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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JFM] 한국내 무슬림들 가운데 하나님 나라 확장하기

최만수르 & 김요한1)

들어가면서

오늘날 전 무슬림들과 크리스천들의 숫자를 합치면 전지구인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것이다. 세계 역사 가운데 기독교와 이슬람 사이에는 엄청난 간격이 분명하게 존재한다. “역사란 우리에게 관점을 제공한다”.( (Pierson 2009, 11) 그렇기에 우리는 역사의 어떤 결과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크리스천들과 기독교는 이슬람을 칼의 종교로 간주하고 무슬림들은 특히 서구 기독교를 십자군으로 바라본다. 이들 두 종교 공동체들 간에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지구상에 진정한 의미의 평화가 없을 것처럼 보인다.2) 미래의 세계 평화는 무슬림들과 크리스천들이 어떻게 서로 간에 의사소통 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역사를 지나오면서 무슬림들과 크리스천들이 서로 반목관계에서 첨예한 대립을 해온 것은 양측 모두에게 재앙이 아닐 수 없다.

왜 수 많은 무슬림들은 여전히 우리 주님의 복음으로부터 멀리 있는 것일까? 하나님 나라의 일군된 우리가 그들에게 나아가는 그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그토록 많은 무슬림 사역들이 비효과적인 것은 무슨 이유가 있어서일까? 우리는 무슬림들을 어떻게 보아야 하며 복음전도를 할 수 있는 것일까? 한국 내에 있는 무슬림들 가운데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세울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질문들은 한국 내에 있는 우리가 무슬림들 가운데 복음을 증거하고자 할 때에 우리를 괴롭히는 질문들이 되어 왔다.3)

이제 세계는 이주의 시대가 되어 수 많은 무슬림들이 한국 내로 들어오고 있다. 무슬림들을 한국에 내보내고 있는 나라들을 살펴보면,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리비아 등과 같이 무슬림 다수 국가들이고 기독교에 대하여 반감을 많이 가지고 있는 나라들이다. 국제적인 이주 통로를 통하지 않고서는 이들에게 복음이 전파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 내에서 무슬림들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며, 통상적인 선교적 노력으로는 복음전파가 어려운 지역이나 종족들 가운데 복음의 문을 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이제 우리가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책임을 지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어 보인다. 한국 내에서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증거해야 한다는 그 시급성에서 우리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4)

이 글은 어떻게 이사 알마시(Isa Almasih: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아랍어 표기)를 예배하는 예수중심의 공동체 운동이 한국 내에 있는 무슬림 종족들 가운데에서 일어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타당성과 그 당위성을 논하고자 한다. 본 소고를 통하여 한국 내 무슬림들 가운데에서 하나님 나라의 관점을 가지고 어떻게 하나님 나라 선교를 수행하게 될 것인지 사역자들이 이해할 수 있기를 소망하며 글을 전개한다. 그것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수행하는 선교는 기본적으로 왕이신 우리 주님과 그 분의 나라를 세상에, 특히 아직도 그것을 들어보지 못한 자들 가운데에 확증하며 알리는 것이며 그리하여 그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의 주님으로 따르도록 하기 위하여 초청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세계적 이주 상황과 복음전도의 도전들

이제 세계인은 국경을 초월하여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과 상품들 그리고 기술과 정보는 유래가 없을 정도로 넘쳐나고 있다. 모든 것들이 정말 빠르게 변모하고 있다. 그 변화의 속도는 가히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사람들은 보다 나은 삶을 추구하기 위하여 시골 지역을 떠나서 도시들로 밀려오고 있고(도시화 현상) 소위 세계화의 추세 가운데에서 자신들의 본국을 뒤로하고 다른 외국으로 이동하고 있다. 또한 환경과 생태 및 또 다른 삶의 기회를 추구하는 귀농현상도 역으로 새롭게 생겨나기도 한다. 이러한 세계화 가운데 사람들이 자신의 본토를 뒤로하고 다른 곳에 이주하여 정착해 가는 디아스포라 현상이 두드러진 시대가 되었다. 그리하여 이제 우리는 “기대하지 못한 장소들에서 기대하지 못하였던 종족들을” 직면하게 되었다.(Cohen 1997, 162).

