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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JFM] 한국의 미전도종족선교 역사와 전망

조명순

한국에서의 미전도종족 선교 역사는 20년 정도의 시간을 갖는다. 20년의 시간을 조금 풀어서 설명 한다면 1990년에 미전도종족선교가 소개된 때부터라고 한다면 21년의 시간이 지났고, 미전도종족 선교를 표방한 연합체인 ‘한국미전도종족입양운동본부’가 시작된 1993년부터라고 본다면 약 18년의 시간이 되었다. 그래서 대략적으로는 20년 정도라고 볼 수 있는데, 이 20년의 시간은 한국 선교가 수적 성장을 보여준 시기와 맞물려 있다. 미전도종족에 대한 다양한 견해와 한국에서의 발전과정, 그리고 역사는 많은 글에서 발표되고 정리되어 있다. 1)

이 글에서는 한국에서의 미전도종족선교의 역사적 흐름을 크게 두 가지 관점, 즉 ‘운동’이라는 측면에서의 미전도종족 선교, 그리고 ‘전략’이라는 측면으로 미전도종족 선교 역사를 살펴보고 앞으로의 전망을 간략히 조망해 본다. 이 글은 1990년에서부터 2010년까지의 20년간이라는 시간 속에 걸어온 한국 내에서의 미전도종족 선교에 국한하였다.

1. ‘운동’으로 확산된 미전도종족 선교(1990년-1999년)

기본적으로 ‘운동’은 결속력이나 구속력을 갖기보다는 큰 그림의 방향성 제시와 광범위 동원과 홍보의 성격을 갖는 느슨한 계도성의 움직임이다. 따라서 이러한 운동이 일어났다고 해도 그것을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의무는 없다. 한국에서의 미전도종족 선교는 ‘미전도종족입양운동본부’(Korean Ceter for Adopt-A-People, 이하 AAP)라는 ‘운동’성격으로 시작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전도종족선교는 한국 선교계에 여러 가지 면에서의 전환을 가져 온 것은 사실이다. 특별히 1990년대 선교사 파송이 매해 급격히 늘어나는 시기와 맞물려서 미전도종족 선교는 강조되고 알려졌다는 점은 세계 선교계의 후발주자였던 한국 선교계가 파송한 한국 선교사들이 선두 주자(서구 선교계)와 같은 조건에서 새롭게 출현된 선교지에서 사역할 수 있는 선교지였다는 점에서도 매우 의미가 있는 세계 현상의 하나였다. 국가 단위로 선교하던 개념에서 보다 구체화된(Focusing) 관점으로 선교지를 보게 된 것은 한국 선교사 전략적 선교를 생각해야 하는 동인이 되기도 하였다.

21세기는 미전도종족선교시대라고 강조하면서 한국에서의 미전도종족 선교의 태동과 발전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전호진 박사는 미전도종족선교의 발단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2)

‘미전도종족 선교 운동’은 루이스 부쉬가 중심이 되었던 여호수아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미전도종족 파악과 입양운동에 전세계교회가 참여할 것을 호소하였다. 미전도종족 입양운동이 본격화 된 것은 1980년 영국 에딘버러 선교대회이다. 이 대회는 랄프윈터의 지도하에 열린 것으로 미전도종족 선교에 초점을 두었다. 이 대회에서 300명의 참석자들은 ‘2000년까지 모든 인종에 하나의 교회’(A Church for every people by 2000)라는 슬로건을 채택하였다. 미전도종족에 대한 보고와 정보가 교환되었다.  1980년에 파타야에서 모인 로잔 복음주의 선교대회에서도 미전도종족에 대해 초점을 두었다. 이 흐름이 전세계적으로 조직화 된 것이 1995년 서울에서 모임 세계 복음화대회(Global Consultation on World Evangelization)이다. 이 대회의 주제가 ‘2000년까지 모든 종족을 위하여 한 교회 모든 개인을 위한 복음(A Church for every people and the Gospel for every person by 2000)’이었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전 세계가 서로 협력하기 위해 지역별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서로 기도하고 정보 수집하는 것에 초점을 두었는데 이 대회의 주요 리더가 루이스 부쉬, 토마스 왕 이었다.’

