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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를 중심으로 하는 전방개척 선교 모델

신바울1)

1. 들어가는 말

2010년도 기준으로 세계 종교의 분포는 기독교 31.5%, 회교 23.2%, 공식적으로 종교에 가입되지 않은 인구 16.3%, 힌두교 15.0%, 불교 7.1%, 민속종교 5.9%, 유대교 0.2%로  발표되었다.2) 우리 기독교는 서기 30년부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한 바울과 그의 사도 일행, 그리고 예수님의 12 제자들을 중심으로 수행된 순교적 선교에 힘입어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 여러 지역으로 확장되었으며 그 결과 주로 그리스 로마 문화권에서 기독교라는 독특한 종교형태를 형성할 수 있었는데 이는 그리스-로마 문화권에 살고 있는 서구 유럽인들의 전통 문화를 바탕으로 상황화에 성공했던 것이 그 비결이다. 그렇게 기독교가 유럽에서 성장하고 있는 동안 아시아 대륙과 중동에서도 힌두교와 불교, 유교, 도교, 회교 등이 지역 종교로서 발흥하여 꾸준히 성장하였고 적극적인 포교를 통해 현대에 와서는 세계적 종교로 자리매김 했다.

사실 역사적으로 종교의 다원성은 늘 존재해 왔지만 특히 1980년대에 이르러 세계의 문화적, 인종적 언어적 지리적 경계는 전례 없이 붕괴되었다. 세계는 진정한 하나의 공동체로 급속히 발전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 세계 종교의 선교전략이 배타적이며 전투적인 동시에, 그 어느 종교도 다른 종교에 흡수 통합될 정도로 교세가 약한 종교는 없기 때문에 이들 종교는 공존하는 가운데 종교간 갈등을 회피하기가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이제 종교적 교세로 볼 때 서구는 더 이상 자신이 문화와 역사의 중심이라든가 유일하게 타당한 종교를 갖고 있다고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3)

이러한 도전적인 상황에서 종교다원주의가 그 해결책으로 제시되면서 20세기 중반 이후에 기독교 신학으로 정착되었다. 종교다원주의의 통상적인 이해는 (비기독교 종교도 인정하는 가운데)4) 기독교가 유일한 구원 종교라는데서 나온 것인데, 바티칸 공회의(1962-1965)가 종교다원주의를 결정한 이후 종교다원주의에 대한 이해가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특별히 한스 큉이 종교다원주의를 주창하게 된 배경을 서철원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한스 큉은 동양 선교의 실패에서 다른 종교들 예컨대 힌두교, 불교, 회교 등을 정당한 구원종교로 인정했다. 기독교의 복음이 모든 인류를 위해서 이루어졌으면 동양인들도 선교에 응해 복음에로 돌아와야 하는데 약 500년에 걸친 선교에도 불구하고 극히 소수만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재래 종교에 부착하였다. 그러면 그런 종교들은 다 사탄의 종교여서 절대자에게 이를 수 없고 구원에 이르는 종교가 아닌가? 아니다. 모든 이방 종교들도 다 절대자에 이르는 정당한 길이라고 한다. 일반 종교들, 힌두교와 불교도 다 윤리를 말하고 내세와 구원 얻음을 말한다. 죄와 사망에서의 구출이라고 표현되지 않았어도 현세에서의  구출을 해탈로 말하여 출생의 순환에서 벗어나서 영원한 열반의 세계에 이르는 것을 구원으로 말하였다5)