21세기는 이주 및 디아스포라의 시대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많은 연구가들은 자신들이 태어나지 않은 국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전세계적으로 약 2억 가량이 되며 그들 가운데 2천만 정도가 아시아 출신이라고 한다. 이전 유엔사무총장이었던 코피 아난(Kopi A. Annan)은 “신 이주민 시대를 위한 길안내도(A Roadmap for the New Age of Migration)”이라는 자신의 보고서에서 우리는 이주라고 하는 인구이동의 시대 한 복판에 있으며 그것은 이미 이 시대의 현상이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그것을 이주민들이 41개 국가에서 전체 인구의 2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인용하면서(Park 2008, 21), “신 유목민 시대(the New Nomad Era)”라고 이름하였다. 이들 가운데 많은 이주민들이 임시적인 이주자들인 반면 영구적인 이민자들도 있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서로 다양한 문화와 종족성 및 언어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는 세계 가운데 전지구적 마을을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21세기의 전지구적 이주현상으로부터 야기된 점증하는 사회적 우려는 주로 인구노령화와 많은 저개발 혹은 미개발 국가에서 주로 경험하는 광범위한 빈부격차에 대한 것이다. 이러한 전지구적 상황 가운데 사회적으로 두드러진 현상들이 출현하고 있는데, 그것들에는 결혼연령의 상향화 및 저출산율과 같은 것이 있으며 국내 노동력으로서 생산성을 갖춘 노동력의 부족현상이 용역을 중시하는 산업사회의 중심적인 우려가 되었다. 궁극적으로 저개발국가들의 일자리의 부족과 빈곤이라는 경제현상은 사람들을 “밀어내는(push)” 요소들로 작동하고 있는 반면 선진국가들 가운데 부족한 노동력은 이주민들을 위한 “잡아 당기는(pull)” 요소로 기능하고 있다. 이와 같이 국제이주는 세계의 의미심장한 사회현상이 되었다.

세계적 규모의 이주 현상에서 우리는 복음전도를 위한 도전들을 직면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것은 거대한 도전이다. 선교역사를 살펴보면 이주와 선교는 밀접한 관계를 가지기 때문에 이주민들을 주님께로 이끄는 선한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절대로 간과할 수 없다.

성경은 자신들이 속해 있던 지역이나 공동체로부터 어딘가로 “이동해간” 인물들의 많은 사례들을 통하여 이주와 선교 사이의 불가분적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그 예들로서, 아브라함(창 12:1-3), 오네시모(몬 1:10-18), 이디오피아의 내시(행 8:26-40), 예레미야를 진흙 구덩이에서 건져 올린 구스인  에벳멜렉(렘 38:6-13), 이스라엘의 작은 여종과 엘리사를 통하여 병 치유를 받은 나아만(왕하 5:1-19) 등이 있다.

위에 열거한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 가운데 무엇인가 일어나기 전에 어디론가 “이동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왕권 수여식을 위하여 먼 땅에서 온 외국인들에 대한 솔로몬의 기도를 살펴보는 것도 가치가 있을 것이다.(왕상 8:41-43) 성경은 안디옥 교회가 예루살렘에서 핍박에 직면하여 안디옥까지 흩어져야 했던(혹은 이주해야 했던) 예루살렘 교회 출신 사람들이 헬라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결과로 세워진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행 11:19-20)

사도 바울은 유대인 이주인들과 이방인 이주인들이 함께 모여 있는 여러 많은 곳에서 하나님 나라의 좋은 소식들을 가르치는데 자신의 전 생애를 보냈다. 선교는 자신들의 삶에서 “오고(come: 구심적)” “가는(go: 원심적)” 과정들을 경험한 사람들에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다문화 사회로 들어선 한국

한국은 세계화 과정의 한 가운데 서있고 위에 언급한 이주현상에서 예외가 아니다. 21세기의 국제사회의 특징들이 현대 한국 사회 가운데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한국은 단지 30 혹은 40여 년 전만 하여도 노동력을 수출하던 나라였다. 그러나, 1990년 초반부터 노동력을 수입하는 나라로 변화되었다. 그 이후부터 외국 노동자들의 숫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해오고 있다. (Lee 2009, 372).

한국 정부는 2007년도에 외국인 인구가 이미 100만을 넘어섰고 2011년도에는 1,418,149 명으로 집계되었는데(한국인구통계조사, 2011), 이는 분명 한국의 총인구 5천만의 2%를 상회한다. 한국 사회는 이제 기술적인 측면에서 다문화 사회이다. 많은 학자들은 한국내 외국 노동자 숫자는 2020년 까지는 200만(5%)을 그리고 2050년이 되면 600만(13%)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한다. 아래 표는 국내 외국인 근로자 숫자의 변화 추이를 보여주고 있다.5)

