는 인류학자와 과학자 간의 다른 용어를 사용한 것이지 다른 의미는 아니다.

셋째, 황장엽은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로부터 인간의 사유와 인식이라는 인간의 정신구조에 관심을 가진 것을 면밀히 관찰한 것으로 보인다. 즉 레비스트로스는 한 문화집단의 정신구조의 보편성에 관심을 가졌고 황장엽이 이 같은 집단 문화를 읽고 인식하는 것은 다른 문화와 집단에서 들어온 외부자의 해석과 인식이 내부자들에게는 전혀 다른 기호가 될 수 있음을 우리에게 설명하고 있다.

넷째, 레비스트로스의 뒤를 이은 푸코와 들뢰즈의 나폴레옹 대관식에 대한 해석은 이를 쉽게 설명한다.(우치다 2010)9) 나폴레옹에게 왕관을 씌워주는 순간 왕으로 의미가 발생한다. 주체론이 철저히 구조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을 여기서 볼 수 있다. 김정일에게 주체의 왕관을 씌워주고 자신은 그가 죽을 때까지 가신으로 국가를 통치할 수 있는 핵심인물이 되기 때문이다. 그가 망명한 것은 내부 권력의 힘겨루기에서 밀렸다고 볼 수 있다

그는 “개개인의 존재는 사회적 관계에서 존재확인을 받으므로 대중의 입장에서 보면 사람과의 사회적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고, 포지션이 상급인 국가의 존재는 국가 형성 소수층에게 그들의 장기적인 포지션을 잃지 않게 하는 피라미드의 하층에 해당하므로 이들이 동등한 입장에서 계속 관계를 가지게 하는 것이 주체적 자리를 유지하는 것과 아주 잘 맞물리고 있다”고 한다.(Deleuze 2007)

즉 황장엽의 이론의 근간을 분석해보면 대중은 한 주체를 위해 국가 집단을 형성해주고 한 주체를 보존 강화시켜주기 위해 60년이 넘게 폐쇄적인 국가를 유지하고 있다.

주체라는 용어는 유물론에서 시작되어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로 들어갔고 푸코와 들뢰즈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것은 물론 철학과 과학, 사회학, 문화인류학 및 사상계와 촘스키에 이르기까지 구조주의에서 초현실주의를 거쳐 지금에 이른 과정의 결과는 한국 교회 안에도 물질적 사고를 우선시하는 구조를 심어놓았다.

이제 교회는 영적 회복을 위한 곳이라 불리기보다 또 하나의 제 3세력으로 가고 있다. 교회는 지금과 같은 전 근대적 구조적 이념에 물들어 간다면 성령의 역사를 방해하는 것이다. 유물론은 정신세계의 영역까지 물질적인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주체론을 만든 황장엽도 인간의 사유나 정신적 활동은 물질적 욕망과 관계발전을 위한 형이하학적 구조 속에 넣어버리고 구조라는 말을 삭제해버렸다.

이로 미루어 보아 황장엽은 한 독재자 혹은 국가를 주체적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이 문화적 집단을10) 학습시켜 주체를 보존 강화하는 원리를 사용했음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본 연구를 통해 발견한 것들 중 큰 세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주체라는 기원을 찾는 작업을 통하여 구조주의가 그 모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둘째, 구조주의는 사회주의와는 다른 이름 즉, 자본주의 및 민주주의라는 이념아래 그것들이 이념인줄 모르고 살아가는 세계인들 가운데 더 깊은 뿌리를 내렸다.

셋째, 한국교회가 운영을 위한 구조로만 실용성에 근거하여 문화적 실제로 인식한 시스템(구조)을 교회에 이식하면서11) 수많은 사역자들이 애를 써도 영적 성장의 정체현상을 불러온 것이 구조주의의 문제였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통일시점의 주체사상 해체를 위한 구조주의 접근  

1. 유비에 대하여

유비는 에피쿠로스로가 사용한 용어로서 들뢰즈가 자신의 논문에서 언급하였다.12) 유비는 결과적으로 현재의 자본주의 구조가 필연적인 셈이다. 사상의 인과성을 놓고 볼 때 다음 단계를 유추할 여지가 있지만 그 유비된 사상 역시 어떤 목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알지 못하는 미래 속으로 인간의 욕망이 현실적응을 위해 시간에 따라 이동한 과정 중 하나이다. 그 이유는 주체사상의 근간이 되는 구조주의는 프랑스대혁명 이후 계몽주의가 산업사회를 이끌어 오면서 산업발전의 변화 속에서 분배가 고르지 못한 신흥 계급들이 생겨날 때에 일어났다. 다수의 노동으로 소수의 지배 자본계급을 형성하면서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내놓게 된 것이다.

지금도 구조주의 이론에 의하면 자본주의가 고착된 것이 아니라 임의로 변화해가고 있는 이동 경로일 수 있다. 그러므로 들뢰즈의 감각 대상에 대한 유비의 수식을 주체사상에 적용해볼 것이다.

더불어 통일이후 한반도가 주체사상과 자본주의의 접점에서 혼란이 아닌 유비의 생성을 수식과 그림으로 만들면서 사상적 이론을 시각적인 이해를 위하여 물리학 개념을 도입한 도해를 시도하였다. 여기에서는 따라서 주체사상의 근간이 되는 구조주의에서 그 해체를 위한 시도로서 이에 대한 이해를 돕는 설명과 시각적 도해를 시도한다.