지적한 것처럼 서구 선교계에서 1974년 이후로부터 본격화된 남은과업 종족 선교는 1980년대 ‘개척선교를 위한 세계선교협의회’의 결성을 통해 ‘모든 종족 안에 교회를’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갖게 하였다. 그것은 AD2000운동으로 결집되어 20세기말까지 세계 선교계가 활발하게 움직이면서 세계적으로 미전도종족 선교를 드라이브 했다고 볼 수 있다. AD2000운동은 2000년까지 모든 지역마다 교회를 세우고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의 연합 네트워크 운동으로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운동’을 통해 미전도종족 선교의 중요성이 인식되고 홍보, 확산되었다. 한국에서는 1990년대부터 소개되던 미전도종족 선교가 1993년에 ‘한국미전도종족입양운동본부’설립되면서 실질적으로 시작되어 참여하게 되었다. AD2000운동이라는 세계적인 선교운동에 동참하려고 시작된 한국에서의 미전도종족 선교의 태동은 1990년대의 다양한 선교 대회와 함께 폭넓게 한국 선교계에 확산되어 왔다.

1) 선교한국대회

1990년대 양적 팽창을 보여주는 한국 선교계에는 몇 가지 중요한 운동 성격의 대회들이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인 청년대학생대상으로 매 2년마다 열리는 ‘선교한국’이었다. 1988년에 처음 시작하여 현재 22년의 역사를 가진 선교한국은 1차적 동원의 역할이 두드러진 선교대회이다. 또한 선교한국 대회는 세계 선교의 주요 흐름에 맞추어가면서 그 동향과 방향을 한국의 미래 젊은 자원들에게 소개하는 성격도 갖고 있다. 그런 점에서 당시 세계 선교계가 주목하였던 남은 과업 미전도종족 선교 내용을 담아내면서 한국에서의 확산에 큰 영향을 끼쳤다. 1990년대부터 1998년까지 선교한국 대회가 잡은 주제어와 그 내용들은 <표 1>과 같다. 이러한 주제어들을 통해서도 한국의 젊은 선교 인적 자원들에게 미전도종족선교가 어떻게 지속적으로 확산되면서 알려지게 되었나를 알 수 있다. 필자는 이들이 대회 후에 자신이 속한 교회에서 돌아가서 세계 선교의 주된 흐름인 남은 과업 미전도종족 선교를 소개하고 알리는데 보이지 않는 역할을 하였다고 본다.3)

선교한국을 통해 미전도종족에 눈을 뜬 청년대학생들을 위한 후속 선교훈련 프로그램들이 개설된 것도 미전도종족 선교 확산에 큰 도움을 주었다. 선교한국대회와는 실제로는 연관성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두 가지이다. 바로 1990년대 활성화된 ‘선교정탐훈련’과 2000년 이후에 개설, 확장된 ‘미션 퍼스펙티브’훈련이다. 필자는 이 두 훈련은 운동 성격을 가진 훈련이라고 보고 있다. ‘선교정탐훈련’4)은 필자가 AAP에서 사역하던 초창기인 1994년부터 진행한 미전도종족 리서치를 중점으로 훈련이었는데, 정말 많은 청년들의 지원이 있었고, 또한 이 훈련을 거쳐 간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 훈련은 20세기 말에 미전도종족선교연대가 개설한 ‘종족과도시선교연구소’(1998년 9월 개원)와 ‘전략정보네트웍선교사훈련원’까지 이어지는데 주춧돌의 역할을 하였다. 오늘날 선교 현장에 나가보면 이 훈련을 받았던 종족사역 선교사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한국에서 미전도종족선교가 운동의 성격을 갖고 확산되는 큰 역할을 한 사람들이다.

