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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JFM] 교회가 흔들리고 부정하여 주저 앉을때(전쟁의 한 가운데에서)

랄프 윈터

I. 분석

오늘날 전 세계의 교회는 어떤 세력의 내부적 침투에 의해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복음주의는 급증하는 경제 원리를 따르는 이 세상 속의 수 많은 사람들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 그러나 반면 우리가 생각하는 복음주의의 잣대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의 유산으로서의 교리 그리고 교회 문화 

어떤 지휘가 높은 대표자가 나에게 자신의 교단에서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의 수에 대한 보고에 대해서 말해준 적이 있었다. 아마도 그렇게 교회를 떠난 사람들은 대부분 어떠한 이유로 교회에 출석하는 것을 멈추었을 거나, 살고 있던 지역을 옮겼거나, 연로해 짐으로 또는 병들어서 사망했을 경우로 인함일 것이다. 그렇게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는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음에도 교회는 “우리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데만 사역의 초점을 맞춰 왔습니다. 믿음을 갖게 하면 됐지 그러한 현 상황에 비중을 둘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상황은 사실 부정적이라고 단정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쉽게 생각해 봐도 그리고 복음주의적인 이해의 관점을 떠나서 비 복음주의적인 입장에서 볼 때 결정적으로 믿지 않는 사람들이 실재로 구원되거나 그러지 못할 것을 생각하지 않고 도전적으로 행하는 그들의 열심을 다른 시각으로 평가 할 수 있다(복음주의 외부의 시선으로 볼 때). 믿음 안에서 하나님은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끔찍하게 중요하고 가혹한 상태에 놓여있다고 증명하신다. 그러나 생각해 볼 때 우리, 복음주의자의 입장에서 분명 어떤 사람들이 그렇고 또 그렇지 않은 것은 목적을 위해 중요하지 않게 여겨지기도 한다.

더불어 복음주의자에 있어서 종종 사람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열망이 식는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가끔 간단하고 기계적인, 마치 줄자와 같은 치수 재기를 반복하거나 “당신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습니까?”라고 확인하고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정상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에만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야곱 로웬은 당시에는 앞선 생각을 한 선교사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선교적 선포를 발전 시켰는데 그는 그것을 “인스턴트 개종” 즉 즉석 개종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 생각이 대단한 생각이 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인생 변환의 중요한 시점이기에 이것은 일시적으로 즉석으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다. 이것은 빌립보서 2:12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구원에 이르도록 힘쓰라고 말씀 하신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우리 복음주의자들은 조금 비약한다면 하나님께서 오직 개인의 개종에 대한 시인에 대해 알기만을 원하신다고 주장하며 종종 성급하고 강제적으로 믿음을 강요 하기도 한다.

홈스쿨링 학생들을 위한 대학교

하나의 예로 복음주의자들은 패트릭 헨리 대학을 가기 위해 줄지어 서있는 뛰어난 학생들을 통해서 해답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하나님의 하버드: 아메리카를 구원하기 위한 선교적 기독교 대학 라고 이름 지어진 책이 있다.

저자 한나 로센은 유대 여성으로서 워싱턴포스트에서 저널리스트로 한 해 동안 집필했으며 자신의 학문에 관한 깊은 연구를 하고 이것은 의회와 백악관에서 사용되기도 하였다.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그녀는 미국의 지방, 주, 국가 정부에서의 복음적 영향이 증가하는 현상에 대한 것과 이를 통한 중요한 어떤 가능성에 대해 거론 했다.

이러한 연구는 그녀가 숙제처럼 가지고 있던 생각에 대한 답을 얻는데 확신을 갖게 했는데 그 학교의 교수회 모임, 교실, 학생회 모임 등 각 영역과 몬타나, 시애틀, 캘리포니아의 집에서 떠나온 학생들에 대한 어떠한 종교적인 확신을 가졌다.

그녀는 진실로 어떻게 실재적인 감동을 학생들에게 줄 수 있는지를 열망했다. 그녀는 학생들이 참으로 놀랄 만한 성숙한 인격을 갖춘 것을 알게 되었다. 홈 스쿨을 통해 놀라운 학생들이 탄생 한 것이다. 그리고 연구 중 많은 학생들 사이에서 대단한 어떤 것을 발견 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학생들과 가족처럼 함께 지내며 개종에 대한 복음주의적인 개념을 전혀 갖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가끔 그녀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질문 하였다. “우리가 오늘 믿음 없이 생명을 잃는다면 지옥에 간다고 생각하나요?” 이에 대하여 학교의 한 리더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위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또 답을 내려 고려했다. 그리고는 “예 그렇게 믿습니다. 그러나 나는 지옥에 가고 안 가고의 문제 때문에 울부짖으며 날뛰고 싶지는 않아요.” 라고 쉽게 대답했다.

왜 그녀는 그렇게 쉽게 답 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녀의 생각은 이랬다 “이 질문을 하는 당신은 내 생명을 담보로 판결을 내리는 판사가 아닙니다. 당신은 모든 대답이 당신의 입장에서 되기를 원해요. 하지만 나는 진정한 답을(그 대답은 진실로 당신을 위해 또한 나를 위해)알기 원해요 그 어떤 구원의 방법 보다, 그 무엇보다 하나님이 더 낫고, 성경이 더 낫고, 예수님이 더 낫다는 것을 알기를 진심으로 원해요. 하나님께서만이 오직 사람들의 재판장이십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렇게 답하지는 않았다. 물론 이 유대교 저널리스트는 더 이상 어떤 질문도 하지 않는 것이 낫겠다는 것을 잘 알다. 그녀는 진실된 믿음 갖기를 열망하는 그 소녀의 눈빛을 이해 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복음주의적 교회 밖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실재적 마음의 표출이다. 이것이 바로 교회가 주저앉고 무너져가는 모습을 입증하는 증거인 것이다. 참으로 안타깝게도 이것은 정말 슬픈 사실이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헤아릴 수 없이 관대한 좋은 것이 있다고, 중대한 윤리가 존재한다고 그리고 복음주의와 연합되는 함축된 그 무엇이 있다고 분명히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현실은 놀라운 것이다. 이 학생과 같이 깜짝 놀란 만한 포부와 열정 그리고 진정한 믿음에 대한 열망을 가진 뛰어난 이들 중 많은 학생들은 종종 대학 진학 적성 시험, 즉 수능시험에서 만점을 맞고 다른 지명도 있는 대학을 뒤로하고 이 대학에 진학 했다. 그들은 뛰어난 능력을 사용하여 정부에 맞서 진정한 복음을 전하기 위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그들 중 셋은 미국의 대통령이 되고자 했고, 다른 이는 상원위원 등등 이 되고자 했다. 그룹들 중 이미 졸업한 200여 명은 워싱턴에서 복음주의를 앞세우는 정부 요직에 임명되어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성경의 원리를 올바르게 전하고 가르치는 그 어떤 정복을 통해 현실적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믿고 있다.

진실로 지금까지는 편견 없는 세상의 시각으로 복음주의적 입장의 문제점을 비판의 시각에서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지는 않았다. 이렇게 참된 기독적 시각에서 홈스쿨 제도를 통해 교육 받은 학생들을 위해 학교를 세운 패트릭 헨리의 놀라운 업적, 놀라운 믿음을 가진 십대들의 집단은 아마도 교회에 뾰족한 첨탑을 제공하는 것과 같은 일일지 모른다. 또한 이것은 참으로 빙산의 일각부터 깨는 팁이 될 지도 모른다.