1.1 감각적 대상의 유비

들뢰즈에 의하면 감각적인 대상은 감각적인 부분들을 지니되 거기에는 대상의 가장 작은 부분을 재현하는 감각적인 최소치가 존재한다고 할 때 이와 꼭 마찬가지로 원자는 사유되는 부분들을 지니되 거기에는 원자의 가장 작은 부분을 재현하는 사유의 최소치가 존재한다.(들뢰즈 2007, 60) 들뢰즈는 그것을 분리 가능한 대상이 감각적인 최소치들로 구성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분리 불가능한 원자 또한 사유되는 최소치들로 구성되므로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식에서 원자는 사유되어야 하는 것이며 또 오로지 사유될 수만 있다. 감각적인 대상이 감각에 속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원자는 사유에 속한다. 왜냐하면 감각적인 대상이 감각에 주어지는 대상인 것처럼 우리에게 사유할 것을 건네는 대상은 본질적으로 사유에 관련된 대상이기 때문이다. 원자는 감각적인 것이 아니며 감각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들뢰즈의 이론이다. 원자란 본질적으로 감추어져 있어 원자 본성에 따른 결과이지 우리의 감성의 불완전성에 기인한 결과가 아니다. 위의 정의는 원자와 감각적인 것을 등가 시키되 원자와 감각이 혼용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모든 물질과 사유의 관계는 원자와 감각을 분리한 이론적 근거가 성립된다. 이런 이론들은 유물사관과 기계론적 사상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앞으로 미래는 기계가 인간의 자리를 대체하면서 이와 같은 이론이 발전하여 기계적 구조가 인간의 창조적 산물이지만 오히려 인간이 지배당하는 하극상이 만연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다수를 위한 사상의 왜곡은 공산주의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거쳐 사회주의로 전환하지만 결국 공산권이 와해되고 사람들은 불투명한 미래 앞에 좌표를 잃어가고 있다.

유비의 원리애서 대상의 유비를 주체론의 유비로 대입하면 다음과 같이 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유비적 표현을 빌면, 다음과 같은 공식도 가능할 것이다.

에피쿠로스적 방법은 이동 또는 옮겨가기의 방법임을 알 수 있다. 에피쿠로스적 방법은 유비에 의해 인도되면서 감각적인 것이 해체되고 구성됨에 따라 옮겨 가기의 방법을 통해 감각적인 것으로부터 사유되는 것으로 그리고 사유되는 것으로부터 감각적인 것으로 조금씩 이동하는 것이다.

1.2 유비의 결과

에피쿠로스와 루크레티우스의 원자론은 원자와 시간을 대상으로 한 연결 관계로부터 환영과 시간을 대상으로 한 새로운 연결 관계를 이야기 한다.(들뢰즈 2007, 77) 구조주의란 원자와 사유, 원자와 시간, 환영과 시간을 대상으로 한 관계가 나오듯 수많은 것들을 유비화할 수 있는 것으로 보는 관점이다.

유비의 추출물 즉, 그 결과는 네 개의 항으로 주어지는데, ‘사유 가능한 원자의 속도’와 ‘사유를 넘어선 원자의 편위’를 두 항으로 설정하거나, 마찬가지로 ‘지각 가능한 대상으로서의 이미지’와 ‘지각이 불가능한 환영’을 두 항으로 설정할 수 있다. 앞에서 이야기한 방법론에 따르면, 사람은 네 가지의 존재를 지각한다. 그것들은, ‘사유 가능한 연속적인 시간의 최소치’(1)와 ‘사유 가능한 연속적인 시간의 최소치보다 더 작은 시간’(2)을 두 항에 대응하는 두 시간으로 설정할 수 있고, 이와 비슷하게 ‘지각 가치’(3)와 ‘지각 가능한 시간의 최소치보다 더 작은 시간’(4)을 두 항에 대응하는 두 개의 시간개념으로 설정할 수 있다. 이렇게 설정된 네 항과 네 시간을 대상으로 “유비의 방법을 적용하여” 보면, (1)과(3)은 원자와 시간을 대상으로 한 연결이 되고, (2)와(4)는 유비의 방법을 적용하여 (1)과 (3)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환영과 시간을 대상으로 한 새로운 연결 관계가 된다.

1.3 해체를 위한 이론 분석

이와 같은 이론은 우리가 보는 바와 같이 종교와 신의 존재는 철저하게 배제된다. 즉 구조주의가 깊어질수록 사람들은 자기본위의 생활에 열중하고 모든 가치의 절대성은 내가 그것을 사유하는가 하지 않는가에 의존하게 된다. 구조주의의 유물적 사고는 인간의 영역에 인간본연의 가치가 기계적이 되므로 황장엽이 인간중심의 철학론을 내놓은 것이며 북한의 주체론은 수령숭배 중심으로 모든 대중의 사고와 삶이 고착되는 것이다. 즉 한 개체적 사고를 한 국가로 가져가서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이 국가적이 되고 개인적 사고가 집단 사고로 전환된 것이다. 그러므로 주체사상에 들어 있는 이와 같은 원리로 이해하면 해체가 보다 용이하다. 여기에서 우리는 “개인 사유의 공간과 시간의 가치=집단 사유의 공간과 시간의 가치” 및 “개인의 물질 소유와 분배할 자유=수령”이 결정하고 지시한 대로 물질을 분배하고 소유함”의 유비 관계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1.4 주체론 해체를 위한 관념론적 접근

관념은 그 관념의 대상과 절대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로부터  이 둘을 같은 단위로 젤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인식의 조건과 인식해야 할 것 간의 근원적인 양립 불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주체와 대상 간의, 인식하는 것과 인식되어지는 것 간의, 혹은 사물과 그의 관념 간의 분리와 대립을 다루게 되는데, 여기에서는 인식을 가로막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분리와 대립을 의미한다.(들뢰즈 2007,  112)

