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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의 정체성

할리 탈만(Harley Talman)

선행된 연구에서 하나님 나라가 구약의 신학적 주제라는 것을 논의하였다. 나아가 그 주제는 세례 요한과 예수 및 사도들과 제자들이 가르쳤던 메시지의 핵심이었다. 이와 같은 성경의 중심 주제가 이목을 받지 못하였고 심지어 수시로 기독교왕국(the Kingdom of Christendom)이나 기독교문명 및 기독교라는 종교로 대치되었다.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는 성경의 신실성과 선교적 소산을 위하여 재발견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그 나라의 시민이지만 이러한 하나님 나라 정체성이 지상의 정체성들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에 대하여 혼란이 있어왔다. 최근 몇 해 동안 다양한 종교적 공동체 가운데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예수의 제자들에게 이러한 정체성이 어떻게 표현될 수 있을 것이며 혹은 표현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에 엄청난 소동이 표출되었다. 상반되는 의견들의 기저에는 정체성 자체에 대하여 그리고 그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레이블 배후에는 무엇이 있는지에 대한 이해와 동의가 부족함이 깔려 있다. 인터뷰 자료에서 가져온 다음과 예들이 그것을 보여준다:

스피겔(Spiegel): 신을 믿는다는 것은 지식의 한계를 넘어선 존재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이와 같은 믿음을 나누지 못한다면, 왜 당신 스스로를 무슬림이라고 주장하는가?

압둘 사마드(Abdel-Samad): 신을 믿는다는 것은 그와 더불어 다툼 가운데 있음을 의미할 수 있다. 나는 규칙적으로 기도하지 않는다. 또한 라마단 기간 동안 금식하지도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종교적이지 않다. 그렇지만 나는 나를 무슬림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나의 문화적 공동체이다. 나에게는 이슬람 또한 나의 고향이며 나의 언어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하는 아랍어는 그러한 모든 것들과 분리될 수 없다. 당신은 스스로를 이슬람과 멀리할 수 있지만 이슬람 심장부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나는 폭력을 가르치는 근본주의자들을 따르는 것을 거부한다. 그들이 부상하고 있다.1)

정체성에 대한 주제는 내부자운동을 논의 할 때에는 언제나 그 핵심 주제가 된다. 자신들이 태어난 종교적 공동체를 결코 떠나본 적이 없는 예수를 따라는 무슬림, 유대인, 불자들과 힌두인들 그리고 시크인들이 자신들을 과연 어떻게 식별하는 지에 대한 질문들이  떠오르게 된다. 그들이 내면적인 영적 정체성을 가지면서 또 하나의 다흔 사회종교적 혹은 문화적 정체성을 가질 수 있는가? 그 사람들이 과연 예수를 주와 구주로 신실하게 따르면서도 여전히 자신들을 자기가 속한 비기독교적 종교 공동체의 일부로서 간주할 수 있는가? 이와 같은 이러저러한 질문들이 선교계에서 탐구되어오고 있다. 최근에 발표된 혹은 곧 발표될 어떤 아티클들은 이러한 이슈들에 대한 진전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내가 여기서 의도하는 바는 이러한 정체성을 주제로 다로고 있는 여러 가지의 아티클들을 여러분들에게 소개하고 그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통찰력들을 같이 나누며 하나님 나라의 정체성에 대한 여러분들의 생각을 자극하고 반영하기 위함이다. 나는 여러분들 스스로가 그러한 내용을 전체적으로 읽고 스스로의 견해를 갖기 바란다.

I. 리지웨이(Ridgway): 이중적 정체성(Dual Identity)

정체성에 관한 초창기의 사고가 죤 리지웨이에 의하여 진전을 보았는데, 그는 신앙과 종교적 전통을 효과적으로 구분하였다.(그림 1)2) “영적인 정체성(Spiritual identity)”이 하나님 나라의 구성원임을 결정하는 반면 “타고난 정체성(Birth Identity)”나 “육체적 정체성(Physical Identity)”는 어떤 사람이 태어난 공동체의 소속감을 확증한다. 따라서 불교, 힌두, 혹은 무슬림 공동체 가운데에서 태어난 하나님 나라의 제자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만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어 영적인 정체성을 단지 더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타고난 정체성을 거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림 1. 리지웨이의 영적 정체성 및 육체적 정체성에 대한 모델3)

리지웨이는 이중적인 정체성을 명백하게 전달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정체성이란 이보다 훨씬 복잡한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즉, 정체성에는 개인적인 국면과 집단적인 국면이 있으며 그것들은 층으로 구성되어 있고 복수의 혼종 형태로서 변화해가는 것을 보여준다.

II. 그린(Green)과 크래프트(Kraft)의 모델: 정체성의 삼층구조(Three levels of identity)

문화인류학자인 팀 그린과 캐드린 크래프느(Tim Green and Kathryn Kraft)는 핵심적(심층적), 사회적, 그리고 집단적 정체성이라고 하는 삼층 구조로 된 모델을 제안함으로써 내부자 운동 토의에 의미심장한 통찰력을 제공하였다. 그린은 영적인 회심을 한 신앙 체계에서 다른 신앙 체계로 “영적인 이민”을 떠나는 과정으로서 그 복잡성을 이해할 수 있도록 이론들과 도구들을 제공하고 있다. 그린은 “이중적 소속(dual belonging)”, 다중적 정체성 그리고 혼종화된 정체성 등을 언급하며 어떻게 이러한 여러가지의 이론들과 모델들이 특히 남아시아와 같은 곳에서 이루어지는 신앙적 회심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4)

그림 2. 그린과 크래프트의 삼층적 장체성 모델

에릭 아담스는 어떻게 이러한 세가지 층들이 내부자운동 가운데에 변화를 경험하도록 하는지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하면서 다음과 같이 그린-크래프트 모델을 요약한다.

핵심(혹은 자아(ego)) 정체성:

이는 어떤 사람의 마음속 수준의 신념과 가치 그리고 세계관을 포함하게 되며 그러한 것들이 삶에 대한 의미와 방향성을 제공한다. 다른 말로하면, 어떤 사람이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에 대한 마음의 충성도에 따라서 스스로가 신뢰도를 두게 되며 바로 그 영역에서 자신의 시간을 보내고 자원들을 사용하게 된다. 이들은 가정과 경력과 지위 혹은 부 등 및 어두운 영역으로는 중독이나 우상을 섬기는 것 등을 포함할 수 있다.

사회적 정체성(Social Identity):

이는 어떤 한 사람이 속하여 살아가는 다양한 사회적인 국면들 가운데에서 많은 역할들을 포함한다. 즉, 어떤 한사람은 남편이면서 아들 혹은 삼촌이기도 하며, 운인인 동시에 회계사, 선생, 목수, 비행사, 학생 등과 같은 정체성을 가질 수 있다. 그러한 각각의 인격은 자신의 공동체에서 여러 가지의 비형식적인 역할들, 예를 들면 장로로서, 입방아 거리 대상으로, 혹은 선한 이웃이나 신뢰할 만한 사람, 자원자 혹은 범법자 등으로 알려질 수 있다.