새로운 대질 심문에 국면

갑자기 양쪽, 교회 안과 밖의 복음적 운동은 지독한 시험대에 오르게 될 것인가? 기독교의모든 것을 복음주의가 대변하는 것 인가? 현재까지도 기독교는 미국 내의 주 종교이다. 정치와의 연관성도 전혀 무관하지 않다. 물론 미국 내 많은 사람이 복음주의에 동참한다. 전형적인 이미 자리가 잡힌 미국교회 형식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것은 일종의 매너리즘이 아닌가? 복음주의는 혹시 또 다른 신앙 쇠퇴의 씨앗을 내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어쩌면 그 상황은 큰 파국을 예상 할 수도 있다. 이것은 함부로 논의 되어서는 안되지만 신중하게 인내하며 글로벌 교회는 화석화 된 복음주의로부터 어쩌면 조금 멀어져야 할 수도 있다. 미국 내에서 복음주의의 업적들 중에는 많은 좋은 결과와 신자들의 삶에 영향을 끼친 긍정적인 생각들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문제를 내포한 것도 사실이다.

이로 인한 파괴적 현상은 실재로 분명하게 미국 내에서 발생하고 있다. 여기 흥미로운 통계가 있는데 미국 내 75%의 십대들이 기독교 복음주의 가정에서 자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러한 가정 내에서 믿음을 잃고 있다. 소위 믿음의 가정에서 자란 청년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교회를 떠나고 만다. 어떤 교단은 그 수치를 85%라고도 보고한다.

복음주의의 업적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지 모르지만 개개인이 실재적 믿음을 갖는 일에 대해서는 한번쯤은 의문을 가져야 할 것 이다. 실재로 이러한 파괴적 현상은 미국에서 더 극명하게 중가 하여 나타난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던 사실 즉 복음주의가 신자들의 믿음을 지키고 있다고 더 이상 믿고만 있을 수는 없게 된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이 믿음을 갖도록 이십 여 년 동안 발버둥쳐 왔다. 하지만 결국 얻게 된 것은 허탄함에 빠진 계층과 일부는 오히려 이러한 현실에 침묵하고 잠잠해 졌다.

과연 이것은 세상과 교회를 위한 필수적인 고민인가? 75%의 젊은 층이 그들이 원래 가졌던 그 첫 믿음을 잃어서 그들의 교회에 당장에라도 문제가 발생하는 것인가? 혹은 교회가 문제가 있어서 그들이 떠나는 것인가?

왜 그들은 그 첫 사랑의 믿음을 저버리는가? 그리고 왜 일부가 또 다시 교회로 돌아 오는가? 그리고 그 돌아온 일부는 그들의 자녀들을 위해 기독교 내 정세를 내다본다. 그러나 실재로 개인적 신앙을 위한 구체적, 실재적 제도와 이를 조성키 위한 분위기가 아직도 부재함을 결국 다시 한번 통감하게 된다.

일본과 일본교회를 위해 사역하고 헌신하는 선교사들은 정말로 작은 규모의, 그들의 교회 성장에 대해 무척 부끄러워한다. 그러나 조사에 의하면 그 작은 일본 교회는 그렇게 소규모로 성장하기는 하지만 결국 대규모로 성장한 교회에서 결국 빠져나가는 성도의 비율을 이해 한다면 통계적으로 마찬가지임을, 별 차이가 없음을 깨닫게 한다.

이와 비슷하게 세계에서 천만이 넘는 어느 지역의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어떤 종족은 교회의 개념을 전혀 모른다. 왜냐하면 그들이 추구하는 바도 우리 복음주의자들과 다르고 구체적인 삶이 정황과 이해가 전혀 다르기 때문에 교회에 대한 우리와 동일한 이해를 절대로 할 수 없다. 그러한 상황에서 복음주의 입장에서 전도한다면 얼마나 그들을 교회에 머무르게 할 수 있을 것인가?

반대로 인구 증가가 가속되는 세계 속에서 작은 그룹일지라도 일부의 신실한 일본 성도들은 외국인들을 전도하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그들의 내면이 만약 신앙적 패배감으로만 가득 차 있다면 세상을 위한 이러한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들에게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와, 하나님의 정복과, 천국에 대한 소망 그리고 보증이 없었다면 실재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만약 이러한 실재적 움직임, 행동하는 실천이 없다면 또 다른 종교 예를 들면 불교와 결코 다른 것이 없는 것이다.

“주님의 다시 오심, 재림”을 진심으로 기다리는 소수의 미국 성도들은 그들의 교회 공동체에서 그들의 믿음을 지키기 위한 어떠한 또 다른 제도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들이 속한 공동체의 친밀감이 언제나 그들의 그러한 믿음 붙잡아 두게 할 수는 없다. 만약 붙잡아 준다면 출석하는 교인의 수를 늘려 주는 것이지 진실로 믿음을 소유한 이의 수치를 늘려 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강력한 산성 부식과 세상에서 마음이 좀 스는 것

우리는 복음주의적 십대들이 별로 관심도 없고 참여도 안 하는 교회 행사와 생활을 벗어나게 하여 현실을 직시하게 하고 개선점을 찾기 위한 의견을 내도록 인도하며, 세속적 학교 생활의 압력 가운데에서 온전한 신앙을 소유 할 수 있도록 그들을 이한 진정한 답을 찾는데 노력해야 할 것이다. 실재로 많은 학부모들이 자신들의 자녀를 위해 주일 학교보다는 학위를 위한 학교에 시간과 열정을 더 쏟아 붙게 하는 것이 현실이다.

통계적으로 17명의 복음주의적 젊은 중 15명은 기독교 대학에 진학하는 것에 전혀 흥미가 없다. 그렇다면 세상의 일반 대학에서 그들에게 제공하는 무엇이기에 그런 것인가? 왜 우리는 세상 속에서 이러한 신앙적 열정을 끌어내려야 하는가? 이성적인 것은 필요치 않은 것인가? 왜 세상은 자꾸만 무신론으로만 달려 가는가? 그리고 대중 문화와 정치, 대중들은 복음적 영향에 왜 이다지도 냉소적인 것인가?

이것은 교회 내에서 일찌감치 거론되어 온 주제들이다. 복음주의는 20세기에 시작 되었고 대학교 밖의 운동으로서 폭 넓게 시작 되었다. 이 운동은 초기에 붐을 일으켜 157개의 성경학교, 단과대학, 종합대학, 대학원을 설립하게 기반을 만들고 백 여 년의 미국 기독교계 역사를 이끌어 왔다. 세기말에 약 천 개의 복음주의 단체는 막강하고도 수준 높은 교육 기반 하에 급 성장했다. 그러나 그들은 소수 자들을 위한 그 어떤 것이 배재 했음을 깨닫게 되었다. 부식되는 것의 한 예로 만약 지도자들이 온전하게 이끌어 갔으면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는 회심의 마음이 든다. 반가운 사실은 현재 세상 사회 속에서 이러한 새로운 비전과 시각을 가지고 그러한 운동에 반향을 가진, 믿음을 가진 젊은 학생들의 반가운 움직임이 있다. 이에 부가하여 전방개척 선교를 위한 최후의 사명에 대해 나는 선교학 교수로서 두 가지 복음적 주제를 종교적 측면에서 한 주립 대학에 제시 하였다. 그러나 아직 그 제시는 실재적 변화를 위해 정식으로 확립된 상태는 아니다. 그에 대한 부담을 인내함으로 조금만 줄여주기를 부탁한다.

성경을 포기 할 것인가?