관념의 유비를 이루는 것은 오히려 쉽게 해체할 수 있다. 그 이유는 관념과 관념의 대상이 절대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며 이 둘을 같은 단위로 젤 수 없다는 것에 근거한다. 쉽게 설명하면 인식의 조건과 인식해야 할 것의 관계가 주체와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과 인식되어지는 것 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주체론을 집단적이며 의지적으로 시스템 속에서 통제할 때 북한 주민들은 통제를 받으며 관념과 사실적 삶의 분리와 대립 속에서 더욱 주체론을 벗어나야 할 인식적 성장을 가져왔을 것으로 본다.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구조적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의존적 계층과 구조적인 것을 끌어내고 생성하는 계층의 분리와 대립은 지속되기 때문이다. 주체론 해체를 위한 사상적 비교는 시간과의 유비, 관념적 유비, 사유의 유비, 공간의 유비, 환영의 유비, 비슷함의 유비, 구조의 유비 등을 고려해야 하므로 단순한 도식을 구할 수도 없고 설령 도식을 구했을지라도 그 순간 사상은 계속 이동 중이므로 이념을 해체하는 작업은 시간을 멈추게 하는 것처럼 불가능하다. 본 연구를 통하여 이념은 해체할 수 없고 유비가 생성되어 미지의 모습으로 변화해 갈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조주의의 확산은 문제와 방법, 해결에 대한 영역들 간의 유비의 관계 이전에 보다 더 근본적인 “구조”를 겨냥하는 것이었고 또 “구조”에 근거한 것이었다. 언어적인 것에만 구조가 존재한다는 말은 맞다. 그러나 구조주의에서의 언어는 불가사의한 언어, 심지어 입으로 발성되는 것을 넘어서는 언어를 말한다. 예를 들면 무의식은 무의식 자신이 말을 하고 또 무의식 그 자체가 언어인 한에 있어서 구조를 지닌다는 것이다.(들뢰즈 2007, 364) 사물들 또한 그들이 기호의 언어라 할 수 있는 일종의 침묵의 이야기를 유지하는 한에 있어서 구조를 지닌다.

 2. 푸코의 구조 속의 대상과 주체

한 개인의 고유한 경험을 구성시키는 일련의 기호들과 한 문화에 의미를 주는 형식적인 체계는 서로 수직으로 교차한다. 개인적인 경험의 고유한 구조가 매 순간마다 사회 체계 속에서 몇몇 가능한 선택들 혹은 배제된 가능성들을 찾기도 하는 반면, 역으로 사회구조는 그가 선택한 부분에 따르는 몇몇 가능한 개인들 혹은 그렇지 못한 다른 개인들을 찾는다.

각각의 구조 속에는 대상이 있다. 주체는 구조의 다른 질서들을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자기 자신의 질서 속에 대상을 둠으로서 자신에게 종속시킨다. 결국 자신의 질서가 아닌 다른 것은 모두 대상이 된다. 그러한 방식으로 대상은 계속 구조 가운데 종속되어 간다. 그 자체가 다른 질서를 구성하게 되고 그것은 다시 자신에게 종속된다. 그러므로 이것은 각각의 질서가 자신이 절대적으로 우선시되는 한 공간의 차원을 정의하는 방식이 되며 모든 대상은 이렇게 정의되는 한 공간의 차원 속에서만 서로 소통하게 되는 방식이다.

이러한 구조적 논리를 따라간다면 사람들은 온갖 변화 속에서 심지어 통일 후에도 이러저러한 순간 또는 경우 속에서 단순하며 현실적 다른 질서에 종속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위한 어떤 조건들이 배제된 사회에서도 그렇게 종속된다. 특히 하나님을 배제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을 것이므로 구조주의라는 틀의 형식을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하다. 회복은 더 이상의 유비로도 가능하지 않다. 결국 예기치 못한 미래에 이익도 없는 질서로 보이는 질서 속에 들어갈 것이다. 그런데, 라캉은 이런 관념적인 것을 지극히 현실적으로 개인에게 접목하였다. 그는 빈칸 이론으로 주체에서 실천으로의 이동을 유도하였다.

유비는 빈칸을 점유하는 개념들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한 자리들은 구조가 “현실화되는” 한에서만 실재적인 존재들로 채워지거나 점유된다. 다른 의미에서 보면 우리는 구조 자체의 수준에서 이미 자리들이 상징적인 요소들에 의해서 채워지거나 점유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자리들의 질서 일반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상징적인)요소들이 이루는 차등적인 관계들이다.(들뢰즈 2007, 414)

구조주의는 주체를 제거하는 사유가 아니다. 구조주의는 주체를 분산시키며 체계적으로 분배하는 사유, 주체의 동일성에 저항하는 사유, 주체를 흩뜨리며 이리저리 이동시키는 사유, 그리하여 비인격적인 개별화나  특이성을 가진 유목적인 주체를 만드는 사유이다. 푸코가 “분산”을 거론하는 것은 이런 의미이다.

 3. 유비 이동과 패러다임 변화에 대한 시각적 이해

지금까지 설명한 유비 공간의 구조 변환을 시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자연과학적인 방법론을 적용해 보기로 한다.13) 이는 시간을 독립변수로 하여 사람들의 통합적 시대 인식이나 세계관이 변해가는 것을 시각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것인데, 실제로 그 이동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그 순간 즉, 소위 패러다임의 변환 순간에는 혼란스럽고 이해하기 어려운 상태로서 이를 이러한 현상은 자연과학에서 흔히 관찰되는 상전이(Phase Transition)에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즉, 간단히 설명하자면, 얼음(고체 상태)이 물(액체 상태)로 변하는 순간을 살펴보면, 온도가 영하에서 올라가면서 0oC가 되면 얼음의 어느 부위(주로 표면이나 경계 부위)가 먼저 물로 변하기 시작한다. 사실, 얼음이나 물 자체는 다른 상태로서 이미 어떠한 질서가 주어진 상태이다. 그러나 0oC에서는 얼음과 물이 공존하며, 이때에는 얼음이 물로 변해 가고 있는 순간으로서 온도 변화는 없지만 질서도가 변한다.14) 이러한 현상을 상전이(phase transition)이라고 한다. 그러한 현상이 목격되는 즉, 두 개 이상의 상태가 공존하고 있는 그러한 곳을 임계점(Critical Point)라고 한다.