한국은 점점 수명은 늘어 가는 반면 저출산(2007년 기준 1.06) 고령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2020년이 되면 고령층이 한국 전 인구의 15%가 되고, 2030년에는 20%에 육박하리라 예측한다.(Lee 2007, 193) 한국 정부가 실시한 한국인구통계조사에 의하면 오천만 총 인구 가운데 약 백 오십만 명의 외국인이 있다. (1,418,149 명: 2011 9월 자료) 사회학에서는 외국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2%를 넘어서면 다문화사회라고 부른다. 오랜 동안 단일민족 국가였던 한국이 이제는 총 인구의 2% 이상이 외국인을 차지하면서 한 국가에 다종족, 다문화,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는 “세계의 약 40 나라를 대표하는” 다문화 사회로 변화되었다.(Park 2008, 21). 선교학자인 이명희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이들 대부분의 이주민들은 단지 3년에서 5년의 한정된 계약기간 동안 노동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남한과의 양해각서에 서명한 나라들에서 온다. 2008년을 기준으로 할 때에 남한과의 이러한 양해각서에 서명한 나라는 15 국가였다. 거기에는, 필리핀, 몽골, 스리랑카,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우즈베키스탄, 파키스탄, 중국, 캄보디아, 네팔, 방글라데시, 키르기즈스탄, 미얀마, 그리고 동티모르이다. (Lee 2009, 372).

이미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2011년 한국인구통계조사에 의하면 1,418,149 명의 외국인들이 있는데, 이는 2006년도에 한국에 살고 있던 910,149 명의 외국인과 비교하면 5 년 안에 64.2% 증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중국(49%), 미국(9.6%), 베트남(8.2%), 일본(3.7%), 필리핀(3.5%), 태국(3%),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우즈베키스탄 등에서 왔다. 그들의 체류 목적에 따라서 구분해보면, 51.5%인 72만 명이 외국인 근로자들이고, 6.7%에 해당하는 9만 3천 명은 단기 언어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것을 포함한 학생들이고, 10.4%인 144,681명이 한국인들과의 국제결혼을 통하여 이주한 사람들이다. 만일 한국인 국적 취득이 완료된다면 국제 결혼한 인구는 증가할 것이다. 72만 명의 외국인 근로자들 가운데 55만 명(76.4%)은 적법한 고용 상태에 있지만 17 만 명은(23.6%) 불법 근로자들이다.(한국인구통계조사보고, 2011) 대부분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소위 3D(어렵고(difficult), 위험하고(dangerous), 더러운(dirty) 것을 뜻함)라고 불리는 영역들 가운데 고용되어 있으며 한국으로 들어 오기 전에는 복음을 들을 기회가 거의 없던 제한된 국가들에서 왔다. 다음의 표는 이슬람 다수의 국가 출신 근로자들에 대한 통계이다.6)

(2012.5.31.현재, 단위 : 명)

무엇이 한국으로 하여금 오랜 단일민족 국가에서 다종족, 다문화 다중언어 국가로 밀쳐내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오늘날 세계화의 특징 가운데에서 발견될 수 있다. 그것은 고령화 현상으로 말미암는 노동력 부족과 그로 말미암는 국제결혼의 증가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의 한가지 주된 경향은 급속하게 고령화 사회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많은 학자들과 연구 결과는 한국의 인구는 2019년부터 감소할 것이며 한국 사회는 2020년 이후에는 초고령화 단계로 접어들 것을 전망한다. 그 결과로 더욱 많은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이 한국으로 들어 올 것이다. 이러한 인구 고령화 현상은 이미 한국 산업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국가적인 노동력의 심각한 부족을 야기하였고 보다 많은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이 한국의 노동력 부족을 메우기 위하여 들어 올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단일문화적 한국을 다중문화적 사회로 변모시키고 있다. 최근에 발표된 UN 보고에 의하면,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진다. 더욱이 국제결혼의 증가 추세 또한 고령화 저출산 시대를 맞이한 한국을 다문화 사회로 변모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2011년 국제결혼 비율은 11%에 해당한다. 점점 더 많은 외국인이 한국에 들어옴에 따라서 국제 결혼 비율은 점점 증가할 것인데, 어떤 연구에 의하면 2020년에 이르면 32%에 다다를 것이라고 한다. 2020년 즈음에는 한국의 초등학교화 고등학교 학생들의 1/3 정도가 국제결혼으로 한국에서 태어난 소위 코시안(Kosians)라고 부르는 아이들이 될 것이라고 한다.(Park 2008, 34).

한국 내에서의 이슬람 확장

이슬람은 전세계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 성장은 가히 폭발적이다. 미국과 영국에서의 예를 들어 보기로 하자. 미국에서의 이슬람 확장에 대한 2010년도의 조사에 의하면 1985년도에 약 2 백만 명의 무슬림들이 있었던 것이 조사 당시 천만 명에 이르게 되었다. 심지어 9/11 테러 공격이 있은 이후에 4%에서 8%로 미국 내 무슬림 인구가 증가하였다. 반면 런던은 무슬림 자신들이 무슬림들의 수도라고까지 부르는데 1,500 여 개의 모스크가 그곳에 있다. 한 때 전세계 기독교 중심지였던 런던이 이제는 수 많은 이슬람 의식과 축제가 이루어지는 곳이 되었다. 시카고에 있는 “온 세계 교회(Church Around the World)”에서 내어 놓은 통계자료에 의하면, 지난 50 년 동안 종교 별 성장률은, 이슬람 500%(10억), 기독교 47%, 힌두교 117%, 불교 63%이다. (Jung 2007, 11).