수많은 노력하는 신자들 중 오순절 계의 목회자 헥토 아바로스는 아이오와 대학에서 종교학 강의를 맡고 있다. (지난 시간 나는 실수로 일리노이 대학 이라고 했다) 그는 성경 공부를 위한 최종 판 이라는 서적을 집필했다. 그는 세속적 인간주의와 성경과의 관련 없음에 대한 관점을 학자적인 입장에 증명하는데 소명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가진 그러한 주장을 이해 할 수 있도록 서론의 일부를 소개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성경공부는 이제 그만 두어야 한다. 우리는 단순하게 성경을 문자적으로만 이해하려는 시도를 멈춰야 한다, 역동성 없이 매일 반복되는 문자적 이해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성경은 이 세대에 맞는 능력과 권능으로 역동적으로, 보다 실재적으로 움직이는 능력이 되어야 한다. 성경 속의 역사가 이 시대에 맞게 적용 되어야 한다. 고대에 일어 났던 어떤 사실들은 때로는 현 시대와 잘 연결되지 않고 마치 나와는 상관없는 거리 있는 이야기로 이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때로는 잘 읽혀지지도 않는다. 어느 날 성경은 그 비극적인 역사를 보여주며 전해진 비극적 상황을 통해 놀라운 깨달음을 역사를 통해 보여주며 뼈저리게 느끼게 하며 다른 한편으로 믿음을 가지고 당당히 서게 하며 결국에는 인간으로서 성도로서 온전히 발전된 모습을 보여 주게 될 것이다.

우리는 왜 인간이 이러한 성경 속의 역사적 상황들을 겪을 수 밖에 없었는지를 진실로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다시는 겪지 말아야 한다. 분명히 이러한 생각은, 이전과는 다르게 신학계의 동료들이 보여 주었던 검증된 학설과는 다른 것이다. 복음주의적 주장을 더 이상 계속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의 신념 가운데 선포는 계속 될 것이다.

나는 이러한 의견을 신중히 고려한다. 그는 복음적 유산이 지닌 지난 과오에 대한 부끄러움을 과감하게 끌어 낸다고 본다. 그는 성경이 역사적 사실을 통해 사람들이 듣기에 부담스러운 어떤 나쁜 예를 제시하는 것이 아닌 오직 긍정적인 말씀만을 전한다고 믿는다.

우리가 중요한 생각을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고대의 고딕 성경은 열왕기 상하의 위치를 옮겼다 왜냐하면 스칸디나비안의 왕조 기반이 이미 전쟁에 대해 너무 많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 그 이유이다. 중국의 타이핑 운동은 창세기 19장을 너무나 쉽게 내 던져 버렸다. 아발로스는 복음주의 자들이 성경을 표현하는데 어떤 부정적인 생각을 찾아 냈을 때 교회가 이해 할 수 있도록 평범한 수준으로 조율하여 부정적 표현은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성경을 온전히 가르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다면 이러한 것들이 솔직히 표현 되어야 했는데 거부 했었음을 지적하였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다리셨는지 에 대해 인상을 남기기 보다는 인간의 입장에서 얼마나 인내하시는 것이 필수였는지 합리화 하고, 신학교 교수로서 신약 시대의 난폭한 정권과 같은 교계 내에서 그는 성경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려고 애썼다. 그는 달라스 신학교 저널에서도 구태의연하게 표현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서가의 전통적 구조들, 성경이 오늘날 말하고자 하는 바를 온전히 논하기 위해 인간적 서가 구조를 채택하지 않았다.

성경은 이에 대해 우리들에게 주먹을 먹이지는 않는다. 이것은 약함을 지닌 대단한 지도자의 이해의 한계에 대해 묘사일 수 있다. 이것은 흠 없는 대단한 리더십에 대한 묘사가 아니다. 흠 있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반대로 그의 상관 관계를 통해 본다면 개인의 일대기를 놓고 우리는 어떠한 흥정을 할 수 없다. 그러나 만약 그들이 정확하게 맞는다면 우리는 이러한 예상 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떤 기발한 학교 숙제에 대해 늘 기발한 답을 찾는 것을 예상 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정도에서 벗어난 것이다. 성경의 특성 중 하나는 한 나라의 일대기에 대해 진솔하고 정확하게 기록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 오류가 없는 것이다. 기록과 보존에 대한 오류가 없기 때문에 이것은 현재까지 세상에 제시되고 사람들을 변화 시킬 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이 이해 할 수 있을 때까지 인내 하신다. 천 년이 지나도. 그 이상의 시간이 흘러도.

하나님도 포기 하실까?

이 책은 매우 유명한 신학자이자 무디 신학교와 위튼 대학을 졸업 한 바트 어만의 저서로 유명하다. 그는 또한 목회자로서 종교학을 채플 힐에 위치한 노스케롤라이나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다.

지난 시간 나는 그의 소 논문으로부터 성경 고고학적인 측면에서 왜 이 세상의 권세 잡은 사단이 신자들의 믿음을 잃게 하는지에 대한 내용을 인용했다.

이것은 나를 전통적 이해 즉 왜 세상에는 고통이 존재하는 것인가? 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결국 나는 성도들이 통합적인, 총체적인 해답을 얻지는 못했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을 고려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생각들과 이론들이 결국 만족을 주지 못했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한 사실 결국 내가 믿음을 잃게 된 경위의 전부이다.

지금 나는 그의 최근 저작 하나님의 문제, 얼마나 성경은 우리의 중요한 질문에 잘못된 대답을 주는가? 의 인용구를 통해 잠시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왜 우리는 고통 하는가?

그는 작은 영국의 성공회 교회의 그의 아내와   (그녀는 아직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함께 참석했던 성탄절 전야를 통해 성직자들이 얼마나 믿음을 저버렸는지를 말해줬다. 당신은 어둠으로 들어오고, 당신은 다른 어둠을 받아 들입니다.

그는 계속 언급했다.

그래요, 나는 이 기도가 상달되기, 이 기도가 상달 됨을 믿기를, 내 스스로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나는 할 수 없습니다. 그 어둠은 너무나 깊고 인내하기 어렵고 그 영적 부재는 소름이 돋는 것입니다. 이 시간 동안 성탄절 전야 행사는 계속 되었습니다, 700여 명보다 많은 수의 어린이들은 이 시간 기아에 굶주려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250여의 다른 어린이들은 마실 물이 없어 죽어가고, 300명의 다른 어린이들은 말라리아로죽어 갑니다. 입에 담고 싶지도 않지만 이 시간 누군가는 강간 당하고, 토막 살해 당하고, 고문당하고, 사지가 전달 당하며 살해되고 있습니다. 무고한 피해자들은 인신 매매 현장에서 가난으로 뼈가 갈려지며, 빈곤한 이민자로서, 농장 노동자로서 우리의 나라에서 집도 없이 떠돌며 정신적인 결함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또한 고통의 침묵에 수 만이 겪고 이겨내고 살아갑니다. 아이들은 낙태로, 자동차 사고로, 민감한 백혈병으로, 이혼으로 가정이 분리되는 아픔으로, 직업을 잃은 상실감으로, 수입이 없음으로, 의지를 잃음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도대체 어디에 계신 것인가요? (P.6)

그의 책은 신앙의 표현을 위한 헌신 네 가지-그들은 동의하지 않는다-를 추구한다. 한편으로 이러한 주장을 했다고 해서 그에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다고 판단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발로스가 그랬던 것처럼 그는 어떤 이들의 시각에서 본다면 성경을 삐딱하게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생각을 복음주의에서 차용한 것인가? 무디로 부터 비롯된 것 인가? 위튼 대학에서 발생한 것인가? 아마도 하나님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정확하게 알 게 하는 방법을 주시지 않을 이유라도 있는 것인가? 우리는 늘 옳은 것만 행하는가?

성경은 주어진 그 시간에 사람들에게 정확한 어떤 그림을 제시한다. 이것은 상황에 맞는 신선한 그림인 것이다. 생동감 있게 움직이는 그 그림은 신앙의 성장과 기회, 깊은 영감 그리고 값 있는 행동을 행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한다.