진정으로 한스 큉이 종교다원주의를 주창하는지 그 깊은 곳은 잘 알 수 없다. 다만 동기가 타민족의 구원에 대한 갈망과 선교적 열정에서의 기독교의 한계에 대한 회의에서 비롯되었고 더 많은 민족을 구원하려는 길을 모색하려 했다면, 기독교의 본래 주장과 본질을 다 부인하고 초자연적인 요소들을 다 제거하여 일반 종교와 동일한 수준으로 낮추기 보다는 그간 기독교가 전했던 복음과 전달자에게서 문제점을 찾았어야 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오늘날의 종교세계에서 기독교가 아주 많은 선교 활동을 하여도 기존의 타종교인들을 기독교인으로 개종시키는 일은 매우 어렵다는 것은 사실이다. 선교지 상황이 그토록 어렵다 하더라도 필자는 진정한 구원의 복음을 전하기 때문에 비기독교권으로부터 배타적이라는 비난을 받는다 해도 후퇴할 의도가 없다. 설혹 어떤 성경적 진리를 타협함으로써 경우에 따라 선교적으로 막대한 성장을 가져온다 하더라도 “메시아 나사렛 예수만을 통한 구원”이라는 하나님 나라 복음의 진리를 타협할 수는 없다고 믿는다.6)

가장 이상적인 전방 개척 선교의 길은 첫째는 종교다원주의라는 선교지 상황, 현 시대적 사조와 타협하지 않되, 비기독교종교에 대해 기존의 기독교가 가졌던 패권주의적 배타주의를 벗어나는 것이라 생각한다. 둘째는 다른 종교의 존재와 가치를 인정하면서 하나님 나라 복음의 절대성에 대한 확신을 상실하지 않고 그들이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도록 돕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초대교회 시대에 타-문화권에 효과적으로 전방개척 선교를 수행한 역사를 기록한 성경이 그 해결책으로 제시해 주고 있는 하나님 나라 중심의 전방 개척 선교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2. 하나님께 이르는 길

종교간이나 기독교내에서의 가장 근본적인 갈등의 원인은 하나님께 이르는 길, 즉 구원을 받는 길에 대한 서로 다른 믿음과 그에 따른 선교 정책이라 할 수 있다. 구원의 길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을 다 포함하지 못한 채 너무 단순화함으로써 적지 않은 무리가 있더라도, 이 글이 정한 하나님 나라 중심의 선교라는 주제에 집중하기 위해서 일반적으로 널리 제시되는 구원의 길을 최대한 아래 세 가지로 모델로 단순화하여 설정하였다. 물론 구원, 하나님, 메시아, 구속, 믿음, 하나님 나라 등의 모든 용어의 의미는 일반적으로 정통 기독교 신앙이 간직해 오고 있는 의미로만 사용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자 한다. 이 글에서 설정 한 3가지 모델로는 첫째는 기독교를 통한 구원의 길을 제시하는 모델로서 이는 하나님 나라와 비교되는 Christendom의 개념으로 전제한다. 둘째는 모든 종교를 동등하게 구원의 길로 간주하는 모델로서의 종교다원주의로 전제한다. 마지막 셋째는 하나님 나라를 중심으로 하는 선교모델이다.

 2-1. 기독교를 통해 하나님께 이르는 길

  이 첫 번째 길에 대해서는 아래 그림 1-1을 통해 나타냈다.

그림 1-1.  기독교를 통해 하나님께 이르는 길의 모델

이는 누구든지 하나님께 이르려면 기독교를 통해야만 한다는 주장으로 단순화 할 수 있다. 당연히 비기독교 종교에 소속된 사람들은 하나님께 이르기 위해서, 또는 구원에 합당한 믿음을 가진 후에라도 마땅히 개종(종교를 바꾸는  것을 의미-proselytism)하여 기독교에 귀의해야 한다는 주장이라 할 수 있다. 귀의한다는 의미는 개종한 후부터는 기본적으로 종교적, 문화적으로 기독교적인 것을 답습하고 기존의 전통 사회와는 분리되며, 복음 메시지를 전달해 준 전달자의 생활양식으로 가능한 속히 최대한도로 변환하는 것이다. 이러한 선교형태는 자민족중심주의(ethnocentrism)7) 사고에서 산출된 것이라 진단된다.