2) 세계 복음화 대회(GCOWE: Global consultation on World Evangelization)

선교한국이 젊은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지역교회 목회자들이나 선교지도자들을 향해서는 세계적인 대회들이 한국에서 개최되면서 미전도종족선교가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상술하였던 거처럼 세계복음화대회가 한국에서 개최되었고, 이것은 추후 한국복음화대회(NCOWE)로서 한국 선교계가 적용하면서 한국적으로 변형되어 뿌리내리기 시작하였다.

(1) GCOWE 95 서울대회 : 1995년

본격적으로 이러한 AAP 운동이 교계 어른들의 관심을 모으기 시작한 것은 GCOWE95가 한국에서 개최된 95년 5월부터이다. 특히 이 대회의 미전도종족 트랙에 한국에서의 미전도종족 선교 관련자들이 참석하여 세계 미전도종족 선교 관련자들과 만나, 정보교환과 네트웍형성에 대한 의견들을 나누어 졌었다. 선교대회 이후로 국내의 많은 교회들이 입양선교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교단의 움직임 – 특별히 합동교단 -이 활발해지기 시작하여 종족 입양 운동을 알리고 미전도종족선교의 중요성을 소개하는 교단주최의 세미나가 열리게 되었다.

GCOWE 95 이후에 미전도종족선교에 대한 인식이 깊어지고, 활발하게 교단이나 여러 모임에서 AAP운동에 대한 강의 요청이 있게 된다. 이 당시의 강의는 통상적인 선교강의라기 보다는 미전도종족 선교의 중요성을 알리고 홍보하는 것에 많은 도움을 주는 통로 역할에 큰 의의가 있다고 본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한국교회가 AAP운동에 적극 참여하기 시작하였고, 세계적인 연합운동에 함께 동참하고자 하는 움직임의 구체적 실현이 ‘여호수아프로젝트2000’에 동참하는 것이었다. 여호수아프로젝트 2000은 전 세계의 미전도종족 중에서 우선입양종족으로 1,752종족을 선정하여 이 종족을 먼저 입양대상으로 삼고 복음화를 이루어가자는 세계적인 종족 입양(AAP)연합운동이었다. 이 운동을 한국에서도 적극적으로 수용, AAP, 횃불선교센타, 기독교21세기운동본부, 각 교단 선교국 등이 함께 동참하여 한국이 세계적인 선교 흐름에 맞추어서 활발하게 움직일 것을 결의하였다.

3) 한국교회 미전도종족 선교대회: 1996년

그러한 움직임의 결집으로 교단과 KWMA, 그리고 횃불선교센타, 21세기 운동본부가 공동주최하고 AAP가 주관하여 ‘한국교회 미전도종족 선교대회’가 열리게 된다. 1996년 5월28일에서 29일에 걸쳐 열린 ‘한국교회 미전도종족 선교대회’는 11개의 교단이 참여하고 지역 교회 목회자를 비롯하여 선교실무자 등, 약 1,200여명이 모여 미전도종족선교의 중요성과 입양운동에 함께 참여할 것을 다짐하였다. ‘한국교회 미전도종족 선교대회’ 이후에 각 지역 교회 안에 종족입양(AAP)운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하고, 합동교단의 기독신보는 연간 기획시리즈로 미전도종족 입양선교에 대한 지속적인 홍보를 통해 교단 안에서 펼쳐 나갔었다. 그리고 미전도종족의 리서치 훈련을 꾸준히 시행해 온 AAP는 선교정탐표준강의안––5)을 통해 예비선교사들의 교육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도록 노력하였다.

4) 목회자초청 미전도종족선교대회 : 1997년

종족 입양선교는 지역교회가 선교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전략적인 선교 방법으로 지역교회가 주체적인 선교 활동을 할 수 있는 틀을 갖고 있다. 당시 지역교회 내에서 입양선교에 관심을 갖는 목회자들의 질문과 이들에게 알리는 일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1997년 5월 목회자 중심으로 ‘목회자초청 미전도종족선교 대회’를 개최하였다.