이는 패러다임 전환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인간의 삶의 모든 행위나 사상에 대한 평가를 가능하게 하고 가치를 부여하는 보이지 않는 규범들도 어떠한 한 세계관에서 다른 세계관으로의 변화 혹은 이동을 경험할 수 있는데, 그러한 사상이나 세계관이 서로 공존하지만 그러나 방향성 있는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역사에서의 임계시대는 유비들이 창줄되는 수많은 순간들로 구성된다고 볼 수 있다. 임계점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에 대한 이해는 일단 기준점이 모호하여 혼란스럽고 그래서 퍼지(fuzzy)할 수밖에 없고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다. 다음 그림은 본 논문에서 유비의 이동을 설명하기 위한 시각적 그림이다.

<그림 1> 유비의 생성과 빈칸 개념 및 패러다임 변환에 대한 이해도

앞의 <그림 1>에서 보면 파란색(짙은색)이 주체론의 집단사회와 이념이고 위로 이동하는 이념집단은 이동을 하면서 미래에 가지게 되는 하늘색(옅은 색) 이념이 된다. 그러나 그것은 더는 주체론의 집단이 아니며 다른 사상체계가 되든지 혹은 해체된 다른 모습이 될 수 있다. 아래로 이동하는 그림은 시간에 따라 어디에 자리를 잡을지 공간적 개념은 미지이나 반드시 유비를 이루어 그 무엇이 될 것임을 설명하고 있다.

유비는 이념이나 감각 등 보이지 않는 것의 움직임이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서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를 설명하는 것이므로 위와 같이 공간개념을 빌려 설명할 수 있다.

통일 시점에는 주체적 사고집단과 개별적 사고집단 사이에 통합의 변환기를 맞이하면서 유비의 이동이 급속하게 발생한다. 아래 <그림 2>는 그러한 유비의 이동 상황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림 2> 두 가지 상반되는 사고 집단 간의 유비이동(제1단계)

위의 유비의 이동 두 번째 단계는 같은 모양이 옮겨갔으나 생성된 모양은 같은 도형의 크기가 비슷하게 보이나 다르고 겹쳐지는 사고의 크기도 다르게 변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그림 3> 즉, 외관으로 인식할 때 처음에는 A와 B만 존재하던 것이 <그림 3>에서 보듯 외견으로는 어떤 주된 모양을 갖추지만 겹쳐지고 혼색을 만들게 된다. 그러나 이념이나 사상체계는 물리적 공간처럼 사람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것을 사용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식 속에 남아있게 된다. 단지 현재의 시간에서 과거의 패러다임 가운데 들어 있는 의식들을 사용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뿐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가면서 의식의 크기와 정확도는 달라지고 왜곡될 수 있다.     <그림 4>

<그림 3> 두 가지 상반되는 사고 집단 간의 유비이동(제2단계)

<그림 4> 두 가지 상반되는 사고 집단 간의 유비이동(제3단계)

제2절 탈북자의 적응을 통해 본 주체사상의 영향력 분석

본 절에서는 탈북자의 적응과 주체사상 영향력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자료에 대한 정성적인 분석을 시도하고자 한다.

탈북자들이 처음 대한민국에 입국한 후 구매한 것으로 탈북자의 93%가 핸드폰, 컴퓨터(69%), 사보험(51%)이었다.(이순형 2007b, 297) 여기서 의외로 보험을 가입한 경우가 절반을 차지했다. 이는 탈북자가 남한 사회에 적응하기에 가장 빠른 것은 문화적응임을 암시한다.(ibid. 257) 이는 문화로의 동화(assimilation)라기 보다는 문화에의 적응(acculturation)으로서 새로운 문화를 무조건 흡수하는 것이나 이전의 가치를 새로운 가치로 대치하는 것이 아닌 양쪽 문화의 요구를 선택하고 수정하여 통합하는 과정으로 본다.(ibid. 258)

그러므로 탈북자에겐 표면적으로 보아서는 사상적 쟁점이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이는 주체사상의 철학이나 가치가 소용되지 않는 문화 가운데 자발적으로 들어온 사람들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현실 적응을 위해 남북의 격차를 비교할 때 느끼는 학습된(하나원에서) 적응력으로 남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남북의 통일 문제에 관련한 사상의 변론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새터민의 남한사회 적응 및 반응을 살펴보면, 남북한 언어차이를 심각하게 느끼지 않게 되기까지 1년 정도인데,(정경일 2001) 청소년층, 고학력자와 같이 직업 기대치가 높은 대상자들은 언어적응의 기준도 높아 예상되는 언어 적응 기간이 길다(김경령 2007, 15; 신명선 2012, 117)

북한 교과서에 종교는 악한 것으로 등장하고 선교사는 거의 악마와 같이 묘사된다. 지하에서 종교 생활하는 것이 발각되면 가혹한 처벌이 뒤따른다. 이는 김일성 유일사상, 주체사상, 유물론적 관점 등 북한의 이념들과 종교는 부합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남한에서 목사와 신부가 교단에서 사제복을 입고 설교하는 것이 북한에서 사상 주입을 떠올리게 해서 거부감이 드는데, 이는 종교에 대한 사상적 교육으로 근원적인 거부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주체사상으로 인한 주체적 인민보건제도를 시행하고 있는데, 1990년대의 극심한 경제난과 국민 건강수준의 악화, 의료 자원의 고갈, 식량난, 약품생산 저조함으로 주체적 인민 보건의 의미가 희석되고 있다. 따라서 탈북자들은 남한에서의 생활 중 큰 특혜의 하나로 보건제도를 꼽는다.