이런 자민족중심주의의 뿌리는 바리새파 유대인 신자들 그룹이었다. 초대교회 시대에 복음이 유대문화권으로부터 그리스-로마 세계로 전달될 당시에 바리새파 출신 유대 신자들이 이방 그리스-로마 회심자들을 향해 유대교로의 개종을 요구했던 모델이다.8) 바울과 예수님의 제자들 그리고 예루살렘의 야고보 등 성숙하고 분별력 있었던 지도자 그룹의 성경적 판단 덕분에 당시 이방인 그리스 로마 출신의 예수님 제자들은 유대교로 개종하지 않고, 그리스도인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가진 하나님 나라 시민이 되었고, 예수님의 제자로서 충성스럽게 살아갈 수 있었다.

역설적인 현상은 유대교권의 강압적 자민족중심주의적 선교정책에서 벗어나 기독교라는 독특한 정체성을 가지게 혜택을 누린 서구 기독교권이 이제는 기독교 자체의 태생에 얽힌 역사적 과거를 잊고서는 동일한 종류의 강압적 자민족중심주의적 선교정책을 비기독교권을 향해 취해 왔다는 사실이다. 물론 기독교보다 문화적으로나 사회 전반적인 면에서 열등했던 부족국가나 또는 개인적으로 개종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저항이 없었지만, 현대에 들어와서 세계적 고등종교가 직접 조우하는 상황에서나, 비기독교권 배타적 선교지에서는 심각한 종교적 갈등을 유발하는 모델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세계적 고등종교가 일찍부터 존재해 오던 아시아권에서 기독교 선교 열매가 기대보다 미비한 합리적인 이유는 수 없이 많겠지만, 이런 기독교권 자민족중심주의적 선교정책에서 찾아보는 것도 장래의 선교정책을 고안할 때 전략적으로 유익할 것이라 사료된다.

2-2. 종교다원주의가 주장하는 하나님께 이르는 길

누구든지 절대자 하나님께 이르려면 기독교를 통해야만 한다는 주장에 반박하여, 기독교만이 아니라 여러 종교들을 통해서도 동일하게 하나님께 이를 수 있다는 주장으로 전제된다. 특별히 서철원은 특별히 로마교회를 중심으로 채택된 후 일부 기독교내에 퍼지고 있는 종교다원주의의 부당한 주장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기독교가 유일한 구원 종교이고 절대적인 종교라는 전통적인 주장에서 후퇴하여 기독교가 여러 고등 종교들 중에 하나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성육신이 아니며 그만이 유일한 구주가 아니라 많은 종교설립자들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구원이 그리스도에게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모든종교들이 다 동일한 구원을 제공한다고 한다. 기독교가 가장 배타적으로 자기들의 종교가 유일한 구원 종교이고 절대적인 종교라고 주장해 왔다.9)

종교다원적 주장에 대해서는 아래 그림 1-2를 통해 하나의 모델로 단순화하여 나타냈다.

그림 1-2.  종교다원주의적 하나님께 이르는 길의 모델

이 주장은 종교 갈등을 최소화하고 종교간 대화나 화합을 추구하며 종교 일치에 이를 수 있는 가능성도 열어놓았으며 비기독교인들에 대한 구원의 길을 넓게 열어 놓았다고 항변할 수도 있다. 아마 일시적으로나 약간의 종교간 일치라는 진보를 가져올 수는 있으나 강제성이 개입되지 않고는 보편성을 가진 일치를 도출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강하다. 일치를 가져오려면 각 종교가 가지고 있는 개별 종교만의 독특한 신앙을 내려놓아야만 한다면서 하워드 카워드는 그 위험성을 다음과 같이 갈파했다.