집단적 정체성(Collective Identity):

이 정체성은 그 사람이 관련하고 있는 집단에 의하여 주어지는 레이블들에 의하여 에워싸인다. 보통 그 사람에게 주어지는 레이블을 택하지 않을 다른 선택의 여지가 주어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사람에 따라서 어떤 사람은 아시안으로, 또 어떤 이는 백인이나 영국인 혹은 무슬림이라든지 파쉬툰 종족 및 어떠한 사회 계급 및 계층의 출신과 같은 것이다. 각 사람은 날 때부터 그러한 레이블이 주어지거나 삶의 어떤 다른 국면 가운데에서 획득되기도 한다. 그러나 일단 한번 얻어지면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쉽게 변하지 않는 속성이 있다. 예를 들면, 한국사회와 강한 결속력을 갖고 미국에서 태어난 한 한국인은 비록 자신이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살아가면서 한국인이라고 하는 레이블을 갖게되고 한국적인 삶의 양식을 더 좋아할 수 있다.5)

따라서, 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핵심 정체성이란 어떤 사람의 내면적인 자아를 반영하는 것이다. 예수를 따르는 불자는 자신의 핵심 정체성이 “예수 안에서” 발견되며 자신의 상황에 적합한 성경적인 세계관을 발전시켜 나가는 가운데 자라나게 된다. 새롭게 믿게 된 어떤 사람의 사회적 정체성도 마찬가지로 예수를 따르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발전함에 따라서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친구들, 가족 그리고 동료들이 이러한 새로운 변화된 관계들을 알아차리게 됨에 따라서 그들 자신의 관계 또한 영향을 받게 되고, 그것은 더 나은 방향으로 혹은 더 나쁜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다. 본래적으로 그 신자의  집단적 정체성은 세가지 층 가운데에서 가장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다. 자기 공동체의 집단적 정체성은 자기 자신의 관점뿐만 아니라 가른 종교 공동체가 바라볼 때에도 불자로 인식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여전히 자신이 태어난 공동체인 불교적 공동체 가운데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생을 경험하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성장함에 따라서 핵심적인 정체성은 극단적인 변화를 갖게 되어 자신의 사회 그리고 집단적 정체성과 긴장을 유발하게 된다. 그에 대하여 자신에 대한 은폐, 거절, 도피 혹은 통합 등의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

새로운 정체성의 은폐(Hiding one’s new identity). 비밀스러운 신앙은 공통적인 반응이지만, 그것은 내적인 스트레스를 가져오고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부인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전의 신앙 및 정체성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이전의 사회적 집단적 정체성들에 대한 거부(Rejection of former social and collective identities). 이는 기독교의 신앙체계, 관습, 가치 및 문화를 수용함으로써 “기독교” 공동체로 그 충성을 고백하는 것을 수반하게 된다. 이러한 거부는 배교로 간주되며 사회적 압력으로 돌아가게 되던지, 핍박이나 소외의 결과를 낳는다.

새로운 공동체로의 탈출(Flight to a new community). 이는 신자들로 하여금 자유롭게 이전의 사회적 집단적 정체성들을 거부할 수 있게 해주며 자신들의 변화된 핵심 정체성을 드러내 보일 수 있다. 어떤 이들을 성공적으로 새로운 환경 가운데에 심겨져 번창해 가기도 하며 어떤 경우에는 자신들의 가족과도 궁극적으로 관계를 새롭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또 다른 많은 경우에는 이러한 이별이 트라우마가 되어 이전의 신앙으로 되돌아 가던지 심리학적인 장애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통합(Integration). 많은 경우에 자신들의 새로운 핵심 정체성을 자신들의 기존 사회 및 집단적 정체성들과 통합하는 것을 갈구하게 된다.6) 이는 내부자로서 남은 제자들에게 특히 분명하다.

복음이 전해지면 외따로 있는 개개인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 및 친구들과 같은 집단들과 함께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도를 함께 성장시켜 나갈 수 있기 때문에 서로간에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영적인 교제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자신들의 변화된 삶을 목격하게 된 친척들과 친구들도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로서 성장하여 신앙을 얻게 되기도 한다. 광역적 네트워크가 형성되면 사회는 그들을 “정상적인” 무슬림과 구별하는 이름을 지어줄 수 있으나 그들이 여전히 자신들의 사회적/집단적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공동체의 일부라고 용인된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그들이 “기독교적인” 핵심 정체성을 거부당하지 않는다.7) 여기 그 예를 들어 본다:

몇 해 전에 어느 아시안 공동체에서 중년의 리더로 살아가던 하산은 개인적 유익을 위하여 진행 중이던 개발 프로젝트를 망가트리려는 목적을 가진 한 동료로부터 그가 예수를 따르는 자로서 배교자란 죄목으로 고발당하여 구치소로 가게 되었다. 몇 달 동안 옥고를 치른 이후에 이슬람 지도위원회의 소명을 받았다. 그는 자신이 여전히 자신의 공동체를 귀하게 여기고 있으며 진정한 무슬림들은 예수를 따라야 한다고 알꾸란과 성경의 구절들을 사용하여 자신의 예수 신앙을 변호하였다. 그의 변호가 끝나자, 리더들은 “만일 네가 그와 같은 방법으로 예수를 따른다고 하면, 그것은 용인될 수 있다”고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그들은 그에게 다른 무슬림 지도자들에게 그가 기록한 변호문을 돌려볼 수 있도록 하라고 요청하였다.8)

하산은 새로운 사회적 정체성을 자신의 공동체가 용인할 수 있을 협상의 여지를 두고 문화적으로 종교적으로 적절한 방법을 사용하여 자신의 핵심 정체성을 표현하였다. 그와 같은 사례에서 보듯이 내부자 신앙인들은 자신들의 공동체가 유지하는 생활 양식에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속시킴으로써 무슬림으로서의 집단적 정체성을 유지하게 된다. 자신들의 변화된 생활을 그들이 목격하는 것과 더불어 이렇게 머물게 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사회공동체가 수용하거나 최소한 용인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적 정체성을 연마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들은 이슬람 주의자들의 신학적인 기준을 만족시키지는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무슬림의 집단적 정체성을 져버린 것이 아니기에 그들이 자동적으로 소외를 당하거나 쫓겨나게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예수를 따르는 자들로서 그들의 다른 핵심 정체성과 점차적으로 드러나게 되는 사회적 정체성은 그들을 전통적인 무슬림들과 부별되게 만든다. 아마도 수피 및 어떤 이슬람 분파들이 무슬림의 집단적 정체성의 어떤 양식들을 타협한 것과 같이 예수를 따르는 운동 또한 어떠한 가치들과 문화 및 종교적 관습들을 지키면서 예수님에 대한 새로운 집단적 정체성을 타협해 낼 수 있을 것이다.9)

현장 연구조사에서 사회적 집단적 정체성의 변화 가운데에는 공통적인 양상이 있음을 알게 된다. 적대적인 상황 가운데에서는 신자들이 가능한 조심스러운 자세를 가지며 가정중심의 소집단 형태로 모이면서 공통의 사회적 정체성을 발전시킨다. 그러나 이 집단이 그 숫자에서 증가하여 서로 간에 연결점을 가질 수 있게 되면 그들의 공동체성은 명확해진다. 일단 그들이 충분하게 큰 집단이 되면, 자신들을 노출시켜 기존의 전통적인 정체성과는 다르게 공적인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된다. 사회 내에서 개개인 및 가족의 모범사례로서 사회활동 가운데에서 긍정적인 기여를 하게 되면 그들의 집단적 정체성은 적법한 것으로 수용되고 그들의 영향력은 사회 안에서 더욱 성장한다.10)