이러한 세계적 규모에서 한국도 이슬람의 공격적 확장 시도의 예외가 아니다. 그 목적이 무엇이건 세계화는 상당한 숫자의 무슬림들을 한국으로 들어 올 수 있도록 하였다. 2007년도 한국 이슬람센터의 보고에 의하면 한국 내에 약 12 만 명의 무슬림들이 있는데, 그 중 35,000명이 한국 사람들이고 86,000명은 외국인들이었다. 그러나 이슬람을 연구하는 많은 연구자들과 학자들은 2007년도에 이미 30만에서 40 만 명의 무슬림들이 있었고 그 중 80% 정도는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 왔다고 한다.(Park 2008, 38). 그들은 또한 지속적인 흐름으로 한국에 더 많은 무슬림들이 들어 올 것으로 예측한다.

더욱이 그들 가운데 3만 명(한국 내 전체 무슬림들의 10%에 해당) 정도가 영국, 프랑스, 스페인 등과 같은 유럽 국가에서 일어난 일을 몇 십 년 이내에 한국적 상황에 적용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면서 분명한 종교적인 목적을 가지고 일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지원하는 NGO 단체인 한국인-아랍사회(KAS: Korean-Arab Society)는 아랍인들과 한국인들 사이에 평화로운 중재를 권장하기 위하여 조직되었다. 그것은 한국 내에서 이슬람 확장을 위하여 일하고 있는 공식적인 조직이다. 한국의 공식적인 초청 하에 많은 무슬림 선교사들이 리비아, 사우디아라비아 및 쿠웨이트 등지에서 들어와 한국이슬람센터를 지원하여 한국 내에 이슬람 문화를 전파할 것을 목적으로 각 모스크 내에 이슬람 문화전시장을 갖춘 모스크들 및 기관들을 세우고 있다.

이러한 나라들로부터 지원을 받는 이슬람은 2020년까지 한국을 이슬람화 한다는 일치된 마음을 가지고 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주요 도시들 가운데 이미 운용되고 있는 모스크들이 16곳이 있고 또 다른 것들은 건축 중에 있다. 그 외에도 이슬람식 종교적 실천을 위하여 많은 셀 미팅들이 개개인의 집과 소그룹 형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자연적으로 모스크 주변에는 무슬림 타운들이 조성되고 있으며 이슬람 국가들에서 오는 무슬림 선교사들이 이슬람식 공동체를 세울 것을 목적으로 한국에 들어 오고 있으며 무슬림 타운들 가운데 강한 영적인 유대관계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그들의 노력의 일환으로 많은 한국 사람들이 이슬람과 그 문화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대학 캠퍼스의 이슬람 학생단체 및 무슬림 공동체에 합류하였다. 대학 캠퍼스에서 이러한 활동을 하는 중심 인물들은 한국어를 배우는 아랍 학생들과 아랍어 과정을 이수하고 있는 한국 학생들이다. 그들의 계획적인 활동들로 말미암아 기독교와 교회 혹은 기독교인들에 불만인 젊은이들이 이슬람으로 개종을 하고 그들이 계획해 놓은 여러 가지의 활동에 합류하였다. 이러한 이슬람의 현상적인 성장은 한국 내에서 분명하다. 다음 표는 2013년 1월까지의 한국 내 전체 외국인 유학생 통계를 보여준다.7)

(2012.5.31.현재 ,단위 “ 명)

무슬림들을 향한 한국 교회들의 기독교 선교

한국은 사실상 기독교 국가가 아니다. 2005년 통계에 의하면 한국인들의 22.8%가 불교를, 18.3%가 개신교를 그리고 10.9%가 가톨릭을 종교로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교회와 선교 단체들이 공식적으로 해외에 파송한 선교사들의 숫자가 미국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를 차지하는 나라이다. 한국의 국제적 선교력은 1980년도에 100여 명의 해외 선교사 숫자에서 1990년도에 1,645명 그리고 2000년도에는 8,103 명, 2006년도에 13,000 명, 2008 년도에 18,000 명으로 성장 되었다.(Lee 2009, 377).8)

이주민 교회들은 이주 노동자들 가운데 다양한 방법으로 효과적인 선교사역을 하기 위하여 사람들을 받아들이며 내어 보내는 이중 기능을 수행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선교를 수행하는 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교회들은 그들이 한국에서 일하는 동안 그들을 선교사로서 자신들의 본국에 되돌아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원심적) 그들을 받아들여(구심적) 제자화 양육을 하고 훈련 시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러한 선교를 위한 구심적 원심적 접근들은 특히 다중문화적 사회 내에서 타문화 선교라는 관점에서 기능해야 함이 분명하다.