이러한 운동 성격의 비교적 규모가 큰 선교대회들은 일개 단체가 주관하는 선교대회가 아니라 ‘연합 운동’의 정신을 살리기 위해 교단, 선교단체, 교회를 아우르는 대회로 진행되었다. 대회는 서울에서만이 아니라 ‘부산경남 지역 미전도종족선교대회’(1997년 5월)를 열렸는데, 이러한 대규모의 선교대회들은 ‘운동’성을 띠면서 1990년대 미전도종족선교 확산에 큰 기여를 하였다고 볼 수 있다.

2.‘운동’관점에서의 미전도종족선교 발전 평가

1990년대의 미전도종족선교는 한국 선교사 파송의 양적 팽창과 함께 ‘운동’의 성향을 가지면서 확산되었다. AAP 15주년(이때는 이미 이름이 UPMA로 변경된 상태)을 기념하면서, 15년을 종합하였을 때 정보애 선교사는 미전도종족을 선교단체들이 표방은 하지만 실제 내용은 없다는 점과 현장선교사들의 몰인식으로 현장과의 괴리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여, 현장 선교사들의 동원이 약했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실제로 1990년대는 선교단체와 선교사들의 미전도종족 선교 동참이 저조하였다. 그렇다고 현장선교사나 단체들을 향해 훈련이나 홍보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미전도종족선교를 활성화함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현지 선교사들안에서도 미전도종족선교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기 시작하여, 몽골선교사협의회모임(1997년)과 중동·북아프리카선교사선교대회(1999년) 등에 본부장이 초빙되어 미전도종족선교가 강조되는 일들이 진행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선교현장 선교사들의 종족 선교에 대한 인식은 생각보다 많은 열매를 맺은 것은 아니었다.

필자는 그 원인을 한국에서의 미전도종족선교의 출발이 ‘운동’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상기한 대로 ‘운동’은 방향성을 제시하고 중지를 모아가는 계도성이 강한 특징을 갖고 있다. 또한 ‘운동’은 자발적 참여를 기대하는 것이지 강제성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미전도종족선교의 중요성과 당위성을 인정한다고 해서 그것이 바로 동참까지 이어지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에, 많은 선교단체들이나 현장 선교사들이 ‘알지’만 행동은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다. ‘운동’을 통해 알았지만 적용은 하지 않는, 즉 1990년대는 바로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의 차이가 있었던 시기라고 볼 수 있겠다.

3. ‘전략’으로 업그레이드된 미전도종족 선교(2000년-2010년)

다양한 측면에서 운동성의 특징을 갖고 확산된 미전도종족 선교는 21세기에 들어오면서 다양하게 전략적 선교의 틀이 만들어지는 기초석이 되었다. 말할 것도 없이 미전도종족 선교는 그 자체가 중요한 선교 전략이다.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미전도종족선교의 중요성이 강조된 만큼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결과 때문에 끊임없이 생각하였고, 무엇보다도 현장과의 동떨어진 현상으로 인해 문제를 풀어내려는 노력들이 2000년 이후에 활발하게 일어났다. 1990년부터 지난 10년간에 나타난 문제점들을 풀어가는 장(場)이 바로 엔코위(NCOWE)6)였다. 엔코위가 꼭 미전도종족선교의 문제만을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흐름과 기조는 21세기 남은 과업이라는 점에서 미전도종족 선교와 깊은 연관이 있다. 21세기 첫 10년간 엔코위는 지난 3차례 열렸다.