아담스(Adams)는 다음과 같이 결론 짓는다:

우리는 이 새로운 신자들이 새로운 신앙을 자신들의 사회적 및 집단적 정체성 가운데 건강하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타협을 이룰 수 있도록 어떻게 도울지에 대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다. 만일 우리가 그들로 하여금 이러한 일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도록, 그들을 지시하거나 의사의 처방전처럼 답을 제공하는 것과 같이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격려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도하실 것이라는 것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그들을 어떻게든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문화와 사회를 변혁시키고 나아가 세상이 변할 수 있도록 역사하실 것이다.11)

III. 젠스 바네트(Jens Barnett)의 다중 정체성 모델(Multiple Identity Models)

그린과 크래프트의 삼층적 모델을 확증하면서 젠스 바네트는 개인적인 그리고 집단적인 정체성의 부가적인 다발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논지를 편다. 그는 사회-종교적 정체성에 대한 다섯 가지의 층을 제안한다:

1. 각 개인의 자아적 수준의 정체성(그리스도를 신앙하는 것과 내면적인 사회-종교적 정체감)

2. 자신이 어떤 집단적 정체성을 가지느냐 하는 개개인의 주장(신앙고백)

3. 각 개개인의 정체성에 대하여 한 집단이 공동체적으로 인식하고 이해하고 있는 정체성         (한 신앙 공동체에 속하거나 구성원을 나타내는 정체성)12)

4. 사회종교적 집단 정체성에 관한 어떤 집단의 공개적인 주장(문화적 상징, 증거 및 생활양식 등)

5. 사회가 식별하는 한 집단의 정체성(선하다, 이상하다 혹은 이교적이다 라고 하는 등으로   분류하게 되는 사회적인 인식과 분류)13)

그러나 그는 “사회종교적인 정체성”을 종족성, 국적, 부족성, 사회계층, 정치적 정체성 등과 깨끗하게 분리시킬 수 있어서 사람들이 오직 한 가지 유형을 갖게 되는 것처럼 취급하려고 하는 유혹을 피할 것에 주의를 발한다. 오늘날과 같이 세계화 된 세상에서는 이와 같이 다른 가닥들로 이루어진 정체성들이 급속하게 분리되고 있으며 하나로 얽혀진 복합체 안으로 풀려나가고 있다.14)

바네트는 자신의 연구에서 개인적인 층들에 초점을 맞추지만(1-3 상), 개인과 집단적 차원들을 분별해내는 데에는 전체적으로 오류가 있음을 깨닫는다. 그는 더욱  진전된 정체성에 대한 주제를 변호하면서도 정체성의 국면들을 시각화하기 위하여 많은 모델들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어떤 모델도 정체성의 모든 차원을 포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체성 모델에 대한 조사(A Survey of Models of Identity)

오명을 얻어낸 가장 처음의 모델이 존 트라비스가 C-스펙트럼이라고 한 상황화의 연속단계로 보이는 모델이다. 그것은 개인적 신앙이나 정체성의 문제가 아니라 집단에 대한 묘사인데(바네트 모델의 4번째 혹은 5번째 층 이상)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개인적 정체성의 차원에 잘못 적용하였고 수 많은 오해와 함께 정체성의 여러 층들을 혼란스럽게 구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더욱이, 많은 사람들이 높은 수준의 상황화를 혼합주의로 넘어가는 경계(일반적으로 C4 를 넘어가면)와 동일시 하였다.

그림 3. C1-C6 스펙트럼: 무슬림 세계 가운데서 발견되는 예수 중심의 공동체(ekklesiae)의 유형들15)

레베카 루이스는(그림 4) C-스펙트럼을 가지고 출발하지만, 상황화와 혼합주의는 동일 선상에서 나타낼 수 없음을 보인다. 왜냐하면 그들은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그녀의 모델은 상황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도 얼마나 혼합주의적일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그 예로서 “기독교적” 양식들을 가지는 “민속 신앙적인 가톨릭”을 말한다.

그림 4. 루이스: 상황화와 혼합주의

릭 러브(Rick Love)는(그림 5) 감정적 정체성과 종교적 관습에 대한 헌신 그리고 그에 대한 종교적 정체성을 부가하여 C-스펙트럼을 채용하였다. 따라서 C-스펙트럼의 상단에 높은 수준의 종교적 정체성과 관습을 같이 두고 하단에 그 두 가지에 대한 낮은 수준을 자리하게 하였다. 러브의 모델은 높은 수준의 정체성이 낮은 수준의 종교적 관습의 준수와도 자리를 같이 할 수 있다는 것을 효과적으로 제시하는데 우리는 이를 다양한 무슬림 세계의  영역들 가운데에서 자주 목격한다.

그림 5. 러브- 종교적 정체성과 종교관습

죤 베리의 문화수용 모델(John Berry’s acculturation model) (그림 6 아래)은 이주자들이 자신들의 이전 문화에서 새로운 문화로 이동할 때에 경험하게 되는 이중적인 정체성에 대한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바네트는 그 도표에서 무슬림과 크리스천 문화 정체성을 향하는 네 가지의 가능한 위치를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동화, 분리, 통합, 그리고 소외이다.

그림 6. 바네트가 베리의 “문화수용모델”을 채택한 모델

흥미롭게도 C3-C4 신자들은 소외 층과 통합 층 그 어딘가로 위치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상 서구적 기독교를 동반하는 일종의 세속화를 반영할 수 있다. 반면에 베리의 문화수용 모델에서는 다른 어떤 세 가지 보다 통합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소외를 덜 선호하는 방향으로 표현한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16) 복음주의자들은 그러한 통합을 혼합주의라고 간주하는 경향이 있어왔다. 대부분의 신자들이 복수의 문화적 체계 가운데에 드러나게 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 간단한 이차원 모델은 그 한계점이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정체성의 선택을 두 가지의 선택 사항으로 한정하는 경우에 내부자운동을 논하는 데에도 편극이 생기게 된다. 그러나 바네트의 내부자 친구들은 스스로 어떤 한가지의 선택을 거부하고 혼종(hybrid)화된 일종의 이중적 정체성을 확증하였다(그림 7).

그림 7. 바네트의 혼종화 모델

바네트는 이 도표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비록 베리의 “이주(immigration)” 분류가 “혼합성(mixing)”을 내포하긴 하지만, 그것은 이전 것을 100% 붙들고 있는 동시에 100% 새로운 것을 붙드는 식의 모델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실제로 이차원 도표에  나타낼 수는 없을 것이다. 대신 그 그래프는 베리의 도표에 나타나지 않는 “제 삼의” 공간으로 돌출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여 호미 바바(Homi Bhabha가 말한 바와 같은 “제 삼의 공간으로의 혼종화” 의 가능성을 열게 된다.17)

문화적인 단층구조 가운데에 들어 있는 지층들처럼 그것들이 복잡하게 위로 혹은 아래로 드러나면서 문화와 정체성이라는 새로운 지각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소위 “제 삼 문화의 아이들(TCKs)” 가운데에서 목격된다.18) 중동에서 자라나서 스칸디나비아로 이동한 바네트의 10 대 딸 아이는 자기 이메일 주소로서  “desert moose(사막의 큰사슴)”를 사용하며 그것을 자기 티셔츠의 로고로도 사용한다.