핵심적 그룹들은 더욱 많은 언어와 문화를 익히기 위한 시간을 필요하지만 수직적이거나 계층적 시간을 소모하지 않고 적응하면서 수평적 구도에서 이런 시간들을 필요하게 된다고 본다. 그렇다면 북한의 통일세대들은 모든 과정을 생략하고 신세대의 사고 구조 속으로 동화 흡착이 빠를수록 미래사회에 적응도가 높고 남한의 문화와 사회구조는 미래사회 견인차 역할을 자연스럽게 이행하며 사고영역을 확장 발전시키려고 할 것이다.

문화의 관성은 이질적인 것에 대한 저항을 받을수록 그 자리에서 벗어나 급속하게 나가려는 추진동력을 어디선가 공급받아야 하는 것이 역사적 선례였다. 앞으로 나갈 추진동력으로 교회가 준비되지 않으면 쉽게 얻을 수 있는 세상적 도구들을 사용할 것이며 사람들의 영적이고 물리적인 삶을 더욱 혼란하게 만들 것으로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제3절 북한 사상의 키워드(key words) 분석15)

북한의 통치이념은 마르크스의 유물사관을 수정한 주체론이다. 그것은 북한인민 대중을 통치하기 위하여 한 개인 통치자가 주체가 되며 소수의 지도자가 통제하기 편리하도록 구조적인 수정을 가하였다. 이는 당시 노동당 비서로 있던 황장엽이 남한으로 망명하면서 자신이 저술한 몇 권의 책 중 그의 철학이념을 유물론과 비교할 수 있게 저술된 ‘인간중심 철학원론’에 기술된 바 있는데,(황장엽 2008) 이를 통해 주체사상의 현실적 모순을 비교 분석한다.

이 자료는 통일 전 후를 살아가는 한반도인의 정체성과 협력을 이룰 하나의 자료가 될 것으로 바라보았다. 더불어 그간 모든 삶과 사회적 구조가 주체사상을 기반으로 하여 이념화된 사람들이 맞이하는 새로운 사회에 대한 충격을 완화하기 위하여 남한 사람들에게는 간단하게나마 이해의 실마리가 되고 서로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되며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사회적 개체로의 성숙한 삶을 위한 토대로 마련함이다.

아래의 도표는 사실상 ‘주체론’의 학습을 60년 이상 받아온 북한 주민들에게는 ‘그래서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다는 것인데?’ 라는 질문의 하나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당연하게 생각했고 그렇게 살아야 했던 사람들의 정신세계는 모든 용어가 주체적 한 존재를 위해 살아왔던 코드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정신적 사유와 발전과 욕망까지 가져다 바쳤기에 남한과 그 외에 다른 자본주의 국가에서 살아가는 세계인들의 삶을 수용하는 것이 초기에는 더 힘들 수밖에 없다. 단체적 행동과 의식을 벗어나 개인주의에 들어와 혼자 사고하고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삶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표 6> 황장엽의 인간중심 철학 강조내용의 간단한 분석

<표 7> 마르크스 유물사관의 영향을 받은 인간철학해석의 이론적 모순

<표 8> 황장엽의 세 가지 영역 개조사업에 대한 해석과 분석

이상으로 살펴본 바와 같이 황장엽은 사상가들이 보통 생각하지 않는 개념을 도입하는데 그는 정치적으로 독재정권을 보존 발전시키기 위해 마르크시즘을 수정하였다. 유물사관으로는 사람을 존재케 하는 움직임과 생명활동에 대한 운동성에 답이 없어 그는 결과적으로 헤겔의 정반합 사상을 접목했다. 더불어 사물의 본질에 대하여 ‘세계’는 ‘자연적 존재’로 ‘인간’은 ‘사회적 존재’로 구분하여, 이 상호관계의 본질적 특징을 파악하려 했다. 여기에 기초하여 황장엽은 인간중심철학의 기본원리를 생성했다.

결과적으로 인간 운명개척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답을 하면서 기술한 바에 의하면 인간의 자주적 지위와 창조적 역할 상승과 과정에 대해 설명하려고 했던 점이다. 그가 생각이 깊었던 것에 비해 자신이 만든 주체론의 동기가 잘못되었음을 인식하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주체론이 그가 고민한 세계와 사회 속에서 인간의 상호관계를 정상적으로 풀었다면 지금 같이 북한의 한 사람 우상숭배를 위한 집단 노예화가 이루어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무엇을 위한 주관적 의지인지조차 알지 못하도록 세뇌하는 국가 집단으로서의 북한이 되고 말았다. 황장엽은 남한으로 망명했다는 이유만으로 오히려 철저한 통제 속에 살다 갔다. 그가 북한의 한 지성인으로만 살았다면 통일이 더 빨라졌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만든 ‘주체론’에 북한은 지금도 통제 안에 인민대중이 있고, 자신은 자유를 선택하여 망명했다. 그러나 그가 통제하기 위해 만든 이념은 북한을 통제하고 모든 사람이 자유로운 땅에서 그는 홀로 통제된 삶을 마감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가 선택한 것은 개인의 정신적 자유였다. 사회적 집단으로서의 집단 속의 개인의 삶은 버렸다. 자신이 주장한 것을 한 국가의 이념으로 삼았지만 자신이 버린 철학의 정당성을 위해, 버린 자리에서 인간중심의 철학이라며 하나님 없는 궤변적 사유를 남기고 갔다. 문제는 개인의 자유를 내세운 인간철학이라지만, ‘집단 생산을 위한’ 이념이요 ‘한 통치자를 위한’ 구태의연한 이념에 아직도 동조하는 사람들이 남한에도 존재하는 아이러니를 우리는 안고 있다.