1) 엔코위 III(2000년)

2000년 엔코위 III의 주제는 ‘선교의 효과적 협력과 선교사 재배치 전략’이었다. 무엇보다도 재배치에 대한 논의가 주 주제였다. 선교사 재배치의 배경은 미전도종족선교 운동의 중심인물이었던 랄프 윈터 박사의 지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4년 이후 미전도종족선교를 위한 개척 선교가 강조되면서 서구 선교사들의 활동 지역에 대한 통계가 나왔을 때, 74%가 전도된 지역에서 활동하고 26%만이 미전도종족 내에서 사역하고 있다는 통계는 서구 선교계의 심각한 중복투자를 깨닫게 하였다. 이후 전도된 지역의 선교사들을 미전도된 지역으로 재배치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는데, 1990년대에 한국에서 사역하던 상당수의 미국 남침례교단 선교사들은 당시 새롭게 열리기 시작한 중앙아시아 지역이나 북인도 쪽으로 재배치되었다. 이러한 흐름이 바로 1990년대 급성장한 한국 선교계도 영향을 받게 된 것으로 파송된 선교사들 대부분이 한 국가내의 1~2개의 도시 안에 몰려 있다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다양한 리서치를 통해 객관적 자료 제시로 인해 당시 큰 반향을 일으킨 엔코위로 평가되고 있다. 엔코위 III에서 제시한 선언문에도 한국 선교가 나갈 전략적 방향으로 미전도종족 선교가 강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 우리는 ‘모든 족속을 제자 삼으라’(마28:19-20)고 하신 주님의 지상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서 미완성 과업인 미전도 종족 선교사역에 지속적으로 역점을 두기로 결의한다.

2. 우리는 하나님께서 남은 선교 과업을 완수하기 위해 한국교회와 해외한인교회를  축복하신 것을 감사하며, 세계 복음화를 위한 우리의 책임을 깊이 인식한다. 또한 한국교회와 해외 한인교회가 21세기에 이 책임을 각성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선교에 헌신할 것을 촉구한다.

3. 우리는 선교 인력과 선교 재원이 복음화된 지역(Reached Area)에 집중되어 있는 불균형을 시정하고, (중략) 그러므로 신임 선교사 배치는 미전도종족과 지역에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일부 기존 선교사도 파송된 국가 내의 미전도종족과 지역으로 전진배치 되거나 인근 유사 문화 국가로 재배치되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한다.

2) 엔코위 IV(2006년)

‘전방개척 선교를 통한 남은 과업 완수’로 주제가 제시된 엔코위 IV의 목적은 지난 한국 선교의 평가와 전방개척선교로 남은 과업 완수를 위해 미래 선교 전략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엔코위 IV가 미전도종족이 강조된 전방개척 선교를 위해, 한국 선교가 담당해야하는 선교사 수와 선교의 6개 전문 분야에 대한 미래 계획, 후에 ‘Target 2030’으로 정리되어 계속 현재까지도 발전시켜 나가는 진행 중인 한국 선교의 방향성을 세웠지만, 이 기조에는 ‘남은 과업 완수’ 즉 미전도종족 선교가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이번 전략회의의 주제로 제시되었던  ‘전방개척선교’를 이루기 위해서 심화된 연구를 통한 구체적인 추진전략을 개발한다.

 3. 우리는 전방개척선교를 추진하는 가운데 세계선교 속에서 한국선교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하여, 기획연구팀이 발표한 향후 25년 세계선교사 수요 46만 명 중 1/5인 10만 선교사 파송과 100 만 자비량 사역자 파송을 결의한 전세계 한인교회의 비전에 동의한다.

6. 우리는 이번 선교전략회의에서 전방개척선교의 필요성을 통감하면서 하나님나라를 우선하기 위해 단체의 이익이나 개인의 실리를 초월하여 선교지 분담과 선교사의 전략적 배치 및 재배치에 대하여 협력하기로 다짐한다.

8. 우리는 남은 과업 완수를 위해 성령의 권능을 받아 순교적 영성을 회복하고 성육신적 사랑을 실천하며 국제적 협력과 동반선교를 위해 최선을 다함으로써 최후의 전방개척선교의 선두주자가 되도록 한다.