그림 8. 제 삼 문화 아이라는 혼종화의 예

혼종화(Hybridity)는 자기 아이들의 서구와 아랍식이 섞인 옷가지와 가치들 가운데에서 명백해 보인다. 그는 자신의 관찰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혼종화는 문화간 동음이의어적인 모호함으로 채워져 삶을 복잡하게 만든다. 내가 처음에 한 선교대회에서 “사막의 큰 사슴” 그림을 보여주었을 때에 몇 사람은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왜 그럴까? 왜냐하면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문화적인 혼종화가 개인적으로 어떤 느낌을 받는지 제 삼 문화의 아이들이 어떤 갈등을 겪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혼종화는 외롭고 아픈 싸움일수 밖에 없다.

혼종화의 복잡성에 대한 모델(Modeling the Complexity of Hybridity)

바네트는 허버트 헤르만(Hubert Herman)의 것과 같은 대화적 모델(dialogical model)이 혼종화에 관련되는 수 많은 층들과 그 역학관계들을 수용할 수 있고19) 다중적 집단 정체성을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을 제안한다:20)

[헤르만의] 모델에 의하면, 자아(the self)는 “탈중심적”이어서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나”의 위치들에 대한 역동적 복합체를 구성한다. 이러한 개념 가운데에는 “내가” 상황과 시간의 변화에 따라서 한 공간에서 다른 공산으로 이동할 가능성을 가진다. 그러한 “나”는 다양한 심지어는 반대되는 위치 사이에서 널뛰기를 하며 각각의 위치에 의사표시 할 수 있는 소리를 부여하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서로가 가상적으로 대화를 이루어내는 관계를 형성한다. 그러한 목소리들은 하나의 이야기 가운데에 등장하는 인격들과 같이 서로가 상호작용을 하는 것처럼 기능한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가 질문하고 대답하거나 동의하거나 동의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일련의 과정에 기여한다. 서로 다른 목소리들로서 이들은 인격과 같이 서로가 자기 주장을 하면서 정보를 교환하게 되고 결국은 복잡하게 대화를 이루는 구조를 갖는 자아를 이루게 된다.21)

외부적인 문화는 단일적이지 않다. 무슬림적이거나 기독교적인 그리고 성경적이거나 종족집단에 관련된 아니면 세속적인 여러 가지 복수의 문화들이 경쟁관계에서 영향을 준다. 그들은 서로에게 어떠한 영향력을 미치는지 불분명해 보인다(fuzzy). 상단의 화살표는 각 개안 안에서 상호작용하는 세계관들을 반영하는 인식모델을 구성하는 데에 기여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아래쪽의 화살표는 각 개인들이 사회에 기여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며 살아갈 때에 이루어지게 되는 외면화를 표시한다. “자아(The Self)”로 표시된 중앙의 타원형은 그 신자가 외부의 문화 및 내면의 인식에서 나는 소리들과 내화를 이루는 무대를 나타낸다.

이러한 대화적인 역학관계를 설명한 사람이 아왈(Awal)로서 그는 서구 세계로 이민을 갔다가 본 고향으로 돌아간 경험을 가진 사람이다. 다음과 같은 대화는 여러 가지의 아버지 역할, 즉 “부족적 관점의 아버지” 그리고 “무슬림으로서의 아버지” 또한 그와는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한 “서구적 기독교인 아버지”가  자신의 내면 무대에 있어서 어떻게 서로간에 내적인 대화를 이루는가 설명한다.

얼마 전에 딸이 내게 물었다. “아빠, 도대체 난 누구지? 내가 무슬림이야 크리스천이야?” 내가 답변하였다. “너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무슬림이란다. 우리가 무슬림인 것은 우리 출생 증에 써있지 않니? 우린 대가족을 이루고 살아 왔고, 우리가  무슬림인 것은 우리의 유산이며 우리 종족이란다. 그렇지만 우리는 온 가족이 그리스도를 따르지. 예수를 따르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어렵긴 하지만 난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한 결심에 대하여 한번도 후회한 적이 없단다.”

그러나, 그러한 설명은 그들에게 너무나 어려운 것이었다. 내 딸은 지금은 십 대가 되었는데, 나에게 이렇게 질문하였다. “아빠,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 내가 결혼은 할 수 있을까?” 그것은 나에게 매우 힘든 시간이었다. 그들 스스로가 자신의 길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크리스천이 아니다…. 우리는 무슬림이다. 우리는 무슬림들 가운데에서 용인되고 소속되어 있다…. 우리는 무슬림 사회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왔으며 크리스천들로부터 많은 거절을 경험하였다. 우리 아이들도 그것을 경험하였고 그것이 아이들을 힘들게 한다….

나는 더 이상 크리스천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개의치 않는다. 나는 무슬림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유의한다. 그렇지만, 만일 대통령이 나에게 그리스도는 너에게 누구인가라고 질문한다면 나는 그에게 나의 신앙을 이야기 할 것이다. 난 결코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타협하기 원치 않는다. 그렇지만 나는 크리스천은 아니다….

우리는 이민을 떠났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돌아 왔다… 우리 고향으로 말이다… 우리에게는 여기가 더 좋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 아이들을 잃을지도 모르지만, “하나님 용서를 구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게이가 되고 마약 중독자가 되거나 섹스 프리 주의자가 되는 것 보다는 무슬림으로 성장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들이 최소한 존경 받을만하고 도덕과 가치를 지니고 살기를 바란다…. 22)

아왈(Awal)의 자아라고 하는 무대에서 진행되고 있는 혼란스러운 대화는 여러가지의 소리들 가운데에서 어느 하나에 굴복해야만 하는 압력이 있음을 반영한다. 그럼에도 그는 그것을 항속적으로 저항하고 있다. 지속되는 정체성 갈등이라는 실제는 아왈이 자신을 공개적으로 기독교 및 아랍 기독교회와 동일시해 오면서 오히려 심화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정체성에 대한 단지 일 차원적 사고는 실제와는 상당히 다르다.

바네트는 크리스천과 무슬림 목소리가 서로간에 대화가운데 있는 또 다른 실례를 관찰하였다. 어떤 무슬림 배경의 신자들(MBBs)은 무슬림들이나 이슬람을 맹렬히 비난하였지만 어떤 기독교 신자가 그와 같이 이야기 하였을 때에는 오히려 이슬람을 변호하는 반응을 보였다. 왜 그럴까? 왜냐면 MBB들은 “이민자”들이기 때문에 이슬람이 자신들의 “고향”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반응이 혼합주의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이중적 정체성의 실제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실제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러한 서로 다른 소리를 억누르게 되면 분열증적인 행동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23)

어떤 한 가지의 주된 정체성에 따르도록 하는 압력들 한 복판에 있는 이렇듯 다양한 소리들의 항속적인 존재는 살만 루쉬(Salman Rushie)의 이야기에 그려져 있다.