나는 이러한 비판적 의견을 제시 하는 것이 그리 편하지만은 않지만, 그러나 두 가지 이 책 속의 생각은 도저히 함께 둘 수 없는 것이다. 어만은 이렇게 말했다. (pp.122, 123)

지금까지 인간은 잘못된 행동 그리고 다른 이에게 아픔을 주며 그들의 자유의지를 방출 했다(하나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박해적인 행위, 고문, 살인을 멈출 수 없었다. 잘사는 나라이든, 개발 도상국이든, 빈곤 국이든 잔악한 이들은 더 뻔뻔해지고 제약은 없어 졌다.

모든 생각은 고려된다. 여기 작가 한 사람이 있다. 그는 이미 20여 권의 책을 집필했고, 하나님을 대적하지는 않으나 일반적인 인본주의와 성경의 깜짝 놀랄 이야기 사이에서 몸부림친다. 그러나 이 책은 진정 아니다 싶다. 나는 그의 이러한 시도는 포괄적으로 참으로 사단적이라고 느낀다.

그는 현재도 대학 세계에서 살며 생존의 지시를 하며 초자연적인 모든 것을 멈추라고 한다 마치 세상과 사단, 악의에 찬 세력을 거룩하게 포장해서 중재하는 자와 같다.

나는 그에게 수긍 할 수 없다. 그리고 오히려 “당신은 사단이 실재 존재를 잊은 것 아닌가요?”라고 반문 하고 싶어진다. 신약은 성경학자한테 매우 친밀한 것이다. 신약은 사단의 존재에 대해 구약의 굉장한 영감을 인용해 언급한다. 그러나 오늘날 이 이해는 대학의 기독교 동아리들에서 최상의 이해를 제시 하는데 한계를 느끼게 했다.

이것은 쉽게 감지되는 것으로 일종의 인간 잠재의식을 건드리는 것인데 마치 그것은 그가 쌓아온 모든 경력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었다. 지금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도 그는 세속 사회에 대한 연구를 해왔다. 그는 아마도 그의 내재된 분노를 사단적으로 표현했고 이것은 자신과 주변에 큰 손상을 입혔다.

만약 그것이 진실이라며 이 책은 우리의 의식 속에 내재된 충격적인 사단의 실재를 알게 해준 것이다.

우리는 그는 너무나 친절하게도 사단을 묘사한 것에 대해 감사한다. 그럼에도 만약 잘못 사단의 이해에 대해 아직 우리의 대학 세계 속의 사회적 압력으로 누락된 정황이 있다면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한다. 기독교 대학이라 할 지라도 어떠한 존재의 좋고 나쁨, 옳고 그름에 대한 바른 이해와 그에 대한 언급을 조금이라도 했어야 하지 않는가? 특별히 세속적인 분야를 위해 기록했어야 하지 않는가 말이다.

운 나쁘게도 그의 말에 의하면 그는 해답을 제공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는 분명히 사단의 이해에 대한 문제를 제시하고, 이에 대해 기록했다. 이것은 그를 그가 말한 것과 같이 믿음과 사단이 존재하는, 즐기기 좋은 세상과의 사이에서 있어서는 안 되는 긴장으로 이끈다. 이것은 의심의 여지 없이 전임 대학 교수에게 매우 실재적인 한계를 제공한다. 교수들은 생각하고 또 결과를 기록한다. 그러나 젊은 학생들은 듣지만 실천은 조금밖에는 하지 않는다.

우리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부적당한 우리의 고통과 사단에 대한 신학적 문화

나는 존 마크가 집필한 믿음의 이유 라는 책을 지난 시간 참고서적으로 사용 하였다. 복음주의적 달라스 교회에서 젊은 이들을 위해 오랫동안 헌신하고 사역해 왔다.

그는 십 년 동안 US 뉴스, 그리고 세계 리포트를 위해 집필했는데 모레이 세퍼의, CBS 60 분 이라는 프로그램의 PD로서도 사역 하였다. 그리고 3개의 책을 집필 했는데 그 중 하나는 논 픽션인 믿음의 이유 라는 책이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서 어떠한 질문을 첨가는 하는 것이 나았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방법을 추구하지 않았다.

첫 번째, 그는 복음주의를 차용 함에 실패 하였다. 그가 유대 소녀의 결혼 후에 그는 매우 행복 했고 한편 복음주의를 계속 주장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 그녀가 지옥에 가게 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몇 해후 CBS가 취재 차 보스니아를 방문 했을 때 세르비아의 기독교인들이 보스니아의 무슬림들을 수만을 살해 하였다. 그는 일반적인, 그저 이름뿐인 유명무실한 기독교인들에 어떻게 상황을 대처했는지를 보고했다. 그러나 왜 하나님이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을 허용하시는 지를 이해 못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거부해 왔다.

먼저 내가 언급한대로 한나 로센은 한해와 절반 을 통해 일반적인 시각에서의 복음주의를 표현 했고, 패트릭 헨리의 시각에서 연구하였다. 이것은 홈 스쿨에서 인기 있는 주제가 되었다. 반대로 존 마크스는 거의 비 복음주의 적 단어로 귀신축사와 같은 용어를 사용하였다. 그는 많은 지역에서 인터뷰하고 일반적 시각과는 다른 복음주의적 시각을 표현했고. 그는 새길만한 핸드북과 같은 내용을 복음주의적 문화 내에 남겼다. 그것은 정보적이고 존경할 만한 것이고 인터뷰를 통해 기록되어 있다.

그는 60분 프로그램을 통해서 “남아있는 숨겨진 이야기”에 대해서 언급했다. 그는 이렇게 질문하고 마쳤다. “당신은 그 숨겨진 곳으로 가려 하나요?” 이 관점의 초점은 복음주의가 배재된 세상의 바다에서의 그들을(우리) 허용하는 수영을 하는 것이다. 이 기본은 이제 수면에 떠오른 것이다. 이러한 입장을 앞에 두고 여러 가지 표현이 수반되는데 그저 누군가는 행동으로 옮기고, 누군가는 환희에 차서 열망하며,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존재한다.

모든 책으로만 통해 느끼기에 이것은 정말로 기나 긴 정화의 탐색이다. 그렇든 그렇지 않든 우리는 “떠난다 그 숨겨진 곳으로”

그는 매우 존경할 만 하고, 위엄 있으며, 귀품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뉴올리안스의 케트리나 사건에 대해서 교회적으로 낭비적인 요소를 지적 것이다. 정부 단체는 그의 이러한 의견에 대해 반대의 입장을 취하였다. 이것은 참으로 측은한 것이었다. 그는 집안에서 사소한 잡소리를 늘어놓는 복음주의 자아 같은 태도가 아니었다.

어만처럼 그는 깊고 만연한 세상의 악마적 기운에 대해 우려의 기색을 표명했다. 그의 책 마지막 부분은 이러한 사실을 분명하게 나타낸다.

20세기 나의 시대에 이것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질문이다. 보스니아? 히로시마? 르완다? 아르메니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리고 많은 기도교인들이, 유럽의 유대인들이 그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중대한 이유를 찾는다. 그렇게 신앙 안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 수 많은 기독교인들이 부끄럽게도 인종 차별주의적인 정치와 세상의 모든 식민지 주의를 용인하고, 그들의 공명정대하다는 법은 살인을 용납하고 광범위한 학대를 방조한 것인가? 어떤 민족은 이것을 가중시켰다, 어떻게 해왔길래 그 긴 학대가 그토록 장시간 지속 되었는가? 악한 신들이 이러한 악몽을 만들었는가? 악한 신이 이러한 공포를 제공한 것인가? 서로가 몇 세기를 거쳐 서로를 고통스럽게 하는 이러한 일들을 만들었단 말인가?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진실로. 누구도 어떤 나라도 우리의 자녀들, 다음 세대를 위해 준비해야 한다.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 나는 더 이상의 폭력을 원하지 않는다. 나 스스로 이 문제들에 대해 함축해 본다. 악한 영이 나의 존귀와 나의 믿음을 저버리게 할 수 없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분명하게 말할 수 없다. 지금 나는 이 자유로운 나라에서 참으로 자유 하다. 나는 20세기에 사는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쉽지 않은 죽음에 대한 권위를 갖는다. (사람이 생명의 존귀함으로). 나를 이 숨겨진 세계에서 떠나게 하라.