3) 엔코위 V(2010년)

2000년 엔코위 III에서 선교사의 중복적 현상에 대한 지적 이후, 2003년 미전도종족선교연대 10주년 기념 대회에서 CAS시스템7)이 발표되었다. 이 전략은 선교사 집중화를 예방하려는 한국적 선교 전략의 출현을 가져오게 하였으며, 이것은 후에 ‘한국형 선교’라는 주제를 생각하게 하는 시발이 되었다. 이 흐름과 연계된 것이 2010년 엔코위 V이다. 엔코위 V는 ‘하나님의 선교 행적 찾기;125년 한국교회와 선교, 그 벤치마킹 모델만들기’라는 주제로 열렸는데, 한국 선교가 이러한 것들을 생각해야 하는 당위성들과 125년에 나타난 7가지 선교 전략이 제시되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종족운동 전략’으로 우리 역시 조선 미전도종족에서 선교하는 종족으로의 전환을 이룬 민족인데, 이러한 사례가 선교 현장에서 적용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엔코위 V의 선언문 가운데서도 여전히 미전도종족선교를 강조하고 있다.

3. 우리는 아직도 복음을 듣지 못한 미전도종족을 향한 전방개척선교를 지향하며, 이를 위해 팀사역과 선교네트웍을 활성화한다.

4.‘전략’관점에서의 미전도종족선교 발전 평가

21세기에 들어오면서부터 한국 선교는 전략적인 선교를 고민하면서 질적 성장을 도모하고 있다. 미전도종족 선교 역시 그러한 흐름에 편승하여, 미전도종족선교의 중요성과 당위성은 계속 강조되면서, 구체적인 전략과 방법을 제시하려는 노력들을 이루어 왔다. CAS 시스템과 엔코위에서 발표된 내용들은 미전도종족 선교를 위한 통찰력들을 주는 귀한 전략들이다.  또한 선교사들이나 선교단체들도 아직도 미비하다고 할 수 있지만, 각 현장에서 미전도종족 선교 전략들을 찾아내고 미전도종족 선교 사역 사례들이 모아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전략적 관점에서 미전도종족 선교는 자리 매김을 해가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5. 앞으로의 전망

지난 20년 동안 한국에서의 미전도종족선교는 운동으로 소개되어 확산되어 왔고, 이어서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전략적으로 자리매김이 되었다고 필자는 보고 있다. 선교학자 중의 한 분과 인터뷰했을 때 그 학자는 미전도종족 선교는 앞으로 10년 이상은 더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모든 종족이 복음을 들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더 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찌되었든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에 한국선교는 앞으로도 미전도종족 선교를 계속 강조해야 한다. 세계 선교계 역시 복음을 듣지 못한 세계인구 28%에 대한 지속적 관심 표명하고 있다. 미전도종족과 관련된 세계적인 모임들이 지속적으로 모이고, 미전도종족 선교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한국 선교계 역시, 20년의 역사를 가진 한국 미전도종족 선교가 앞으로의 20년을 어떻게 나가야하는지 함께 의견을 모아 가야 할 것이다. 미전도종족 선교는 결코 한 단체의 몫만은 아니다. 선교하는 모든 단체들이 분담하여 협력해야하는 거룩한 과제이다. 한국 선교계는 미전도종족선교는 식상하다고 여기면서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여기는 그룹들과 여전히 미전도종족 선교를 듣게 해야 하는 지역교회와 다음 세대들을 향해서 양쪽 모두에게 미전도종족 선교는 늘 새롭게, 그리고 무게감을 갖고 진지하게 다가가고 도전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첫 10년이 ‘운동’으로 시작되어 활성화 되었다면, 다시 한 번 활성화의 계기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미전도종족 입양선교도 더 다양하게 활성화될 필요가 있으며, 선교단체들의 적극적 참여가 일어나야 한다. 금년도에 ‘Ethne 2012’가 한국에서 개최될 계획이다. 이것을 계기로 한국에서의 미전도종족 선교가 새로운 원년을 맞이하고, 전방 개척지에 남아 있는 모든 종족들을 섬겨나가는 헌신이 일어나도록 우리 모두가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 각주 -

1) 미전도종족선교연대가 10주년과 15주년이 되었을 때 나왔던 글들과 몇가지 도서들이 도움이 된다.  도움이 되는 자료들 : 종족과 도시선교 저널(1999:여름호, 2003년:여름호, 2005년:여름호 등), 전방개척선교저널(2009년 3,4월), 글로벌 문화해석(문상철, 서울:국해외선교회 출판부, 2009),  등등

2) 전호진. 인종갈등의 시대와 미전도종족선교. 서울:도서출판 영문, 2000. pp. 18-19.