그러한 한국교회들의 노력의 일환으로서 많은 비기독교인 외국인들이 땅 끝으로부터 나아와 한국교회들이 그들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한국에 찾아 온 그들에게 복음에 관한 설교를 하고 한국 교회 안팎으로 자신들만의 공동체들을 형성하도록 함으로써 얼핏 보기에 주님께 나아오는 것으로 보인다.  이명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정학적인 땅끝으로 해외 선교사들을 보내는 것 이외에도 한국 교회들은 한국 밖의 많은 나라들에서 들어 온 외국 노동자들에 대한 선교에 열정을 쏟고 있다. 그들의 대다수가 한국 내에서 문화-종교적 땅 끝이라고 할 수 있는 비서구인들이고 비기독교인 외국인들인 것이다. 비록 그 정확한 숫자를 셀 수는 없지만, 남한에 수 백의 이주 노동자 교회들이 있다는 보고가 있다. 이주민 노동자들의 교회 구조들은 서로 다른데, 어떤 것들은 종족성을 구조에 담고 있기도 하고, 또 어떤 것들은 다종족적이기도 하다. 어떤 곳에서는 같은 종족 출신이 리더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고 또 다른 곳에서는 외국인을 지도자로 두고 있다. (Lee 2009, 377).

 한국 교회들은 한국어를 가르친다든가 의사소통을 위하여 컴퓨터를 사용하도록 한다든가 심지어 체불된 임금을 받도록 돕기도 하고 의료 및 법률 상담, 미용, 중고 의류 및 가구의 제공, 외국인을 위한 밤 행사, 특별 스포츠 행사 및 여행의 기회 등을 통하여 그들에게 복음전도의 노력을 구하고 있다. 그러한 섬김에는 매우 열정적인 인력들이 동원되어 엄청난 규모의 물질적, 육체적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한국 선교는 그들을 자신들의 공동체 내에 머물 수 있는 그러한 방법으로 선교하기 보다는 그들을 끌어 내오는 방법에 기본적인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에 결국은 효과적이지 않아 보인다. 한국 교회들이 취한 이러한 선교적 자세는 그들에게는 전혀 익숙하지 않은 기독교회라는 하나의 “새로운 구조를 세우기 위하여” 그들을 그들의 공동체로부터 “이끌어 내는” 기독교 중심의 관점을 취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한국 교회들의 이러한 자세를 하나님 나라에 속한 공동체를 세워나간다는 관점으로 바라 본다면 실수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성경은 기본적으로 일차적인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복음 청취자의 반응과 자세는 머무를 것을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이다.(고전 7:17-24) 그래야 자신이 속한 공동체 내부에 있는 가족들과 친지들이 복음을 들을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기독교 구조적 중심의 선교를 통하여 무슬림들을 자신들의 공동체로부터 이끌어 내오는 것은 예수께서 이 세상에서 사역하였던 방법이 아니다. 챨즈 크래스프(Charles Kraft)는 “예수께서는 우리를 우리 문화로부터 끌어 내어 당신의 상황 가운데 들어 오도록 하셨다기보다는 오히려 우리 문화 가운데 들어 오셨고 우리 중 하나가 되셨다”고 말함으로써 예수님의 사역이 어떠하였는지 지적한다. (Kraft 2005, 51). 릭 브라운(Rick Brown)은 크래프트의 견해에 동조하면서, “그러나 많은 신자들이 자신들이 태어난 사회-종교 공동체 가운데 머무른다. 그러한 경우에 하나님의 나라는 그들의 사회적 네트워크 내에서 그리고 그들을 통하여 밀가루 반죽 내의 이스트처럼 그 가운데에 퍼져간다”고 말한다.(Brown 2011, 11). 하나님 나라 공동체를 이야기 할 때 그 결정적인 이슈가 우리가 보통 교회라고 이해하고 있는 조직적이고 구조적인 시스템을 만들어 내는 것을 언급하는 것인가 아니면, 이미 준비되어 있는 그 무엇으로써 단지 갱신을 필요로 하는 것인가의 문제이다. 더들리 우드베리(Dudley Woodberry)는 다음과 같이 몇 가지 질문을 던진다:

만일 바울이 오늘날 자신의 선교여행을 다시 시작한다고 하면, “내가 무슬림들에게는 무슬림과 같이 되고”라는 말을 덧붙일 것인가? 혹은 나아가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이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과 관습들을 지키면서도 자유롭게 예수를 따를 수 있도록 승인한 것과 같이 무슬림들로서의 정체성과 관습들을 따르는 것을 허락하는 정도까지 자신들 가운데 머물러 있으면서 자유롭게 예수를 따르도록 용인해줄 수 있을 것인가?(Woodberry 2006, 23).