마크의 심층적이고 중요한 생각에 대해 반 초자연주의 운동에 대해서 기본적인 책임에 대해 질문의 여지가 없다. 이와는 다르게 아발로스 그리고 어만 그는 몇 년 안 대학에서 초자연적인 사실들은 말하지 않는 것 좋겠다고 말하여 일체의 강의 사역을 섬기지 않았다. 그는 워싱턴 DC, 뉴욕 그리고 일반 미디어를 통해 세속적인 삶을 살았다. 만약 이 일을 하면  그들이 매우 종교적이라든지 또는 유대인은 자동으로 지옥에 간다고 믿거나 하든 상관없이 사람들에게 조롱 되었다.

더하여 자신들의 시각으로 그의 어느 한편의 필요는 자신의 아내에게 의지하고 또한 시험되지 않은 많은 복음주의에 대해 그는 한나 로센처럼 자신의 의견을 다시 제공하고 또 제공했다. 그가 주장하는 그 “공포와 함께” 만약 복음주의들이 이 땅을 덮었다면 무슨 일이 일어 났겠는가

우리의 다음 세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나?

우리의 다음 세대들은 교육을 거부하기 시작한다. 또한 세속적 세상에서 뛰쳐 나올 때 세상이 불어대는 세찬 바람은 순결한 그들을 향해 불어 올 것이다. 그저 살기 위해서, 직업을 갖기 위해서, 직업을 지키기 위해서 복음적이지 않은 사람들 같아 보이기 위해서, 그 어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복음주의적인 시각을 버려야 할지도 모른다.

만약 사람들이 답을 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려면 어떤 대답을 해 주어야 할까? 프랑스80%가 기독교인이다 그러나 오직 20%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한다.

II. 치료

내 의견으로는 작은 문제는 예수님을 따르는 부르심에 대해 근본적 싸움을 직시하지 않고 우리가 우리의 눈을 스스로 가리고 있는 것이다. 교회는 무단이탈 해버렸다. 기독교 고유의 종결을 보기도 전에, 그것이 시작되기도 전에 포기해 버렸다. 모두들 평화로운 군인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안다. 이러한 상황은 성도들을게으름에 빠지게 한다. 군인들이 이미 제대를 해 버렸다, 군인들은 군대를 떠났다.

복음주의적인 성경 해석은 이 상황을 바로 이끌지 못했다. 그들은 참으로 고루했다. 많은 이들은 평화로운 시간을 가진 군인들을 상상하지 못한다. 군인은 쉬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싸우라고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복음주의자들이 보유한 성경 해석은 우리를 구원하도록 끌어내지 못한다. 우리의 안전을 지키느라 그리고 세상에 낙인 찍히지 않으려고 그저 문제만을 꼬집고 이야기 할 뿐이다.

전 세계 정세에서 미국의 시대가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아직도 세상에 많은 영향을 준다. 사람들은 문제에 대해 비교적 간단하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거대한 현대의 국제교류는 그들의 큰 세상 이외에 잘 눈에 띄지도 않는 작은 세상은 하잖은 것이기에 돌볼 여유가 없는 것으로 여긴다.

지금 세상의 문제들은 우리의 미디어를 통해 전달된다. 더하여 우리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더 수용 할 수 있는 어떤 문제들을 해결 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대단한 기회, 그리고 대단한 의무가 역사보다 더 중요시 되어야 한다. 아직 우리와 교류되지 않는 참고자료들, 그리고 세계의 문제에 도전하기 위한 효과적 시도와 전통 사이의 균열은 대단한 것이다.

이러한 제시를 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 성도들은 오늘도 교회를 떠난다. 그리고 결국 그들의 믿음을 잃는다. 그들이 시작 했던 신앙의 첫 자리에 머무른다. 이러한 일들에 대한 이유 중의 하나로 교회는 사회를 좀먹는 부정 부패, 질병, 그리고 천 만명의 희망을 잃은 사람들의 빈곤에 대해 어떠한 일도 하고 있지 않는다.

이것은 믿는 이들의 공동체 안에 하나님의 나라로서 배제된 무언가가 있는 것이다. 고통 받는 어둠의 세상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구해야 할 것이다.

세상은 그 옳은 일을 행할 출입구를 세우기 위한 기초를 다져야 할 것이다. 미국 최대 갑부 버펫의 $50만 달러짜리, 선물 그리고 지금 미디어 황제 테드 터너의 월급, 그의 200만$은 저 바다를 건너 기독교 공동체에 더 좋은 것을 할 수도 있다(지난 32년 동안 3,600만$을 날려 보냈다. “대부분의 고통과 아주 작은 기쁨”이 부재목이다)

그곳에 세계의 말라리아를 퇴치 하기 위해 자세한 의도를 가진 어떠한 기독교 조직 있는가? 왜 존재하지 않는가? 카터센터가 하는 것처럼 기독교 선교 세상의 일반적인 병들과 싸움하는 선교단체가 있는가? 왜 안되는가?

우리는 왜 존 마크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놀라운 그리고 충만한 가운데 미국의 교회가 카타리나의 잔해 앞에서 무언가 할 수 있기를 소원했나? 비극에 가득 찬 이 세상에서 그 앞장서는 대열에서 빠져 있었다. 기억하라, 어만과 마크스는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복음주의는 반드시 사단의 능력을 제압할 무언가를 만들어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 현재 교회의 모습이 어쩌면 하나님의 작품이 아니라는 것을 믿게 되면서부터 문제는 비롯됐다.

무엇이 복음주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어떠한 지성적인 고려가 내부에 있었는가? 또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왜 이토록 어리둥절 해 하는가? 그리고 개개인의 기독교의 역사 속에서 성숙한 팀워크를 만들어낸 경우가 없다(특별히 선교단체의 경우). 중요한 문제를 풀어보자. 우리는 많은 개인을 구원했다고 고려한다(은총의 문제이다). 우리 모두는 이것이 진실로 필요하다.

복음주의는 짧게 함축될 수 없다. 만약 복음주의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분명한 의지가 없다 하더라도 그것에는 분명 하나님의 의지, 뜻, 직관이 담겨 있다. 하나님은 어떻게 해서든 당신의 뜻 가운데 우리는 이끄신다. 2001년과 2006년도 사이에 선교단체들은 복음주의와 교회 설립 계획이 2.7%성장했음을 밝혔다. 그 동안 선교단체는 “변화와 발전”으로 75% 성장했다.

우리는 많은 수의 선교사를 장기 선교사로서 충분한 지식과, 기술, 또는 신학 교육을 통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할 교육을 전수하지 않는 채, 미흡한 상태로 전 세계에 파송 해 왔다. 우리는 예수를 따르려는 사람들에게 어쩌면 말로서는 잘 섬겨왔다. 그러나 그들이 다른 이유로 호소 할 때 심각한 문제를 풀 수 있도록 대처하는 준비는 되지 못했다는 것이 현실이다.