3) 선교한국대회와 관련된 내용은 본 호에 함께 실리는 이대행 상임위원장의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4) 선교정탐훈련은 미전도종족선교연대의 선교정탐훈련원에서 진행하는 훈련프로그램으로서 1994년부터 실시되었다. 94년 8월에 있었던 선교한국의 후속프로그램이라는 성격과 함께 AAP운동의 확산이라는 큰 목적으로 시작하였다. ‘선교정탐훈련원’은 단기선교의 패턴을 바꾸어 놓는데 역할을 하였고, 무엇보다도 미전도종족입양운동의 확산에 견인차 같은 역할을 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UPMA의 자체 훈련 프로그램 외에도 지역교회 내에서 개최, 지방의 미전도종족선교연대에서의 진행, 각 신학 대학교내에서 정탐훈련이 진행되어 1999년까지 미전도종족선교연대 내부 자료에 의하면 약 1,000여명이 참여하였으며, 이 훈련은 오늘날까지 진행되고 있다.

5) 선교정탐훈련이 계속되면서, 지역교회에 맞는 정탐훈련 교재의 필요성이 요구되어 미전도종족선교연대가 공청회를 거쳐서 만들어낸   정탐훈련 교재. 초판을 찍어내고, 2000년에 수정보완을 하여 두 번째 판을 발행하였다.

6)  NCOWE(National Consultation on World Evangelization)의 약자로 KWMA가 주최한 선교대회는 1990년 1차 ‘민족과 세계복음화대회’부터 시작된다. 이후에 2차로 1995년에 서울 충현교회에서  GCOWE 95 대회 후에 열렸는데, GCOWE(Global Consultation on World Evangelization)가 표방한 미전도종족선교와 입양선교 전략 주제에 동조하며 그것에 대한 한국선교계의 응답이라는 성격을 갖고 이것을 NCOWE II 대회로 규정하였다. 3차는 2000년에  NCOWE III로 명명된 대회로 5개 분야별(국제선교협력회의, 21세기선교전략회의(NCOWE III),목회지도자선교대회, 평신도/전문인선교대회, 기독교교육자선교대회)대회를 열었다. 그 중의 한 분야로서 NCOWE III(한국 교회의 세계 선교전략회의 III)가 한국 선교사의 전략적 배치란 주제로 리서치 및 프리 컨설테이션과 메인 컨설테이션 집회로 열렸다. 4차는 2006년에 열렸는데, 미국 KWMC 대회와의 햇수 조정을 위해 2005년 집회를 2006년에 열렸으며, 5차가 2010년에 열렸다.

7) CAS미전도종족선교연대 팀들이 제시한 미전도종족선교 활성화를 위한 선교 전략으로 CAS의 3단어 Comity, Adoption, 그리고 Specialization의 첫 글자를 따라 만든 신조어이다. Comity는 지역 분할이라는 예의와 양보 정신으로 선교하자는 뜻을 갖고 있으며, Adoption은 책임 분담이라는 의미인데 여기서는 Adopt-A-People의 뜻을 가져 한 종족을 입양하여 분담 선교하자는 의의를 갖는다. 그리고 Specialization은 선교 사역 기능을 은사별 능력별로 전문화하여 분담선교하자라는 의미를 갖고 사용하였다.

(2012년 1- 2월호 게재)

*본고의 그림 및 도표는 전방개척선교 본문을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 전방개척선교저널(KJFM) 2015년 3-4월호 vol.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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