제3절 신·구 세대 특성비교와 통일세대의 전망

본 절에서는 박세길의 자료를 사용하여(박세길 2012) 신·구세대의 특징을 아래 도표와 같이 키워드로 정리하고 그것을 통일세대 전망으로 확장해 보기로 한다. 통일세대 전망은 미래포럼 자료를 참조하였다.(명윤영 2012)

<표 9> 신·구세대 특성 비교와 통일세대 전망16)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1990년대 이후 모습을 드러낸 신세대는 개인으로서의 ‘나’를 중시한다.

2. 기성세대는 개인보다는 집단의 가치를 우선하며 집단의 공통 도덕율로서 판단하는 경향을 가진다.

3. 북한의 집단사회에서 생활한 새터민과 이북의 통일세대는 남한의 기성세대 패러다임을 잠시 거쳐 갈 수밖에 없다. 그것은 정체성 혼란기로 기간은 동질집단으로 들어갈수록 적응도가 빠르고 익숙해질 수 있다.

4. 북한사회의 영향으로 남한의 통일세대는 부적응기간(함께 적응하려는 이질집단인 북한인들에 대한 적응기간)을 거쳐 부정적 시각을 갖지 않는 통일세대들이 쉽게 미래사회에 적응할 수 있으므로 사회 전체가 회복과 행복 지수적 평가로 긍정 에너지를 공유하고 확산할 필요가 있다.

5. 사상의 해체는 뇌구조를 바꾸는 작업이 아니라 사상적 구도로 살아온 사회적 삶과 의식의 변화와 적응이므로 시민단체와 매스 미디어 및 기업이 함께 동참하여 전체적으로 동일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뭉치는 과정이 필요하다.

6. 여기에 교회가 참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돕고 회복하는 자세로 바꾼다면 복음의 운동력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

7. 통일세대 전망은 통일세대가 재 네트워킹하는 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다.

다음의 도표는 신구세대와 통일세대 특성비교 전망의 7 가지 항목 중에서 박세길의 연구자료에 등장하는 세 가지 항목 즉, 1)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한 헌신이나 충성도의 정도(행1), 2) 개인적 삶에 대한 가치를 누렸는가(행2), 3) 가치판단에 대한 확신의 정도(행3)를 비교 변수로 하여,(박세길 2012) 신·구세대(열 1과 2)와 통일세대(열3)의 각 항목에 대한 경향성의 정도를 상대적으로 비교하여 미래 통일세대의 반응을 가시적으로 가늠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도표로 추정할 수 있는 것은 기성세대가 성실하게 살았어도 개인적 삶을 영위하는 방법이 서툴며, 가치판단의 기준이 자기중심적일지라도 신세대와 통일세대는 자기 판단에 대해 기성세대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오히려 흔들리지 않을 것을 예견할 수 있다.

<그림 5> 기성세대와 신세대 및 통일세대의 몇 가지 항목별 비교

즉 그들의 의지와 신념에 정확한 정보를 줄 수 있는 것은 기성세대의 몫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역사관이나 철학 및 복음의 부재에도 그들 세계에서 그다지 불편하지도 않을뿐더러 복음이 그들에게 필요한 것인지 깨닫지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지금처럼 간다면 복음은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지 못하게 되는 종교 속에 갇혀지게 될 것이다.

통일을 기점으로 변화가 클수록 복음이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넓어질 수 있다는 반대성향의 도표를 생각할 수 있다. 지금 이대로 신세대와 한반도의 통일세대가 접목이 된다면 기대하지 않았던 세속적 혹은 또 다른 이념적 세계관에 갇힐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통일세대 전망에서 동질집단과 개인적 삶은 기성세대의 집단 중심의 변형과 개인적 삶의 주요가치가 접목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관계면에서 수직적인 기성세대의 가치와 수평적 관계의 신세대는 여전히 기성세대는 남아있지만 신세대의 영향아래 놓이는데 이는 사회참여에서 물러나고 주도권이 신세대로 넘어감에 따라 영향력이 확대되지 않음은 물론 고령화사회라해도 그들 다수가 사회의 지도자로 참여하기는 어렵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제5절 문화적 주체사상 해체와 클러스터 이론의 적용

본 절에서는 집단의 회심이 어떻게 연쇄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연쇄적인 집단 회심은 현상론적으로 어떻게 표현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 김요한의 클러스터 모델을 적용하여,(김요한 2008, 348; Kim 2005) 북한의 집단성을 띄는 사람들이 상이한 외부 문화의 영향력으로 어떻게 시간적으로 변해갈지를 정성적으로 분석해 보고자 한다.

김요한은 한 사회 공동체 가운데에서도 보다 동질의 특성을 띄는 집단들(클러스터)로 이루어진 일련의 계(System)가 외부의 영향력으로 어떻게 전체적인 변혁을 이루어 가는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림 6> 클러스터들로 이루어진 한 복합계(System)

위의 그림은 클러스터들로 이루어진 복합적인 한 계를 보여주는데, Fext 는 외부에서 주어진 계에 미치는 힘 혹은 영향력이다. 그림에서 각 클러스터는 타원형으로 표시되어 있고, 이들은 그 계 내부에서 서로를 구속하는 상태로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는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타원으로 표시된다.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타원으로 표시된 한 클러스터의 움직임은 그와 연결되어 있는 다른 클러스터들에 의하여 영향을 줄 수도 받을 수도 있다.