나 또한 목에 여러 개의 줄들이 묶여 있다. 그것들이 오늘 까지도 나를 이리저리 동쪽으로 서쪽으로 끌어가면서 자기를 선택하라고 종용한다. 나는 그렇듯 밧줄에 묶이어 말처럼 힝힝 거리며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뒷발로 차내려고 애쓰는 형국이다.그러나 나는 그 어느 것도 따를 수 없다. 그 어느 것도 선택하지 않았다, 난 선택을 포기했다.24)

우리는 정체성에 대한 태도가 무슬림 공동체 내부에 있는가 혹은 외부에 있는가에 따라서 영향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떤 아랍 속담에, “손을 물에 담그고 있는 사람은 손을 불에 두고 있는 사람과 같지 않다”라는 말이 있다. 바네트의 연구에서 타향으로 떠난 모든 무슬림 배경의 신자들은 이슬람 정체성의 거부(배교)를 향한 방향으로 움직여 갔다. 그러나 타향으로 이주해 가지 않은 무슬림 배경의 신자들은 모두 자신들의 여러 가지 소속감에서 나는 소리들과 타협을 이룬 “내부자” 정체성으로 “표류”하고 있었다.25)

문화변화에 있어서 혼종화의 역할(Hybridity’s Role in Culture Change)

혼종화는 신자들의 문화와 공동체의 변혁을 위한 기회를 창출한다. 그것은 혼합주와 다른데 그것은 자체로 아무런 힘을 쓸 수 없는 시너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문화 공간들이 옛 것과 새 것 사이의 경계에서 형성된다. 이러한 부분이 간과된 내부자운동에 대한 논쟁은 고통스러울 뿐이다.

버네트가 한 “T”와의 인터뷰 결과는 무슬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그의 대화 가운데 이미 혼종화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바네트: 여기에서 당신은 (주민증에 있는 바와 같이) 무슬림이지요? 당신은 무슬림입니까?

T: 네.

바네트: 당신은 그러면 이상적인 무슬림을 어떻게 묘사하십니까?

T: 난 이상적인 무슬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후에 자신의 신앙에 대하여 토의하는 동안 또 다른 의미와 관련된 내용들이 표출되었다.

바네트: 당신의 그리스도 안에서의 신앙은 당신을 무슬림으로서 어떠한 영향을 끼쳤죠?

T: …내 신앙이 더 나은 무슬림 되도록 해주었습니다….26)

마즈하르 말로우히(Mazhar Mallouhi)의 이야기가 그의 자서전에 기록되어 있다. 그는 중생을 경험하면서 기독교와 아랍 크리스천 문화에 귀의하였다. 그러나 그는 곧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 부착되어 있는 무슬림 뿌리로부터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가 종종 말하는 것은, “이슬람은 나의 유산이며 그리스도는 나의 유업이다.” 그렇게 하여 그는 점차적으로 무슬림 사회로 되돌아 갔다. 비록 말로우히가 공개적으로 이슬람의 두 가지 기둥, 즉 샤하다(신앙고백)와 하지(성지순례)를 거부하지만 그는 무슬림 공동체의 많은 무슬림들로부터 사랑 받고 인정받고 있다. 우리는 이를 놀랍다고 생각하는가? 이것은 종교적인 정체성의 경계선에는 정통이라 불리는 신학적인 전통이 자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가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피터 구트샤크(Peter Gottschalk)는 다음과 같은 관찰을 한다:

수 많은 힌두와 무슬림들은 뚜렷하고 구분되는 종교적인 세게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명백한 정체성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신앙 생활을 한다. 더욱이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유사하거나 넓게 퍼진 문화적 전통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인지한다. 비록 그들이 어떤 신을 믿지 않는다 하더라도 힌두나 무슬림들은 자신들을 자신이 속한 가족의 정체성, 종족의 정체성 및 문화적 정체성으로 말미암아 자신들도 그 일부라고 하는 자기 정체성을 가진다.27)

신앙과 전통의 소리들이 경쟁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대화적인” 접근은 언어와 정체성으로 하여금 상황에 따라서 시험 받거나 협상을 하게 된다. 바네트는 다음과 같이 관찰한다:

“내부자 운동”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종종 무슬림이라는 단어에 대하여 교과서적인 정의를 사용하지만 본 연구에서 인터뷰한 예수를 따르는 비이주 무슬림들 모두는 이러한 정의를 사용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적극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슬람의 소리들을 단순하게 억누르는 것이 장기적인 전략으로서 과연 얼마나 적절한지 의문을 던져주고 있다.28)

무슬림 신자들은(MBs) “무슬림”과 같은”종교적” 정체성의 용어를 자신들이 그러한 용어를 가지고도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로 공동체 내에서 머물러 있을 수 있도록 종교적 양식들과 상징들을 재해석 하거나 설명을 한다. 아랍 기독교 교회 문화와 갈등하던 한 MBB는 자신이 갈등하고 있던 것들이 성경적인 필수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았다. 그 충격으로 그는 교회 봉사에 출석하는 것을 중단하였고 자신의 무슬림 정체성을 확증함으로써 무슬림 공동체에 다시 합류하였다. 그는 자기 식구들에게 말했다. “나는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 나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불명예스럽게 하고 싶지 않다…. 나는 거의가 반라의 상태로 있는 곳에 아내를 데려가고 싶지 않다…. 나의 아내는 정절을 지키기 때문이다….”29) 바네트는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K는 무슬림들이 교회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하여 상기하면서 무슬림의 도덕성을 이야기 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것을 자신의 그리스도에 대한 확실한 충성도를 나타내는 것으로 사용하고 있다. 자기 아내에 대하여 “그리스도를 따르며 여전히 도덕적인”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자기 마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형적으로 바라보는 단순한 시각을 내포하는 것이다.30)

바네트는 내부자 신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문화와 의사소통하며 영향을 줄 수 있도록 함에 있어서 혼종화와 이중적/다중적 정체성의 긍정적인 역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선택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내 친구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전통적인 문화 양식들 가운데에서 리미날(liminal) 정체성을 취해왔다.31)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들은 예언자적인 내부자들로서의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 나는 이 것이 내부자운동의 토의에 있어서 중요한 통찰력이라고 생각한다. 어떠한 공동체에 있는 어떤 신자도 자기 문화 출신의 완전한 “정형화된” 사람이 될 수는 없다.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항상 우리로 하여금 현재적 상태에 반하는 웅덩이를 만들어 낼 것이다. 그것 때문에 우리는 매우 이상한 사람들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매우 다르다고 하는 것이 외부자가 된다는 것과 동일하지 않다. 외부자는 권리를 잃는다. 자기 공동체 가운데 의미 있게 말할 수 있는 문화적 능력을 상실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효과적으로 복음을 증거할 기회로부터 단절된다. 나에게 예언자적 내부자들은 급진적으로 문화를 변혁시키면서 문화적으로 적절한 의사소통을 이루는 이중적인 국면을 포획한 것이다.32)

잠재적인 영향력의 한 가지 요소가 언어와 관련된 것이다. 누가 한 문화 가운데 있는 어휘들과 상징들의 의미를 결정하는가? “예언자적인 내부자”들은 자신의 변화를 이룬 정체성에 적합한 의미들과 양식들을 사용하여 적합한 변호를 할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모든 생각을 잡아 그리스도께 복종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고후 10:5). 이러한 과정은 즉각적이지는 않다. 그것은 아마도 항상 그렇게 성공적이지 않을 수 있다. 모호함과 혼란이 상황화와 문화 변혁에 보통 동반한다. 바네트는 다음과 같이 결론 짓는다:

내 생각에 한 문화의 변혁은 언제나 문화적인 상징들이 우위를 점하고자 하는 경쟁을 포함하기 때문에 그 초기 상태에서는 혼란스럽게 보이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혼합주의를 비성경적인 의미들이 상징이나 양식 가운데 관련되는 것으로서 언어적 정의를 한다면 어떤 정도의 혼합주의적인 혼란은 온전한 상황화의 과정으로서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혼합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자리하기 때문에 상징에 대한 적합화에 실패할 때에 생기게 된다.33)

이상과 같은 바네트의 토의로부터 우리는 정체성의 복잡성을 알 수 있고 실제적으로 이중적, 다중적 그리고 혼종상태의 정체성이 실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이전의 패러다임을 가지고는 새로운 신자들이 정체성의 위기 가운데에 실제적으로 어떠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정체성에 대한 이와 같은 다양한 차원들을 이해하기 위한 다양하고 부가적인 모델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IV. 히긴스: 이중적 정체성과 순전성(Dual Identity and Integrity)

내부자 신자들에 대한 어떤 비판에 대하여 케빈 히긴스는 그들의 이중적 정체성을 가진 제자도에 대한 순전성을 변호하였다. 그는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구성원이 된다는 것이 동시에 다른 정체성들에 대한 부인을 요구하지 않고 오히려 그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라고 논지를 편다.34) 그러면서 어떻게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 무슬림이라고 하는 정체성을 가질 수 있는지 몇 가지의 방법들을 제시한다. 히긴스는 무슬림 정체성을 지닌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 이슬람, 꾸란 그리고 무함마드에 대하여 매우 다른 관점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하여 가질 수 있는 반면 어떻게 순전성을 가진 채 자신들의 이중적인 정체성을 확증하는지에 대하여 보여준다.35)

히긴스가 언급하는 주요 쟁점은 그리스도의 교회 내에서 구성원이 되는 것과 이중적인 정체성을 갖는다는 것은 비교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히긴스는 “교회”에 대한 성경적인 이해가 어떻게 우리로 하여금 내부자운동 가운데 있는 자들이 예수의 몸을 이루는 구성원이며 동시에 지역적 무슬림 공동체의 구성원이 될 수 있는지 알 수 있도록 해준다고 말한다. 그는 이렇게 진술한다: “교회에 대한 성경적인 정의는 반드시 “경계”를 갖거나 “닫힌” 형태의 사회집단을 언급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구성원들은 공동체내의 다른 사회적 심지어 종교적 구조의 구성원이 되는 것을 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성령에 의하여 거듭난 자만이 그리스도의 몸 안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영적으로 거듭나 그리스도 몸의 구성원이 되기 때문에 그들은 다른 사회/종교 구조 가운데에서 마치 밀가루 반죽 가운데 있는 누룩과 같이 살아가지 그곳에서 제외되어야 할 필요가 없다.”36)

V.  이야두라이(Iyadurai): 근대화와 토착적 교회간의 패러다임(Paradigm Conflict between Modernity and Indigenous Culture) 

“미국과 인도의 땅콩 소비”(Consuming Peanuts in the USA and India)에서 인도의 선교학자 조슈아 이야두라이(Joshua Iyadurai)는 내부자운동을 서구 기독교의 함정이 없는 복음에 대한 토착적인 표현이라고 간주한다.37) 전자는 개화라고 하는 서구의 근대화 패러다임으로부터 출현한 개인주의적인 표현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서구적인 선교모델은 자신들의 복음 메시지가 갖는 지성적인 우월적 지위를 시위함으로써 개개인들에게 접근하는 것을 강조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강조의 결과가 분리이다. 즉 그것은 공동체, 문화적 관습 및 사회적 정체성들과의 연결고리들을 불살라버린다…. 반면에 토착적인 공동체들은 자기 자신을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그리고 역사적인 실제들의 산물로서 간주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이 복수적이고 관계적이며 상황과 외부적 실체들에 따라서 변화하게 된다.38)

따라서 그는 선교사역의 방향이 각 개개인들이 자신들의 영적인 정체성으로서 예수를 따르는 자가 된 것을 기뻐하는 동시에 힌두로서 무슬림으로서 자신들의 사회/종교적인 정체성을 회심자들이 가질 수 있도록 하여 개개인들이 공동체에서 소외 당하는 것을 방지하도록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39)   이야두라이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자나키(Janaki)는 한 사업가의 아내이며 거의 30 여 년 동안 교회를 출석하거나 다른 크리스천들을 만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외적으로 그녀는 아내로서 힌두의 모든 요구사항들을 충족하면서 내적으로는 예수를 따랐다. 궁극적으로 그녀의 모든 가족이 복음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그녀는 그렇게 오랜 동안 힌두로서 사회/종교적인 정체성을 유지하는 위치에서 그 정당성을 입증 받았다고 느꼈다. 이러한 상황은 인도의 힌두 및 이슬람에서 있었던 다른 많은 회심자들의 경우에도 사실로 드러난다.40)

다른 종교적 공동체 내에서 하는 선교는 신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영적인 정체성을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새로운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들을 분류하는 작업을 하는 것은 부적절할 뿐만 아니라 부적합하다. 왜냐하면 개인적 및 사회적인 정체성은 변화하는 것이고 다양한 사회적 상황의 요구에 따라서 복수성을 띄기 때문이다. 이야두라이는 이렇게 자신이 관찰한 바를 피력한다: “복수의 정체성들의 보다 나은 통합은 사회적인 기능들 가운데에서 잘 존재하고 자연스럽게 항해해 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통합된 정체성들은 갈등 가운데 있는 상황을 타협하기 위하여 다면적인 자아를 표출함으로써 갈등하는 사회집단들로부터 그것들이 무엇인지를 이끌어 낼 수 있다.”41)

비록 기독교, 힌두, 그리고 이슬람 사이의 경계들이 분명하게 그어지지만, 토착적인 제자들은 다중적인 정체성을 창출함으로써 그것들을 넘어갈 수 있도록 경계선들을 다시 그리게 된다. 그들은 자신들이 힌두 혹은 이슬람의 종교적인 관습들을 영적인 목적을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이유 때문에 지속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참여하는 과거의 종교적 관습들을 새로운 의미와 가치들로 채운다. 만일 그들이 가족과 함께 모스크나 사원을 들어갈 때면 그곳에서 주 예수의 아버지 되시는 분께 기도한다. 그들은 또한 종교적인 정체성과 영적인 정체성을 구분함으로써 종교간에 있는 경계의 지형을 새롭게 한다. 그들은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을 제도적인 종교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반면 예수를 따르는 것은 영적인 정체성이라고 생각한다.