모든 종교를 하나의 공통적인 보편 종교로 환원시키고자 하는 시도는 각 개별종교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며, 이는 자유 원리의 파기로 이끌기 때문에 철학적으로도 수용 불가능한 것이다. 하나의 보편적 종교란 결국 종교적 강제를 수반하게 될 것이다. 다양성 없는 동일성이란 자유의 거부에로 나아갈 것이다.10)

또한 이런 종교다원주의는 천하보다 귀한 영혼이 갈망하는 구원의 필요성을 과도하게 강조한 나머지 너무 쉽게 구원의 은총을 보편화시킨 것이라는 우려를 자아낸다. 동시에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성부 하나님의 헌신적인 구원 계획과 자신의 목숨을 희생 제물로 드린 성자 하나님 예수님의 구속사역의 대가를 철저히 경감시키는 오류를 범하는 면을 부인할 수 없다. 사실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구원받아야 할 우리 인간이 하나님께서 마련해 놓으신 구원의 길로 따라 가야지 그렇지 않고 인간들이 인위적으로 구원받는 인간의 범위를 최대한 넓히기 위한 목적으로 자의적으로 지어낸 것은 허구적이며 보장이 없는 위험한 거짓 보장으로 보인다.

2-3.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길

하나님 나라를 중심으로 하는 모델은 누구든지 하나님께 이르려면 기존의 종교적 배경에 상관없이 유일하신 메시아이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으로 단순화 할 수 있다. 당연히 다른 종교에 소속된 사람들은 하나님께 이르기 위해서, 또는 구원에 합당한 믿음을 가진 후에라도 마땅히 개종 (종교를 바꾸는 의미의 proselytism)하여 기존의 종교를 버리고 기독교에 귀의해야만 한다는 서구 기독교적 전통 선교정책을 반박하는 입장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림 1-3.  하나님 나라 중심의 하나님께 이르는 길의 모델

이 모델을 따르면 일단은 타종교와의 대화를 증진하고, 기존의 기독교 전통 선교정책이 유발하는 종교간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다. 다른 종교권에 소속된 사람들이 반드시 개종하여 기독교에 귀의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메시아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가졌다면 그가 속한 기존의 비기독교적 종교에 상관없이 이미 거듭나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 중심의 모델에서는 회심자는 2중적 신분을 지니는 정체성을 가진다고 규정한다. 회심자가 출생해서 획득한 종교 사회적 신분을 그의 1차적 육적 신분이라 규정하고, 회심자가 메시아 예수를 믿음으로 거듭남으로 획득한 2차적 영적 신분이라 구분한다.11) 사실 거듭남으로 획득한 2차 신분인 영적 신분이 중요하지, 태어나면서 받은 1차 신분은 하나님 나라를 들어가는데 어떠한 장해가 되지 않으며, 거듭남에 아무런 제약을 가하지 않는다. 심지어 유대인들이 그 훌륭한 영적 유산을 받았어도 거듭나기 위해서는 전적으로 메시아 예수를 통한 믿음만이 필요했다. 동일하게 현재 이방인 비기독교인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도록 거듭나는데 필요한 조건은 메시아 예수를 향한 믿음뿐이다. 거듭나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반드시 기독교로 개종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하겠다. 이를 그림으로 나타내면 1-4와 같다.

그림 1-4.  종교/문화/인종적 1차 신분과 거듭남 후의 2차 영적 신분 비교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해서 성경은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인종적, 문화적, 종교적인 1차 신분은 하나님을 만난 후에라도 떠나지 말고 그 부르신 상황, 거기 그대로 거하라는 지침을 주고 있다.12) 실제로 초대교회 시대의 예를 들면 이스라엘 지역에는 유대교 배경을 가진 유대인들 중에 메시아 예수를 따르는 무리가 생겨났는데 성경은 그들을 “도를 따르는 사람”13)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한편 이름 모를 유대인 제자들을 통해 메시아 예수의 복음을 듣고 회심한 안디옥 지역의 제자들은 다른 이름인 “그리스도인”14)이라 불리었다. 이렇게 해서 초대교회 공동체에는 유대교도인 나사렛 예수의 제자들과 안디옥에서 생겨난, 주로 이방인 회심자들로 구성된 예수 제자들, 이들 두 그룹 모두가 정당한 정체성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일원으로 참여했다. 이런 맥락으로 현대에서는 하나님 나라 복음이 열방 민족 속으로 확산되면서 유대교-하나님 나라 시민, 기독교-하나님 나라 시민, 회교-하나님 나라 시민, 불교-하나님 나라 시민 등이 일어나면서 하나님 나라가 다양한 구성원을 가질 것이 기대된다.