역사적으로 100여 지역이 넘는 선교지를 볼 때 학교 그리고 병원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친다. 그리고 복음주의자의 바로 예수님의 실재적인 사역을 통해서 단어를 가르친다. 지난 시간의 선교사들은 많은 나라에서 실재적인 다양한 경험들을 해왔다. 오늘날 우리는 문제에서 많이 벗어 났음을, 문제 해결을 위한 답을 아직까지는 가져 보지 못함을 깨닫는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어쩌면 종교적인 광신자로, 구원을 위해 포교에 전념하는 사람들로 간주한다. 지금 그렇지 않더라도 앞으로는 그렇게 볼 것이다.

교회를 위한 치료는 시급하다. 교회들이 비틀거리고, 속이고, 주저 앉고 있다. 세상 속 말라리아를 위한 치료 같지 않게 증발적인 믿음은 절대적 순종으로 없앨 수 있다. 우리는 반드시 답을 얻기 위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문제를 풀 수 있는 답을 만들기 위해 먼저 문제를 대면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개개인을 위한 중재계획에 따라 정의를 내려야 한다.

진실로, 사람들과 하나님의 중재 그리고 그의 나라의 사업은 반드시 함께 가야 한다. 우리가 중요한 세계의 문제를 대면하려 하는데 전선이 부재 되었다면 우리는 어쩌면 하나님의 의지에 대해 잘못된 묘사를 하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잃어버린 영혼들을 위해 하나님의 영광과 이름으로 사용하라고 주신 지혜와 자료를 잘못 사용하고, 남용한 것을 통해 문제의 근거를 찾을 수 있다.

 

Staggers, Stalls, and Sits Down (In the Middle of a War!)

I. THE DIAGNOSIS

The church, all around the world, is badly wounded today by the seeping departure of its members. We Evangelicals track the number of new members the way some people track the rise in the stock market. But we don’t know how to count things when members just fade away.

Our Inherited Doctrine

and Church Culture

One high executive told me his denomination reports a total each year that includes disappeared members. Those people may have stopped attending, moved away, or died. They are still counted. “We are focused on getting people saved. We don’t pay equal attention to much else.”

That’s not necessarily bad, but even casual contact with non-Evangelicals will tell you that a hallmark of Evangelicals (in the eyes of the outsiders) is their zeal to know decisively whether or not people are saved. To believe that God approves some people more than others is terribly important and crucial. But, to think that we Evangelicals can be certain who those people are and who they aren’t is something else.

To an Evangelical it often boils down to whether a person is saved or not, and we often use our relatively simplistic and mechanical measuring stick such as repeat after me or “Do you believe that Jesus died for you and rose again?” If so, you’re okay.

Jacob Loewen was one of the foremost missionary thinkers in his day. He deplored the Evangelical doctrine he called “Instant Conversion.” It is not as though things of great importance, turning points, cannot happen in an instant. It is rather the fact that the Bible stresses far more a salvation that is constantly being worked out, as in Phil 2:12. We Evangelicals are thus often impatient and insistent on knowing only what God knows about the state of any one individual’s life.

Homeschoolers’ College

An example of this “hallmark trait” of Evangelicals can be seen in a relatively friendly book about the outstanding students at Patrick Henry College. The book is entitled God’s Harvard: A Christian College on a Mission to Save America.

The author, Hanna Rosen, a Jewish woman journalist working for the Washington Post was assigned for a year and a half to do an in-depth study of this college whose graduates are more and more in evidence in the corridors of congress and even the White House.

Again and again in passing she mentions the potential significance to this country of increased Evangelical influence in local, state, and national government.

This assignment took her into the confidence of he leadership of the college, into faculty meetings, classrooms, student center activities, and even student homes as far away as Montana, Seattle and California.

She is quite willing to admit how impressed he is by the dead seriousness and high morality of the students. They are all products of homeshooling! One of the many really fine girls, he followed in great detail for that year and a alf was invited to stay with a family that did not measure up to her Evangelical understandig of conversion. After some time in their home she was asked, “Do you believe that if we were to die today we would go to hell? This student, one of the campus leaders, paused a long time, and then said softly, “Yes, but I’m not jumping up and down about it.”

Why couldn’t she have simply said, “I am not your judge. All I want for you (as well as for me) is to know God better, the Bible better, and Jesus better. God is the only judge of a person’s status before Him.”

But she didn’t say that. Of course the Jewish journalist knew better than to ask such a question. She knew where she stood in this admirable girl’s eyes.

This is one thing that drives people out of church and keeps outsiders away from Evangelicals. This is so sad, because, as this book clearly describes, there is immense good, significant morality, and impressive integrity in the Evangelical movement.

Truly amazing are the aspirations of these incredible students, many having scored all 1600 points on the SAT. They are super confident about Evangelicals taking back the government. At least three are hoping to become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others senators, etc. Already 200 grads have infiltrated Washington and are optimistic that in time Evangelicals can dominate the government.

Thus, until now the unblinking eye of the world has never stared so seriously at the Evangelical movement. Ever. Patrick Henry’s collection of superachieving and super-believing Evangelical youth may represent one of the pinnacles of the movement, and only the tip of the iceberg.

New Confrontations

Suddenly both inside and outside the Evangelical movement it has become terribly important to test out every belief and trait of Evangelicalism, which is now the major religion of the USA-a religion which some hope (and some fear) will be the major political force.

Sure, thousands are being attracted to this Evangelical movement, which is becoming the culturally established church of America. But could these be paper gains and concrete losses? Does Evangelicalism also contain within itself seeds of its own destruction?

Actually, the situation in some respects is no less than a catastrophe. Much of our carefully, patiently, and proudly built-up global church is coming apart at the seams, even in the USA. Is this true? Many good things are happening, but there are deep problems as well.

Nowhere, in fact, is this catastrophe more obvious than in the United States. Here, estimates are that 75% of the teenagers in Evangelical homes will lose their faith after high school. One denominational study says 85%.

No doubt Evangelicals can fairly claim to be experts on getting people TO faith. But in the case of our children coming to faith, that may happen only after they have floundered in the world for twenty years, finally sensing an emotional emptiness, and a few of them limping back.

But “Is that trip into the world necessary?” Do 75 percent of our young people have to first lose their faith and then only a fraction of them later stumble back into the church confused?

Why do they leave in the first place? And why do so few return? And do those few who return see Christianity as merely a preferable environment for their kids-but in fact a more healthy pattern of habits than a matter of personal faith?

Missionaries to Japan and Japanese churches are embarrassed by the tiny percentage of Christians. However, studies show that Japan’s tiny church wins proportionally as many people into the church as do churches in other mission fields-but few stay.

Similarly, around the world millions of poor and uneducated (desperate) people flock to churches because they vaguely see hope there-hope for better things in this life (and only maybe for the life to come). How long will they stay?

In contrast to the many of the poverty-stricken populations of the world, fewer people in Japan are forced (out of desperation) to take chances on a foreign faith. When they do duck into church they may not see any significant problems in this world being addressed. Even if they stay awhile they may not discover that the Kingdom of God includes the conquering will of God in this world as much as it assures eternal life. Such drop-ins may eventually leave thinking that Buddhism is not that different.

Quite a few people in the USA who seem to be “coming to Christ” may not be coming to a belief system as much as to a preferable community. That community glue may not always hold. If it does hold, it may only add numbers but not add to the number of truly believing and committed members.

The Powerful Acids of Rust and

Corrosion in the University World

We need to realize that almost all our Evangelical youth are exposed to more facts, opinions and pressure in college than in all their years in church. In fact the time they put into grade school far outranked the time spent in Sunday School.

Since 15 out of 17 Evangelical youth never go to a Christian college, what goes on in the university world is a defining experience. Why do we need a film called Expelled-No Intelligence Allowed? Why is the university world so harshly anti-theistic? And masses of people in the media and politics so ballistic about the growing Evangelical influence?