복수의 정체성을 가진다는 것이 이중적임을 나타내지는 않는다. 단지 상황적 필요에 따라서 어떠한 사람들도 그렇게 하는 일반적인 것이다. 예수님 자신도 아버지께서 지시하셨던 시간이 이르게 되어 자신의 지상 임무를 거의 마쳐게 되는 시점까지 자신을 완전하게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않으셨다. 이는 선교의 전통적인 서구 모델을 따라가는 우리에게는 다소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땅콩이 분명하게 상표가 찍힌 상품이 되기를 원한다. 이야두라이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는다:

서구의 현대선교 패러다임은 모든 것을 고정된 분류항목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근대화를 따랐던 패러다임은 이것 아니면 저것이었지만, 토착적인 패러다임에서는 그 실제가 하나의 스팩트럼으로 주어진다. 궁극적으로 여기에서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이슈는 신학적인 것이 아니라 서구중심적인 근대식/소비자 패러다임과 토착적인 문화패러다임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패러다임 충돌에 있다. 토착적인 사회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입맛대로 땅콩을 즐기도록 하면 안될까?42)

VI. 트라비스와 트라비스 그리고 제임슨: 정체성에 영향을 주는 인자들

두 가지의 아티클에서 무슬림들이 예수를 따게 된 이후에 수용할 수 있는 정체성의 종류에 영향을 미치는 인자들을 언급하였다. 여기서 정체성들은 명백히 상황에 의하여 좌우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따라서 우리는 서로 다른 상황 가운데에서 신자들을 다양한 정체성을 개발할 것을 기대해야 한다.

존과 아나 트라비스는 무슬림 배경의 신자들, 가족들 그리고 공동체들이 C-스케일로 묘사되는 여러 가지의 정체성(즉, 크리스천, 이사를 따르는 자, 예수를 따르는 무슬림, 지하 신자들)을 수용함에 있어서 그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무슬림 세계 가운데 있는 인자들을 제시한다. 2007년도의 글로발 경향 및 열매 맺는 실천을 위한 대회(2007 Global Trends and Fruitful Practices (GTFP) Consultation)의 보고자료에 기초하여, 그들은 이러한 변화하는 문화적, 사회적, 종족적, 종교적, 역사적 그리고 정치적 인자들을 묘사한다.43) 이러한 인자들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1. 기존 교회들의 다양성: 새로운 신자들은 일반적으로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들과 비슷한 교제회중을 재생산한다. 만일 복수의 유형들이 존재하게 되면 그들은 선택사항들에 대하여 심사 숙고하는 경향이 있다.

 2. 정치적인 인자들, 특히 종교의 자유도 및 샤리아 법의 적용 유무.

 3. 가족 및 집단의 태도. 기독교로의 개종에 대한 그들의 반응이 결정적이다.

 4. 이슬람을 사회가 받아들인 이후 지나간 시간의 길이. 이슬람 정체성의 강도와 호소력은 직접적으로 비례한다.

 5. 이슬람이 지역적 문화와 서로 섞이거나 혼합되어 있는 정도.

 6. 지역의 크리스천 인구계층의 전재 및 성격. 그들은 무슬림배경의 신자들에 대하여 긍정적이며 열려있는가? 혹은 우호적인가 의심하는가? 역동적인가 아니면 명목적인가? 소외된 종족집단인가?

 7. 다원주의적인 경향이 어느 정도 존재하는가?

 8. 종족 집단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 그들은 과거 이슬람으로 돌아가려 하는가 아니면 멀어지고자 하는가?

 9. 외부 유입 사상들(세계화, 서구화 및 이데올로기)의 영향력 정도.

10. 사회 문화의 획일성을 띄는 정도. 단일종족인가 아니면 복수문화권인가? 억압 받는 소수 집단들은(예를 들어 알제리의 베르베르족) 다른 정체성을 취하는 경향이 있다.

11. 다른 무슬림 분파들(예를 들면, 수피 집단들: 이들은 전통적으로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나타나는 거룩한 성격들에 대한 존경심을 가진다) 관용의 정도.

12. 크리스천들과의 어떤 역사적인 만남을 가졌는가.(식민주의자들, 군인들, 혹은 겸손한 복음전도자들 등).

13. 상황화된 성경의 유무.

14. 복음 사역자들에 의하여 전달된 복음의 종류. 그것이 외부의 문화에 부착된 것으로서 종교를 바꾸어야 할 것인지 아니면 영적인 메시지인지.

15. 교육 및 인터넷에 대한 접근의 용이성. 이러한 도구들은 다른 종교나 영적인 신앙에 대하여 고려할 수 있는 자유를 제공한다.

16. 개개인이 갖는 이슬람과의 경험. 긍정적인 자세를 가지는가? 기본적으로 만족하는가 아니면 부정적인가?

17. 복음 전도자의 교회배경. 사역자들은 일반적으로 자신들이 경험한 교회를 개척하는 것을 권장한다. 트라비스는 복음 사역자들의 개인적인 취향, 방법 및 신념들이 무슬림 배경의 신자들이 어떠한 정체성을 가지는가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한다.

이와 같은 인자들과 다른 인자들이 무슬림들이 신앙과 종교적인 정체성을 어떻게 바라보며 자신들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개인적으로 그리고 지역적인 교제회중을(에클레시아) 어떻게 형성하는지에 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 연구의 요점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1. 복음 전도자들은 성령께서 어떻게 인도하실 지에 대하여 민감하여야 하며 무엇이 새로운 무슬림 배경의 신자들에게 최선인지를 고려하여 자기 자신의 관점을 그들에게 부과하지 말아야 한다.

2. 복음을 처음으로 받아들인 사회의 어떤 계층은 한 회중의 형태를 형성하고 어떤 정체성에 대한 표현을 따를 것이다. 그러나, 복음이 또 다른 계층에 전해졌을 때에는 다른 형태의 회중적 표현이 동일한 지역이라고 할지라도 출현할 수 있을 것이다.

3. 어떤 특별한 한 가지의 사회종교적인 표현이 언제나 가장 좋은 것은 아니다. 우리는 유연성을 가져야 하고 성령께서 그들을 인도하셔서 자신들이 정체성을 스스로 표현할 수 있도록 기꺼이 지지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44)

리챠드 제임슨에 의한 두 번째 아티클은 이슬람 정체성을 거부한 무슬림들(보통 아랍 세계에서 전형적으로 발견됨)을 내부에 머물러 있는 그리스도를 믿는 무슬림들(보통 동남아시아에서 많이 발견됨)과 비교하여 대비시켰다. 그들은 모두 성경의 권위와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과 같은 근본적인 영적 헌신을 공유하지만, 다른 경험들과 태도들이 그들이 수용하게 된 정체성에 영향을 미침을 알 수 있다.45)

무슬림배경의 신자들에게 이슬람에 대한 반감으로부터 자라나오는 무관심이 이슬람 정체성에 대한 거부를 이끌어 낸다. 그들의 기독교로의 개종과 크리스천 정체성의 채택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에 의하여 영향을 받는다:

1. 무슬림들의 무슬림들에 대한 폭력

2. 소수 종족들에 대한 아랍인들의 억압

3. 세속화된 무슬림 사회 가운데 등장한 근본주의자들의 부활

4. 질문할 여지를 주지 않는 획일성과 교조주의 및 자유의 결핍.

5. 서로 종교가 다른 사람 사이에 이루어지는 결혼에 대한 무슬림 사회의 비관용.46)

반면에 어떤 무슬림 공동체 가운데에도 이슬람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의 종교적 국면만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과 문화와 관습 그리고 국적 및 종족성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든 것을 동시에 다 져버리는 것은 바람직하거나 실행 가능한 선택사항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따라서 그들은 예수를 따르는 자로서의 정체성과 함께 무슬림 정체성을 유지하는 경향이 있다.