 3. 하나님 나라 중심의 개척선교가 가지는 특징

비기독교를 종교문화 배경으로 가진 회심자들은 예수를 왕으로 섬기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며 또한 다른 이웃 회심자들과 함께 에클레시아(ekklesia)적 신앙 공동체를 이루어 그 공동체에 소속되도록 지도받는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에 있었던 전통적 종교 문화적 상황에 그대로 거하면서 하나님 나라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며, 그 이웃들을 하나님 나라에 들어오도록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며, 그 민족 공동체 가운데서 하나님 나라를 실현시키는 그 민족 복음화 사역을 향한 작은 겨자 씨앗이 된다. 그들이 씨앗이 되며 복음의 열매를 맺도록 돕는데 필요한 몇 가지 지침을 살펴보기로 하자.

3-1. 교회 공동체의 상황화

선교지의 사도적 복음 사역자들은 메시아 예수의 복음을 받은 이교도 출신의 회심자들을 효시로 해서 그들이 그들 민족과 전통 종교를 복음으로 말미암아 구속시키고 변화시킬 것을 기대한다. 하나님을 잃어버린 현지의 전통 종교와 문화를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속하고 변화시키는 책임은 일차적으로 그 민족의 제자들과 그들 공동체에게 있는데, 그 책임을 다하려면 새로 거듭난 제자들이나 그 공동체는 그들의 전통 종교와 진지하게 대화하는 것을 통해 자기 민족이 메시아 예수를 유일한 하나님의 메시아로 잘 받아들이도록 최선으로 섬겨야 한다. 그 결과로 마침내 현지 신앙 공동체가 그들의 전통 종교를 변화시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새로운 신앙 형태를 가지게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타날 장래의 모습이 반드시 현재의 기독교와 유사할 것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그 실제적인 성공 사례로서 태양신 종교가 복음으로 구속되어 재구성된 기독교가 있다. 태양신을 믿던 그리스-로마 종교가 유대교를 배경으로 했던 바울과 예수님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한 사도 일행으로부터 메시아 예수 복음을 받았지만 전달자들의 유대교를 답습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태양신 중심의 종교전통을 바탕으로 해서 유대교와 구별되는 그들만의 독특한 기독교를 산출했던 역사적 사실이 바로 하나님 나라 중심 선교정책의 성공적인 모델이 된다. 이 모델을 표 2-1로 나타냈다.