 하나님 나라의 선교는 무슬림 공동체의 구조를 무너뜨리지 않고서도 그들 가운데 복음을 심는 일에 초점을 맞추는 하나님 나라 중심의 선교적 접근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을 주님께 이끌기 위하여 우리는 무슬림들의 사회적 구조를 무너뜨리기 보다는 그들 가운데에서 그들과 더불어 관계를 형성하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교회들이 국내 무슬림들을 대상으로 하였던 선교의 결과로서 진실된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온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외국 노동자들이 외국에 살아 가면서 자신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받고자 크리스천이 된 것으로 가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그들이 이끌어 내진 방법으로 주님께 나아 왔을 때에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선교사적 재파송을 결코 기대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9)

또한 다른 무엇보다 더 어떤 기독 사역자들은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무슬림들로 하여금 더욱 강한 결속력을 가질 수 있도록 이슬람 공동체를 세우도록 도와주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일례로서 서울 근교의 P-시의 S-리의 모스크에 어떠한 일이 있었는가를 소개한다. 이 모스크는 한 때 어떤 기독 사역자가 기독교 중심적인 사역을 일으킨 지역의 크리스천 센터 회원들이었던 100여 명의 방글라데시 무슬림들로 구성된 공동체가 자력으로 세운 것이다. 100여명의 방글라데시 무슬림들은 자신들이 기도처가 필요하였기 때문에 크리스천 센터로 들어 왔던 것이다. 그런데 어떤 방글라데시 이맘이 오게 되었고, 그는 “왜 당신들은 크리스천 센터에 나가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들은 “우리는 기도할 장소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이맘은, “그러면 우리가 모스크를 짓자. 너희들이 돈을 모으고 모스크를 지을 수 있도록 기여하면 된다.” 그렇게 되자, 그 크리스천 사역자는 그곳을 떠나버렸다. 이와 같은 일이 실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만일 그 크리스천 사역자가 하나님 나라의 관점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그는 그들에게 다른 방법으로 나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의 무슬림들 가운데에서 하나님 나라 세우기

한국 교회와 크리스천들은 하나님 나라 관점에서 무슬림들이 국내로 유입하는 것을 먼저 바라 볼 필요가 있다. 즉, 국내로 무슬림들이 들어 오는 것을 이슬람의 기독교에 대한 도전으로 바라보기 보다는 오히려 복음전도에 대한 결정적인 기회로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위기는 곳 기회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기독교 구조적 시각을 뛰어넘는 하나님 나라의 관점이다. 오늘날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하나님 나라의 선교는 한국의 상황에 특히 중요하게 되었다. 사실상 무슬림들 가운데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데에는 상당한 전략을 필요로 한다. 이명희는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한국 교회과 선교 기관들이 알아야 할 몇 가지 점들이 있다. 첫째로 이들 대부분의 이주민 근로자들이 복음전도가 매우 어렵지만 나름대로 경건하게 살아가는 나라에서 온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들 이주 근로자들의 약 20%가 무슬림들이라는 것이다. 세 번째는 이들 근로자들이 (비록 불법으로 그 이상 체류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이 매 3년 마다 계약에 따라서 새롭게 대치되기 때문에 이는 매 3 년 마다 새롭게 복음 전도할 기회가 계속 창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산업 훈련생들 가운데 더욱 증가하고 있는 연령층이 20대와 30대라는 것이다.(Lee 2009, 372).

전략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이러한 상황은 먼저 그들이 한국에 체류하는 동안 온전히 주님께 돌아오는 적당한 방법과 적절한 기회를 얻을 수 있다면 그들이 돌아 갈 때에 선교사적 소명을 가지고 재파송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상, 한국 내 무슬림들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것과 관련하여 많은 이슈들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이슈들에 접근하기 위하여 몇 가지 기초적인 질문과 더불어 이야기 하고자 한다. 우리가 무슬림들과 나누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들이 주님께 나아오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공동체를 떠나야만 하는가?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관점으로 사역한다고 했을 때에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들을 주님께 인도할 수 있는가? 어떻게 그들이 주님과의 관계를 지속하도록 도울 수 있겠는가?

한국 교회들은 외국인 근로자들에 대한 복음전도의 중요성을 이해하기 때문에 그들을 전도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거의가 기독교 구조 가운데 그들을 끌어 들여 오려고 했기 때문에 대부분 실패를 경험하였다.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의 관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성경에서 이야기 하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중심 메시지들을 이해하는 것을 필요로 한다. 성경은 사실 모두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차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의 종교 구조로서의 기독교나 그 어떤 문화에 갇힐 수 없는 것이다. 즉, 하나님 나라의 관점은 예수께서 전파하신 것처럼 그들로 죄를 깨닫게 하고 회개케 하며 예수(이사)가 바로 그리스도(알마시)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도록 그들과 함께하는 삶 가운데에서 복음을 심는 것을 의미한다. 즉, 그것은 그들을 그들이 속한 공동체 내부로부터 우리가 몸 담고 있는 기독교 구조 가운데 이끌어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 계신 예수님을 그들이 발견하도록 우리의 삶을 그들과 나누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무슬림들 내부에서 일어나는 예수운동을 위하여 개척자적 사역을 한 케빈 히긴스(Kevin Higgins)의 다음과 같은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가치가 있다:

“남녀노소 누구나 할 것 없이 기독교를 거치지 않고서도 왕이신 주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행하신 일을 근거로 하여 그 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직접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다. “기독교를 뛰어 넘어서(beyond Christianity)” 일어나고 있는 전세계적인 운동들이 있다.”(Higgins 2010, 12)

위에서 케빈이 언급한 것은 예루살렘 공의회가(행 15장) 내린 결론에 근거한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당시에 구원을 위하여 꼭 들어 가야 한다고 생각하였던 유대인의 종교구조를 뛰어 넘어가는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무슬림들이 주님께 나아오기 위하여 자신들의 사회-종교적인 공동체를 떠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공동체 가운데 머물러 있는 상태에서 주님을 따르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어떻게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것인가는 전략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사실은 우리의 복음전도자로서의 자세 문제일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어떠한 자세를 가지셨는가 하는 것과 사실 동일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되신 방법, 즉 성육신이다. 이러한 자세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복음 전도자로서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이 되고 자유 하였으나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보다 많은 사람들을 얻고자 함이라고 분명하게 이야기 한다.(고전 9:19-23)

성경은 복음을 들어야 할 사람들 가운데에 그들과 같이 되어 예수님과 같이 바울과 같이 들어가는 것에 대하여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이는 우리가 그들처럼 옷을 입고, 그들과 같은 음식을 먹고, 그들과 똑같은 억양으로 말을 해야 하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그것 보다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그들의 눈높이에 맞게 복음을 의사소통하며, 어떻게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들의 고통과 삶의 이슈들을 함께 나눌 정도로 우리 자신의 기득권과 이미 습관화 되어 있는 자문화 중심적인 모든 생활 태도를 뒤로하고 그들의 입장에 설 것인가라는 자세를 이야기 하는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더들리 우드베리는 만일 바울이 오늘날 선교 여행을 다시 한다면 자신이 무슬림들을 얻기 위하여 무슬림처럼 되었다고 우리에게 이야기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Woodberry 2006, 23) 만일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그들의 구조 가운데에서 엄청난 기회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필요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그들 가운데 함께 머물러야 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렇게 함께 거함으로서 우리는 복음을 그들 가운데 심을 수 있다. 그것이 바로 그들 가운데 예수 중심의 공동체를 세우는 첫 단추가 되는 셈이다. 그들의 육체적 필요와 정신적 필요와 동시에 영적인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 우리가 그들과 더불어 함께 하면서 할 수 있는 사역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우리는 총체적인 접근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한국 교회들의 사역을 이러한 각도에서 살펴본다면 사실 재고해야 할 많은 것들이 발견될지 모르겠다.

한가지 매우 중요한 것은 그들이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갔을 때에 어떻게 그들이 주님과의 관계를 지속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아마도 이 부분이 국내 이주 무슬림들 가운데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사역을 할 때에 가장 어려운 부분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현재 세계적으로 조성되고 있는 국제적인 네트워크들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자신들의 고향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사역하고 있는 사역자들이나 공동체과 연결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중요하다. 모든 재파송 사역자들을 기존에 발현된 하나님 나라 공동체와 언제나 연결 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국제적인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던져 보아야 할 질문은 하나님 나라를 무슬림들 가운데 세우기 위하여, “예수라면 이들 무슬림들 가운데에 어떻게 하실까?”라는 것이다. 언제나 무슬림들에게 나가기 이전에 이러한 질문을 먼저 던져보아야 할 것이다. 한국 내 무슬림들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은 반드시 우리 세대가 짊어지고 가야하며 해결해야 하는 도전이요 과제이며 세계 무슬림들을 향한 복음화 전략의 결정적 기회가 될 것이다.

결론

사실상 한국 내에서 아직 내부자관점을 가진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무슬림 사역은 그 사례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이 성경적인 관점이고 전략적으로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직접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신 그 방법이기 때문에 꼭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 많은 무슬림들이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이란, 인도, 필리핀 등지에서 들어 오고 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이슬람 확장을 위한 의도적인 목적을 가지고 들어 온다. 상당 수의 남자 외국인 근로자들이 한국인 여성과 결혼을 하기 위하여 들어 오고 있기도 하며, 그 반대의 경우도 많이 있다. 많은 학자들은 앞으로 5년 안에 국제 결혼율은 34%에 이를 것으로 내다본다.