제임슨은 자신의 연구를 서구의 크리스천들을 향한 호소로서 결론 짓는다. 그러나 그러한 호소는 어느 곳에 있는지 하나님 나라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모든 신자들이 적용해야 할 것이라고 호소한다. 이것이 우리가 마음에 간직해야 할 정체성에 대한 연구와 부합되는 결론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상황들은 무슬림 배경의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자들로 하여금 매우 다른 형태의 회중을 낳게 되었다. 서구의 우리는 이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우리는 나란한 위치를 가져야 하는가? 우리가 어느 한 공동체나 다른 공동체 뒤에 줄을 서야 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루는 일원으로서 그렇게 우리 주님께서 무슬림들을 이끌어 내고 계신 것을 기뻐할 것인가? 우리의 하나님께서 무슬림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그러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놀라운 창조적인 활동을 하신다고 인정할 수 있는가? 우리가 상황화 스펙트럼을 넘어서 무슬림 배경을 가진 이 형제 자매들과 함께 걸어가면서  우리가 우리의 삶 가운데에서 함께 하고자 노력하는 것과 같이 그들로 하여금 더욱 신실하고 충성되이 살도록 격려할 수 있는가?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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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Excerpt from the Der Spiegel interview, “Political Scientist Hamed Abdel-Samad: ‘Islam Is Like a Drug,’” Der Spiegel International Online, September 17, 2010. http://www.spiegel.de/international/germany/political-scientist-hamed-abdel-samad-islam-is-like-a-drug-a-717589.html

2) John Ridgway, “Insider Movements in the Gospels and Acts,” International Journal of Frontier Missiology 24, no. 2 (Summer 2007): 78. This distinction was earlier made by Wilfred Cantwell Smith, The Meaning and End of Religion (Minneapolis: Fortress Press, 1991), 156.

3) All of the “circle” diagrams of models in this paper are from Jens Barnett, “Searching for Models of Individual Identity: A Journey Exploring Adaptations of the C-Spectrum, Cultural Hybridity, and a Dialogical Model of Identity Applicable to Individual Believers,” to appear in a volume published by William Carey Library in 2015.

4) Green has authored several articles on these topics:  “Conversion in the Light of Identity Theories” and “Identity Choices at the Border Zone” in Longing for Community: Church, Ummah, or Somewhere in Between? ed. David Greenlee (Pasadena: William Carey Library, 2013), and “Identity Issues for ex-Muslim Christians, with Particular Reference to Marriage,” in St. Francis Magazine 8, no. 4 (August 2012): 435?481. “Seeking a Way through the Impasse” will appear in a collection from William Carey Library in 2015.

5) Eric Adams, “Heart Allegiance and Negotiated Identity.” International Journal of Frontier Missiology 30, no. 1 (Spring 2013): 22.

6) Adams, 22.

7) Adams, 23.

8) Adams, 24.

9) Ibid.

10) Ibid.

11) Adams, 25.

12) Belonging is found in “the dialogical interaction between a sincere confession and a collective recognition” (Raimundo Panikkar, “On Christian Identity: Who is a Christian?,” in Many Mansions? Multiple Religious Belonging and Christian Identity, ed. Catherine Cornille [Maryknoll:?Orbis, 2002], 136), cited in Barnett.

13) Unless otherwise indicated, all of the material in section III here is taken from Barnett “Searching for Models of Individual Identity.” Direct quotes of Barnett will be referenced to him in a footnote.

14) See Enoch J. Kim’s discussion of “urban multi-identifications” for example, “‘Us’ or ‘Me’? Modernisation and Social Networks among China’s Urban Hui,” in Longing for Community: Church, Ummah, or Somewhere in Between? ed. David Greenlee (Pasadena: William Carey Library, 2013), 89?96, as cited by Barnett.

15) Taken from John J. Travis and J. Dudley Woodberry, “When God’s Kingdom Grows Like Yeast: Frequently Asked Questions about Jesus Movements Within Muslim Communities,” Mission Frontiers (July?August 2010): 24?30. Used with permission.

16) Berry et al, Cross-cultural Psychology, 356, as cited by Barnett.

17) Homi K. Bhabha, The Location of Culture (London: Routledge, 2004), 312, as cited by Barnett.

18) “Third Culture Kids,” a term to label cultural hybridity in expatriate children. First coined by Ruth Hill Unseem, “Third Culture Kids: Focus of Major Study,” Newslinks, Newspaper of the International School Services 12, no. 3 (1993), as cited by Barnett.

19) Hubert J. M. Hermans, “The Dialogical Self: Toward a Theory of Personal and Cultural Positioning,” Culture and Psychology 7, no. 3 (2001): 243?281.

20) Hubert J. M. Hermans and Giancarlo Dimaggio, “Self, Identity, and Globalization in Times of Uncertainty: A Dialogical Analysis, “Review of General Psychology 11, no. 1 (March 2007): 31?61.

21) Hermans, “The Dialogical Self,” 248, cited in Barnett.

22) Barnett.

23) Barnett.

24) Salman Rushdie, “The Courter,” in East, West (New York: Pantheon, 1994), 211, cited in Barnett.Redcliffe College, UK, 2008, 86.

25) Jens Barnett, “Conversion’s Consequences: Identity, Belonging, and Hybridity amongst Muslim Followers of Christ,” thesis,

26) Barnett.

27) Peter Gottschalk and Wendy Doniger, Beyond Hindu and Muslim: Multiple Identity in Narratives from Village India,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00), cited in Barnett, 24.

28) Barnett, “Conversion’s Consequences,” 85.

29) Barnett, “Conversion’s Consequences,” 66.

30) Ibid.

31) Barnett states: Liminality is an ambiguous threshold state between incommensurable social identities such as child and adult, or single and married. This idea is developed by Victor Turner (The Ritual Process: Structure and Anti-Structure, [New York: Aldine de Gruyter, 1995], 95) and applied to hybridity by Homi Bhabha (The Location of Culture, 199).

32) Barnett.

33)  Ibid.

34) Kevin Higgins, “Identity, Integrity, and Insider Movements: A Brief Paper Inspired by Timothy C. Tennent’s Critique of C-5 Thinking for Muslim Audiences,” IJFM 23, no. 3 (Fall 2006): 117?123.

35_ Higgins, 118-119.

36) Ibid.

37) Joshua Iyadurai, “Consuming Peanuts in the USA and India: Reflecting on the Controversy over Insider Movements,” Evangelical Missions Quarterly (October 2013): 454-459.

38) Iyadurai, 458.

39) Ibid.

40) Ibid.

41) Iyadurai, 459.

42) Ibid.

43) John and Anna Travis, “Societal Factors Impacting Socioreligious Identities of Muslims Who Follow Jesus,”in J. Dudley Woodberry, ed., From Seed to Fruit (Pasadena: William Carey Library, 2011): 193?205.

44) John and Anna Travis, 204-5.

46) Jameson, 173.

47) Jameson, 176.

 

*본고의 그림 및 도표는 전방개척선교 본문을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전방개척선교 2015년 1-2월호(vol.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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