그 실제적인 성공 사례로서 태양신 종교가 복음으로 구속되어 재구성된 기독교가 있다. 태양신을 믿던 그리스-로마 종교가 유대교를 배경으로 했던 바울과 예수님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한 사도 일행으로부터 메시아 예수 복음을 받았지만 전달자들의 유대교를 답습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태양신 중심의 종교전통을 바탕으로 해서 유대교와 구별되는 그들만의 독특한 기독교를 산출했던 역사적 사실이 바로 하나님 나라 중심 선교정책의 성공적인 모델이 된다. 이 모델을 표 2-1로 나타냈다현지 선교지에서 그 민족 전체를 하나님께 제물로 드릴 전략을 성취하고자 한다면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핵심요소인 누룩과 겨자씨 같은 역할을 할 교회 공동체를 형성해야 하는데 그 교회 공동체는 그들 자체의 전통 종교를 바탕으로 해서 메시아 예수를 왕으로 섬기는 새로운 의미를 가지도록 정착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 선교 사역자들은 순수복음인 메시아 예수와 그분을 담는 종교문화적 요소를 구분하는 분별력을 지녀야 한다. 우선적으로 복음의 전달자가 기독교 복음 사역자라 할지라도 선교지 민족에게는 하나님 나라 복음의 실체가 되시는 메시아 예수만을 전해야 하는데, 혹시라도 메시아 예수를 전하면서 자신이 익숙해 있는 기독교적 종교전통도 같이 전한다면 복음 자체이신 예수는 메시아 그 본연의 하나님 나라의 왕이라는 신성한 이미지를 잃고 한낱 기독교의 종교 창시자로 오해되기 쉽다. 그런 경우에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했다기 보다는 기독교 왕국의 복음을 전한 결과가 되고 말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전달자는 메시아 예수만을 소개하고 선포하되, 선교지 민족이 그 메시아를 그들 종교 문화적 맥락에서 받아들이도록 소화하도록 격려하고 자유를 주어야 한다. 성령께서 그들의 현지 전통적 종교 문화적 상황 속에서 그들을 구속하시고 그들을 민족 복음화의 씨앗으로 준비시키시고, 그들을 복음의 전달자로 사용하실 것을 신뢰해야 한다. 초대교회 시대에는 우리 기독교 신앙의 조상들이 바울의 보호와 지도를 따라서 지혜롭게 그리스 로마 문화 속에서 복음의 현지 상황화 과정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냄으로써 마침내 서구 종교문화를 바탕으로 하는 기독교를 산출해 낼 수 있었다.

윌프레드 스미스는 특히 현대 서구에 있어 종교에 대한 많은 학문적 연구가 지닌 문제는, 종교를 고정 불변하는 형태로 취급하는데 있다고 주장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다양한 종교들이 그 도구적 형태 속에서 지속적으로 상호차용 및 상호작용을 해 왔음을 볼 수 있다.15) 실례로 서구 기독교는 유대교 출신 사도들로부터 복음을 받은 후 물론 그들의 필요에 따라 유대적 요소를 차입하기도 했지만, 메시아 예수를 전해준 유대교에 대해 고정 불변하는 형태로 취급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 자신의 비유대적 전통 및 관습적인 형태를 채용하고는 그 형태에 복음적 의미를 부여했음을 확실히 알 수 있다.

3-2. 상황화된 교회 공동체의 위력

 이 모델의 핵심 요소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은 후에 그들이 본래 있었던 환경을 떠나지 말라는 고린도전서 7:17-20 말씀의 지침이다.16) 구약에서는 나아만 장군이 그 모델이 된다.17) 그렇다면 기존의 부르심을 머물러야 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복음의 전파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선교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이다. 실제 선교지에서 사도적 전달자로부터 복음을 직접 듣게 되는 현지 사람들은 대부분 전달자가 나타내는 문화적 이질감에 그리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타문화권에서 온 낯선 외국인에 대해 크게 반감이 없는 개방적인 사람들이 우선적으로 접촉되기 때문이다. 둘째는 사도적 전달자들로부터 직접 복음을 듣는 경우 논쟁이나 문화적 이질감을 뛰어 넘을 수 있는 정도의 인간 관계적 친밀감, 초자연적 치유, 기도 응답이나 기적 등을 통해 메시아 예수를 경험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복음을 받은 초기 신자들은 전달자가 가져 온 이질적인 종교 형태를 그대로 따를 것을 요구받을 경우 비록 희생적인 대가를 치르게 되더라도 전달자의 형태를 그대로 모방한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이다. 현지 초기 신자들이 그들 이웃을 향하여 복음을 전하는 단계인 2차 접촉에서 만나는 현지인들은 대개 외래 문화나 종교에 대해 상당한 거부감을 갖고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기에 복음에 대한 반응이 자칫 부정적이 되기 쉽다. 수백 년 기독교 선교의 결과 아시아 선교지의 여러 민족들이 기독교로 인해 겪고 갈등이 바로 이런 종류의 것으로 사료된다. 수백 년 선교의 열매로 대개 기독교인 수가 전체 인구의 3-5% 를 이루는 정도에 머무르고 있는데, 이는 처음 복음을 받은 초기 신자들은 이질적인 기독교 종교 문화를 서구 기독교형태로 받았지만, 현지인 신자에 의한 현지 이웃들 대상 복음 전달 2단계 과정에서 많은 장애를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인정하는 장애 중 하나는 기독교가 전달하는 문화적 이질감과 반강제적으로 기독교 문화를 받아들이도록 강요받은 식민지 역사 속 경험적 아픔이 가져온 반기독교적 정서라는 것이다.