김요한에 의하면, “Fext 는 외부에서 그 계에 가해지는 영향력으로서 종족집단이나 인구계층 가운데 가해지는 외부의 변화 혹은 영향력으로서 선교에 있어서는 복음의 영향력 혹은 선교적인 노력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외부의 영향력으로 내부의 각 클러스터들은 서로 다른 크기의 반응들을 보일 수 있다.”(김요한 2008, 355)  그러한 다른 반응도는 각 클러스터의 위치나 상황에 따라서 다르다. 외부의 영향력에 대하여 보다 잘 반응할 수 있는 클러스터는 계의 경계를 이루는 클러스터들이거나 내부에서 어느 정도 자유도가 큰 클러스터로서 그림에는 이중실선으로 표시되어 있는 타원이다.

외부에서 가해지는 영향력이 충분히 강하면 이중실선 타원형의 클러스터가 가장 먼저 외력의 방향을 따라서 위치를 변형시킬 수 있는데 (그림의 경우에는 외력의 방향으로 회전해 가는 것임), 이러한 초기 움직임은 그 주변의 다른 타원들에게 연속적인 재배열을 낳는 움직임을 이끌어 갈 수 있고 각 클러스터들은 연이어 주위의 다른 클러스터들의 재배열을 유도하는 움직임을 이어갈 수 있다. 이러한 한 클러스터의 초기 움직임은 하나의 집단행동으로 생각할 수 있고, 이어지는 클러스터들의 재배열은 집단행동이 연쇄반응처럼 이어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클러스터들로 구성된 하나의 계에 대한 전체적인 연쇄운동에 대한 시간 의존 특징은 사실 하나의 물리적인 복합계를 연구하는 자연과학에서는 ‘잡아 늘인 지수함수(Stretched Exponential)’ 형태임이 널리 알려져 있다. 아래 <그림 7>은 클러스터들로 구성된 하나의 복합계가 전체적으로 시간에 따라서 재배열 하는 것을 특징적으로 나타내는 시간적인 변화과정을 보여준다.

<그림 7> 외부의 영향력에 대한 복합계의 시간변화 양상(김요한 2008) 355)

김요한은 Fext 을 외부에서 그 계에 가해지는 영향력으로서 종족집단이나 인구계층(사회동질집단) 가운데 가해지는 복음의 영향력 혹은 선교적인 노력들이라고 하였다.(ibid, 356)

주체론 해체 연구에서는 Fext 자체가 사실상 주어지는 상황(context)이기에 상황의 변이가 시간과 내부적인 구속 조건이 달라짐에 따라 그 시간적인 변화 양상이 달라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문화적 침투로 인한 주체사상의 간접적인 해체 성향을 살펴보기로 한다. 김요한의 클러스터 그림을 살펴보면, 외부에서 주어지는 영향력의 방향으로 한 집단이 반응을 보일 때 자신들의 인식과 문화 혹은 절대적 가치가 그 영향력으로 반응하게 되는데, 변화 속도와 시간 상수는 그 개체(집단) 주변의 구속적인 상태에 의하여 보통 결정된다. 이를 본 절에서는 통일 후에 이루어질 주체사상 해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주요 항목에 대한 예상 추이의 변화를 통일 후 6년을 상한 기간으로 하여 도표화 하면 <그림 8>과 같다.

각 행은 김경령의 탈북자들의 언어습득의 시간과 문화적응에 대한 연구 논문의 측정값에 따라 이질 문화인 남한에 적응하는 기간(평균 1년 반의 시간)을 대입했으므로 열4의 시간까지는 6년 정도의 시간이 소모 될 것이다. 위의 정성적인 측정값은 미래 시간에 관한 것으로서 그 추이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림 8> 통일이후 문화 영향력의 변화추이 예상도17)

위의 그래프에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상황이 배타적인 문화로부터 동조 인식이 높아지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는 두 가지로 해석 할 수 있는데 남한 주도의 통일 이후 그 문화적 영향력이 낮아지기 때문일 수 있고, 주체사상의 영향이 감소되어 따라서 결국 남한 문화로의 이동이 이루어지기 때문으로 생각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김요한의 클러스터 이론은 전체가 향하는 방향을 거스르기 시작하는 개체가 다른 클러스터의 방향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으로 이것은 복음처럼 생명력이 강한 요인이 아니고는 클러스터들이 동조하지 않을 수 있다.

지금까지 분석한 것을 토대로 하여 결론을 내리면 다음과 같다. 추론적인 연구로서 나온 게이지에 따라 3 가지의 상황적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데, 이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주체사상 해체를 위하여 먼저 클러스터 이론과(김요한 2008) 시간에 따른 배타적 문화영향력의 결과를(김경령 2007) 참조하여 해체가 일어날 때에 상황변화와 시간에 의존하는 해체의 원리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처음에 이질성이 높은 두 문화가 만나 서로의 타협을 이루려고 시도하지만 결국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다시 배타성이 높아지는 것은, 마치 무슬림 사회에서 흔히 발견되는 것과 같이 단순한 집단화가 여전히 힘을 발휘하지만 복잡한 개인주의 삶이 복합된 미래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도록 해준다.