This was discussed in an earlier issue. Evangelicals began the 20th century as predominantly a noncollege movement. It took a hundred years for 157 Bible institutes to turn into colleges, universities and seminaries. At the end of the century thousands of Evangelicals had crept back into faculty positions in higher education. But they discovered that they were in a decided and rejected minority.

For decades, if they kept their heads down they were mainly oddities. Now with the new visibility of their tribe in secular society, there is a strident voice against them.

In my editorial in the last issue of Mission Frontiers I mentioned two Evangelicals who had attained professorships in religion in state universities. Yet, in the process they had apparently been drawn into an agnostic or atheistic position. That takes the pressure off!

Give up on the Bible?

One of them, Hector Avalos, had been a Pentecostal minister, and is now a Professor of religious studies at the University of Iowa (in mentioning him last time I mistakenly said University of Illinois). His book is entitled The End of Biblical Studies. He has come to calling himself a Secular Humanist and sets out to prove in great scholarly detail that everything in the Bible is irrelevant. Consider the final paragraph of his Introduction:

Biblical studies as we know it should end. We should now treat the Bible as the alien document it is, with no more importance than the other works of literature we ignore every day. Biblical studies should be geared toward helping humanity wean itself off of the Bible and toward terminating its authority completely in the modern world. Focus then could shift to the still thousands of other ancient texts still untranslated and unread. One day, the Bible might even be viewed as one of the curiosities of a tragic bibliolatrous age, when dependence on a text brought untold misery and stood as an obstacle to human progress. We might the study the Bible as a lesson in why human being should never again privilege any book to this extent.

Now, obviously, with this book if not before, he has proven to his faculty associates that he is no longer beholden to his earlier religious role. It must be a relief to him, in a way.

I would suppose his Evangelical heritage must have allowed him to embrace a false view of the Bible in the first place. He could well have thought we were supposed to believe that the Bible in every verse gives us only good, not bad examples.

True, we do skirt around the most depraved things. The ancient Gothic Bible left out long portions of 1 and 2 Kings, apparently because their pre-Scandinavian forebears already knew too much about warfare. The Taiping movement in China simply dropped out chapter 19 in Genesis. Thus, when Avalos found bad things described in the Bible, things understandably not mentioned in normal church life, he rejected the Bible as if it were teaching, not accurately and honestly describing those things.

Rather than being impressed by how long God had to wait, how much patience was necessary, as a Divine School teacher, to lead a ruffian nation into New Testament times, he treats the Bible as though it approves everything it describes. He even quotes the Dallas Seminary journal, Bibliotheca Sacra, as admitting that not everything in the Bible is “valid” for today.

True, the Bible pulls no punches. It describes the weaknesses and limited understanding of its greatest leaders. It does not make unblemished heroes out of its human characters. It could not be inerrant if it did.

In contrast to his perspective, we can and do learn a great deal from biographies of individuals. But if they are accurate, we don’t expect to find adult brilliance in every grade-school homework assignment. If we did it would be erroneous. The Bible in one sense is a startlingly honest and certainly accurate biography of a nation. It would not be inerrant if it scribed the failings of fallible humans s if all they said or understood was correct and edifying. God was patiently leading them in their understanding during two millennia.

Give up on God, Too?

nother book barely mentioned last me is the one by a very famous Biblilcal scholar, Bart Ehrman, a graduate Moody Bible Institute and Wheaton College, also a former pastor, now a professor of religious studies at the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Chapel Hill.

Last time I quoted him from an article in Biblical Archeology, explaining why all the evil in the world led him to give up his faith:

This made me think more deeply about my own understanding of why there is suffering in the world. Finally, because I became dissatisfied with all of the conventional answers I decided that I could not believe in [a] God who was in any way intervening in this world given the state of things. So that’s how I ended up losing my faith

Now I have space to quote him from his most recent book, God’s Problem, How the Bible Fails to Answer Our Most Important Question-Why We Suffer.

He tells of going to a little Anglican church in England on Christmas Eve with his wife (who is still a believer) and how moved he was when a layman prayed, You came into the darkness and you made a difference. Come into the darkness again.

He comments:

Yes, I wanted to affirm this prayer, believe this prayer, commit myself to this prayer. But I couldn’t. The darkness is too deep, the suffering too intense, the divine absence too palpable. During the time that it took for this Christmas Eve service to conclude, more than 700 children in the world would have died of hunger; 250 others from drinking unsafe water; and nearly 300 other people from malaria. Not to mention the ones who had been raped, mutilated, tortured, dismembered, and murdered. Nor the innocent victims caught up in the human trade industry, nor those suffering throughout the world from grinding poverty, the destitute migrant farm workers in our own country, those who were homeless and inflicted with mental disease. Nor to mention the silent suffering that so many millions of the well-fed and well-tended have to experience daily: the pain of children with birth defects, children killed in car accidents, children senselessly taken by leukemia; the pain of divorce and broken families; the pain of lost jobs, lost income, failed prospects. And where is God? (p. 6)

His book searches the Bible for explanations of suffering and finds four-and they don’t all agree. Therefore he can’t believe in God? Like Avalos he is apparently employing a false view of the Bible. Did he get that from Evangelicals? At Moody? At Wheaton? Possibly. Doesn’t God have reason to give us an accurate account of people as they were, being guided by God as fast as they obeyed, but not always thinking or doing the right things?

The Bible is not merely a flash picture of a people at a given time. It gives flash pictures of a very lengthy sequence, more like a motion picture portraying growth and change, deeper insights and qualities of behavior.

I am not happy to say, but two things in the book I cannot put together. Ehrman says plainly (pp. 122, 123),

Since human beings misbehave and hurt others out of their free will (which exists even if God does not) then we need to intervene ourselves and do what we can to stop the oppression, torture, and murder-whether here at home or in developing countries where the atrocities are more blatant and less restricted.

All things considered, here is an author-who has already endured the suffering of producing 20 books-a person not mainly building a case against believing in God but presenting and agonizing about the astounding catalog of suffering both in the Bible and within the human story in general. No book I am aware of is as comprehensive and feelingly a portrayal of evil.

But he lives in a university world where, almost in order to survive, you need to stop thinking about anything supernatural, especially intermediate beings like Satan and evil angelic forces.

I can’t write to him and say, “Did you forget Satan?” You can be sure that a New Testament scholar would be very familiar with he numerous NT references to Satan, far exceeding OT insights. But such thoughts are even more off limits today in university circles than a benign belief in some kind of a supreme being.

Thus he could easily be aware subconsciously that thinking like that would likely endanger his entire career-now ter many years of hard work in the limelight of the secular world. He might even think that his legitimate anger about evil and what should be done about it would be damaged!

If that were true, then this is in fact a book shocking us into an awareness of the true amount of evil that we may not want to think about.

We can thus be thankful that he has so keenly described evil, even if he does not mention evil angels. Yet, we must see this omission in the context of the enormous social pressures in the university world. Even in Christian colleges little is said of intermediate beings (angels) good or bad, especially in papers written for secular consumption.

Unfortunately, as he says, he is not providing a solution but describing the problem of evil. This leads him to an impossible tension between, as he says, enjoying life as fully as possible and also doing as much as is possible about defeating evil in this world. This is no doubt a view from the very real limitatonss of being a full-time university professor. Professors are to think and write, but for the most part in a world of young students, little action is possible.

We do not have to agree with their conclusions. They do help us see ourselves as others see us.

The Inadequacy of our Cultural

Theology of Suffering and Evil

A book, Reasons to Believe, to which I did not even make a passing reference last time, is written by John Marks, once an Evangelical who worked in Young Life for a number of years and attended a very fine, large Evangelical church in Dallas.