우리는 한국으로 들어오는 무슬림들은 이 땅 가운데 이루어진 하나님 나라 확장의 역사 가운데 현시대적 복음전도의 기회를 안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들어 오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도전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기회가 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다시 성경적인 원리로 돌아가 하나님 나라를 그들 가운데 세우는 사역을 일으켜야 한다.

(참고문헌)

김요한, “무슬림 가운데 오신 예수”, 도서출판 인사이더스, 2008.

Brown, Rick. 2011. Kingdom Kaleidoscope and the Frontiers: Part 1. IJFM 28:1.

Cohen, Robin. 1997. Global Diaspora: An Introduction. Seattle: Unviersity of Washington Press.

Higgins, Kevin. 2010. Beyond Christianity: Insider Movements and the Place of the Bible and the Body of Christ in New Movements to Jesus. Mission Frontiers. 32:4. Pasadena, CA: US Center for World Mission.

Jung, Noh Wha. 2007. The Expansion of Islam. Seoul: Unpublished research material, (in Korean).

Kraft, Charles H. 2005. Appropriate Christianity. Pasadena, CA: William Carey Library.

Lee, Myunghee. 2009. Migrant Workers’ Churches as Welcoming, Sending and Recruiting Entities: A Case Study of Mongolian Migrant Workers’ Churches in Korea. Missions from the Majority World: Progress, Challenges, and Case Studies. Eds. Enoch Wan and Michael Pocock. Pasadena, CA: William Carey Library.

Park, Chan Sik. 2008. 21st C New Nomad Era & Migrant Mission. Seoul: Christian Industrial- Society Institute Publishing, (in Korean).

Pierson, Paul E. 2009. The Dynamics of Christian of Mission: History through a Missiological Perspective. Pasadena, CA: WCIU Press.

The Holy Bible. New International Version.

The Korean Statistical Information Service. 2011

 http://kosis.kr/learning/learning_002007.jsp

Woodberry, Dudley J. 2006. To the Muslim I Became a Muslim? Contextualization and Syncretism: Navigating Cultural Currents. Ed. Gailyn Van Rheenen. Pasadena, CA: William Carey Library.

(각주)

1) 최만수르와 김요한은 인사이더스 선교회 소속으로 국내와 아시아권 무슬림들을 대상으로 하는 현장 사역에 동참하고 있다. (연락처: insidersm@gmail.com)

2) 이 이슈는 미국에서 발생한 9/11테러 이후, 세계의 평화를 위한 매우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예일대학을 중심으로 이슬람 지도자들과의 대화가 시도되고 있고, 실제 세계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온건한 무슬림들이나 이슬람이 다수인 국가의 정부들은 이슬람 근본주의나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분명한 경계를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3)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은 현시대의 남아 있는 선교적 과업을 다루는 전방개척선교에 대한 바른 이해를 추구하는 것과 동일하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다음의 저서 가운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무슬림 가운데 오신 예수” (김요한, 도서출판 인사이더스, 2008).

4) 김요한은 한국 내에서 하나님 나라 관점에서 온전히 이루어져야 할 무슬림 사역의 필요성뿐만 아니라, 세계선교의 남은 과업과 통일 그리고 아시아의 무슬림들과의 연관성을 찾아가는데, 여기에는 실크로드(내륙과 해양 모두)를 아우르는 무슬림 선교에 대한 비전을 담고 있다. (이에 관련된 글들을 KJFM 및 기타 저널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참고: http://www.missionmagazine.com/publish/php/articleview.php?idx=3671&section=41&diaryDate=2012-03-20; http://www.missionmagazine.com/main/php/search_view.php?idx=3789)

5) http://www.index.go.kr/egams/stts/jsp/potal/stts/PO_STTS_IdxMain.jsp?idx_cd=2756

6) 2012년 5월 통계월보: 밥무부 출입국ㆍ외국인정책본부.

7) 2013년 1월 통계월보,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8) 2013년 1월 17일 국내 기독교 교단과 선교단체 연합기관인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가 최근 발표한 ‘2012년 한국 선교사 파송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169개국에서 사역하는 한국 선교사 2만5665명(이중 소속 포함)으로 나타났다. 파송 선교사 수는 2011년에 비해 1411명 늘어났다.

9) 이러한 면에서 “서남 아시아 무슬림들이 주께 돌아 오기를 고대하는 자”의 직접적인 교회사역과 무슬림 현장사역의 비교 관찰을 통한 한국교회들의 무슬림 사역에 대한 각성의 소리를 들어볼 만하다.(KJFM, Vol. 44, 2013, 1.2)

-본고에 삽입된 도표 및 그림자료는 KJFM5-6월호 본문을 통해 보실수 있습니다.

*KJFM 2015년 5-6월호(한반도 분단 70년, 영역별 지도자의 통일을 향한 전망과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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