해체시간 추정을 위한 것은 새터민의 한국정착에서 언어를 배우며 자연동화되는 시간을 역학적으로 조사한 팀들의 자료를 사용하면, 일반적으로 언어와 문화가 동화될 수 있는 최단의 시간을 1년에서 1년 반으로 잡았으며 그들의 조사 분석에 의하면 단순한 그룹이나 개인일수록 쉽게 흡수 동화되며 대학생들 혹은 지식인 집단일수록 정교한 언어와 문화를 습득하는 시간이 다소 길어지므로 숙련되고자 하는 학문적 혹은 지식적 분야와 개인에 따라 쉽게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의 길이는 다소 변화가 있다고 분석되었다.(김경령 2007) 즉 북한에서도 단순한 언어영역만 알아도 기본적 생활에 지장을 받지 않았던 개인들은 남한 사회에서도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무슬림 사회의 집단화 성향은 그 문화 안에 살고 있는 내부자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삶이다. 그들은 출생과 동시에 부모의 종교를 물려받으며 오히려 그것을 거스르는 삶이 그들 사회에서 동질성을 잃게 되는 것이다. 세계화는 무슬림 사회의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문화 가치와 삶의 가치를 추종하거나 자신의 영역을 새로운 곳에서 시작하고 확대하는 것에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게 되지만, 이는 예를 들면 무슬림 정체성을 가진 한 나라가 정책적으로 혹은 문화적 개방을 통해 집단이 새로운 문화에 대해 이해하게 될 때 선택권이 주어진다. 누구든지 이전의 전통적 개념의 자문화를 계승 발전시킬 수도 있고 새로운 문화 패러다임을 생성할 자유가 주어진다. 그것은 경제적 필요와도 맞물리는데 경제적 기회를 가져오거나 확장시키는 사람들에게 지금까지 절대적으로 보이고 추종하던 문화적 기준(Norm)에서 새롭게 자신의 국가와 문화 집단에 기회와 발전을 부여할 수 있는 창조적인 개인으로서 가치와 기회를 부여받을 수 있다

이런 기회와 가치는 타인이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 개인 혹은 집단이 자발적으로 생성하고자 할 때 따라오는 부가적인 것으로 이데올로기와 집단의 경직된 구조(hard construction)에 지배되지 않고 오히려 지배할 수 있는 기회로 보아야 한다.

문화의 측면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보면 첫째는, 인식세계 속에서 동조와 동의가 빠르게 확산되어 개개인을 찾아다니며 동의를 구하지 않아도 지수 함수적으로 퍼져나가는 힘을 가진 것이고 둘째는,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예술이나 학문적 성과 또는 의식주에 신·구 문화가 접목되어  개인의 삶을 빠른 속도로 조절하는 것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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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참고로 「헤겔미학I」을 보라.(Hegel 1996)

2) 참고로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보라.(Kant 1987)

3) 루이 알튀세르(Louis P. Althusser, 1918~1990)는 프랑스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로서 프랑스 공산당의 이론적 지주였다. 그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위협을 방어하기 위한 이론을 펼쳤다. 특히 경험주의와 인본주의 및 민주 사회주의를 반발하였으며, 반인간주의, 반경제주의, 반경험주의와 반주체주의를 주장하였다. 알튀세르는 보통 구조적 마르크스주의자로 불린다. 저작에는 ‘자본을 읽자’ 및 ‘마르크스를 위하여’ 등이 있다.

4)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 1857~1913)는 스위스의 언어학자로 근대 구조주의 언어학의 시조로 불린다. 그는 공시성(Synchronic)과 통시성(Diachronic)을 적용한 언어학을 발전시켰으며, 언어를 현상으로서 보고 하나의 체계 가운데에서 연구하였다.

5)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는 파리 소르본느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예술, 과학, 정신분석, 정치, 사회, 경제 등 사회와 문화 전 영역에 걸쳐 뛰어난 비판서들을 내었고, 여러 대학에서 가르쳤다. 박사학위논문 ”차이와 반복” 외에 12권의 저술이 있다.

6) 자크 라캉(Jacques E. Lacan, 1901~1981)은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로서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대한 해석으로 유명하다. 그는 언어가 우리를 주체로서 구성한다 생각함 무의식은 언어로 인해 발생하므로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라고 하다.

7) 황장엽(1923-2010)은 김정일 정권에서 노동당비서로 주체사상을 북한 실정에 맞게 사상화한 인물로서 1997년 대한민국으로 망명하였다.

8) 내부자적 및 외부자적이라는 표현은 주관적과 객관적이라는 말과 구별하기 위하여 문화 인류학에서 보통 사용되는 에믹(emic)과 에틱(etic)으로 등가하여 사용할 수 있는데, 에믹은 실재에 대한 원주민적 모델의 설명이고, 에틱은 관찰자의 기준에 따른 사회문화적 체계로서 실재를 설명하는 것이다.

9) 그는 여기서 선험적 주체의 죽음이라는 테제를 완성한다.

10) 사실상 이들은 문화적 집단이라고 세뇌를 시킨 북한 대중이다.

11) 구조주의의 특성인 인간중심으로 움직이는 하나님 없는 체제 혹은 구조 철학적 목회라고 할 수 있다.

12) 에피쿠로스는 유비의 방법을 이야기 하는데, 감각적인 대상이 감각적인 부분들을 포함하며 거기에는 가장 작은 부분을 재현하는 감각적 최소치가 존재한다고 본다. 마찬가지로 원자도 사유되는 최소치가 존재한다고 보기 때문에 이 유비의 방법으로 개념적인 것과 감각적인 것 사이의 쌍방 전이가 가능하다고 본다.

13) 본 내용은 논문의 주심인 김요한 선교사의 도움을 받았는데, 그는 선교학자이자 물리학 박사로서 그의 자연과학적 이해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14) 즉, 얼음의 보다 정렬된 상태에서 물이라는 덜 정렬된 상태로의 변화, 다른 말로 하면 무질서도를 나타내는 엔트로피가 변하는 것이다.

-본고에 삽입된 도표 및 그림자료는 KJFM5-6월호 본문을 통해 보실수 있습니다.

*KJFM 2015년 5-6월호(한반도 분단 70년, 영역별 지도자의 통일을 향한 전망과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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