He wrote for ten years for U. S. News and World Report, became a producer for Morley Safer in the CBS 60 Minutes program, and authored three novels before this non-fiction Reasons to Believe. He should have added a question mark because he sought those “reasons” diligently and did not find them.

First, he felt that he had to withdraw from Evangelicalism. After marrying a Jewish girl with whom he is very happy, he got to thinking that if he continued to be an Evangelical, he would have to believe she was going to hell.

Some years later, covering Bosnia for CBS he ran into the fact that Serbian Christians had slaughtered tens of thousands of Bosnian Muslims. He says he could understand how nominal Christians could do that. Bu he could not understand why God would allow them to do it. So he felt he should withdraw from even a belief in God.

As mentioned earlier, Hanna Rosen spent a year and a half studying Evangelicals from the standpoint mainly of a single college-Patrick Henry, exclusively populated by suachieving homeschooled students. In contrast, John Marks, already possessing an Evangelical vocabulary, spent two years going everywhere and interviewing a whole range of different Evangelicals. His is thus a remarkable handbook on Evangelical culture-wellwritten, informative and consistently respectful of those he interviews.

He tells of the time he did the behind-the-scenes production of 60 Minutes on the “Left Behind Series.” He was asked at the end, “Are you going to be left behind.°±? At this point he had been swimming in the secular world long enough to be disturbed by Evangelical exclusivism which allows them (us) to tell, on the basis of relatively superficial details, just who is going to be raptured and who isn’t.

The whole book, in a sense, is one long quest for clarification-would he or wouldn’t he be “left behind.”

But, as I say, he is very respectful, admiring, and even loyal in a sense. He is extravagant in his praise for the work of the churches in the aftermath of the Katrina devastation in New Orleans. By contrast the work of government agencies, he says, was pathetic.

He is not bothered merely by the quirks of Evangelical theology and our in-house jargon. Like Ehrman he is also deeply disturbed by the rampant evil in this world. The final paragraph in his book makes this clear:

The twentieth century, my century, asks its own terrible questions. Bosnia? Hiroshima? Rwanda? Armenia? So many people, and so many Christians, looking away when the Jews of Europe were led to their deaths? So many people, and so many Christians, embracing racist policies all over the world during the era of colonialism, policies that led to murder and catastrophe on a cosmic scale? One species allowed its full, unfettered measure of violence for so long? A god has overseen this nightmare? A god whose divine plan accounts for all the torment, horror, and loss visited upon ourselves by ourselves over the course of this century, and all centuries? And it’s not over yet, surely. Someone else, some her nation, is already preparing itself for the next slaughter, in which I do not want to voluntarily, unnecessarily implicate myself. A god who can’t stop it has no right to my loyalty, or my belief. I n’t speak for others. For now, I’m a free man in a free land. I am a man of the twentieth century, and est on the authority of the uneasy dead. Leave me behind [at the Rapture].

My basic response to this is not to question he rationale but to suspect a significant impact on Mark’s thinking of an environment anti-supernaturalism. Unlike Avalos and hrman, he has not been working for years in a university faculty where supernatural factors are unmentionable, he has been in the secular world of Washington D.C., New York City, and the media in general, where workers will also be sneered at if they are very religious or believe that Jews automatically go to hell.

Furthermore, in view of his both needing to defend his wife and also to face what he considers the unexamined fanaticism of many Evangelicals, he, like Hanna Rosen refers again and again, with fear, to what would happen if Evangelicals were to take over the country.

What Hope Our Young?

It would seem then, that both when our young people go off to college, and also when they get out into the secular world, the wind blows hard against them. Just to survive, to keep a job, to talk as equals with non-Evangelicals of whatever stripe, it may seem necessary to most of them to drop some of their inherited Evangelical views.

If people are being won into the front door and eventually move out the back door, what could be the answer? Is France the end product, where 80% are “Christian” but only 20% believe in God?

II. THE CURE

In my opinion a basic problem is our blindness to the essentially wartime calling of those who follow Christ. The church has largely gone AWOL, distracted or preoccupied with programs that serve our own ends. Everyone knows what happens to a peacetime army-it tends to fall apart, demoralization sets in. Soldiers want to get out of the army.

Evangelicals have misread the Bible. They are bored. Many are getting out of what they think is a peacetime army. But the Bible does not call us to save ourselves, to solidify our security, and just to talk about world problems.

There was a time in the USA, and it is still true in many parts of the world, that people did not worry about world problems simply because modern communications did not bring that world into their small world.

Now, the world’s problems are ever present in our media. In addition, we are astoundingly more capable of doing something about those problems. We have greater opportunities and greater obligations than ever in history. Yet the chasm between our unemployed resources and an effective challenge to big world problems is very great.

A major reason people are leaving the church, losing their faith, and staying away in the first place, is thus because the church has not adequately stepped up to bat along with civil forces to beat down the corruption, disease, and poverty of at least a billion hopeless people.

It is apparent that organized believers are largely missing in the conduct of the Kingdom of God, in bringing His will into the dark and suffering places in our world.

The world is rightly impressed with the Gates Foundation, Buffet’s $50 billion gift, and now Ted Turner’s recognition that his $200 million is more likely to do good if mediated through overseas Christian communities than if he were to give it to the World Bank (which in the last 32 years has given away $3,600 billion “causing mostly harm and very little good,” as the subtitle of a book indicates).

Is there any explicitly Christian organization with the specific purpose of fighting global malaria? Why not? Is there any explicitly Christian mission designed to fight the sources of disease in general-as does the Carter Center? Why not?

Should we wonder why John Marks and others can be amazed and full of admiration for the way churches in America dove in to help with Katrina, but unhappy when in general we are absent from the frontlines against many of the ugliest ongoing tragedies in our world? In fighting evil we can glorify God, not just help our own species. Remember, both Ehrman and Marks are thinking that Evangelicals believe that God must create or at least approve all of this evil, Why? Since the church does not believe forthrightly that it is Satan’s not God’s work? Are Evangelicals content to survive rather than to soldier against it?

What do Evangelicals have to offer at present? Some intellectual concern. Also, confusion about what we are able to do. And, a history of super individual Christianity that does not readily see the necessity of highly organized teams (mission agencies) to solve the most serious problems, We tend to assume that a whole lot of saved individuals (as beneficial as that is) will be all that is needed.

Evangelicals do have a conscience. They do have an intuition of God’s will, even if they do not have a clear mission theology of the Kingdom of God. Is it any wonder that between 2001 and 2006 mission agencies thought to be doing mainly evangelism and church planting grew 2.7%, while mission agencies that focus on “relief and development” grew by 75%?

We are sending hundreds of long-term mission teams out around the world without either the knowledge, skill or theology to tackle effectively most of the profound practical problems real people have. We do a good job in talking to people about following Christ, but when their other needs cry out for serious practical solutions, we are often unprepared.

Historically, in hundreds of foreign fields, schools and hospitals have portrayed God’s love, and have given meaning to the words of the evangelist, just as did the practical dimension of Jesus’ ministry. Missionaries in the past have transformed whole countries in many practical ways. Today we know far more about the problems and far more about the solutions than ever before. Yet the world still sees us as merely religious fanatics propagating a salvation that is not here but only in the hereafter.

The cure for a church that is in many ways staggering, stalling, and sitting down, the cure for our malaise and evaporating faith, is clear-cut definitive obedience. We must face and define the need to get organized answers to this world’s problems as well as getting individuals reconciled to God.

In fact, getting people reconciled to God AND to His Kingdom business must go together. Otherwise our absence at the frontlines of major global problems means we are misrepresenting God’s will and misusing the wisdom and resources He has given us to act out and speak out His love and glorify His Name among all peoples.

(2008년 7- 8월호 게재)

* 전방개척선교저널(KJFM) 2015년 3-4월호 vol.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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