4. 나가는 말

사도 바울의 인사이더 복음 운동을 반대한 당시 바리새파 출신 제자들 주장대로 그리스-로마 회심자들이 메시아 예수를 믿고 나서 유대교로 개종했다면 그들의 구원에 문제가 생겼을까? 아니다. 과연 유대교 규례가 구원을 가로 막는 율법이었기 때문에 할례와 모세 율법을 지키지 않도록 가르쳤을까? 아니다. 유대교가 가지고 있었던 소위 율법은 천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당시 그리스-로마의 이교도 종교문화보다 훨씬 더 성숙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구원에도 지장이 없는데, 사회문화적으로도 훌륭했던 유대교 시스템을 따르지 말도록 지침이 주어진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문제의 핵심은 선교에 절대 필요한 바로 복음의 전달성 즉 기동성이었다.

사도 바울이 그리스-로마 시민들에게 예수를 믿으려면 전달자인 바울처럼 유대문화 종교를 도입하고 유대인으로 개종해야 한다고 요구했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서구 이방인들이 할례를 받으면서 예수님께 돌아올 수 있었을까? 아마도 현재 아시아 지역의 선교지처럼 그리스-로마 세계의 전체 인구 중 3-5%를 유대교로 개종시키는데 그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그 이유는 유대교 종교 시스템에 실려 전파되는 메시아 예수 복음은 유대사회에서는 효과적으로 전파되었지만 반면 그리스-로마 사회에서 그 전파성이 현저하게 떨어질 것이 분명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의 복음대로 메시아 예수를 그리스-로마 종교문화 시스템에 담아 전파함으로써 복음이신 예수는 그 사회에 큰 흐름에 장애없이 빠르게 전파될 수 있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전달자 위주가 아니라 수신자 위주이다. 수신자가 이해하고 받기 용이하도록 설계해 놓으셨다. 말씀과 성령님이 이방인 회심자들이 그들 신앙 공동체 안에서 분별력을 주셔서 그들 전통종교를 하나님께 충성하는 새로운 종교로 거듭나게 재구성하는 일에 지혜를 주실 것이다. 왜냐하면 그 문화에 사는 민족들이 복음으로 구속된 새로 거듭난 종교 안에서 그들 문화 속에서 나타나는 메시아 예수를 거리낌이나 부담없이 믿게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상황화된 교회 공동체는 민족공동체라는 반죽을 다 부풀리게 하는 누룩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 중심의 선교전략이다. 우리는 초기 기독교 신앙의 조상들이 지녔던 상황화라는 지혜와 분별력을 이어받은 기독교-하나님 나라의 복음 사역의 일꾼이다. 기독교-하나님 나라에서 훈련된 사도적 복음 전달자들이 기독교 역사 속에서 잃어버린 하나님 나라 중심 개척 선교 전략을 새롭게 정립할 수만 있다면, 바울이 유대교 사회로부터 그리스-로마 사회를 향해 나갔던 것처럼, 이제 우리 기독교 사회로부터 저 비기독교적 세계 주요 종교가 반죽처럼 준비되어 있는 드넓은 추수터로 나아가 열방를 복음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Kingdom of God 과 Christendom의 차이를 분별하는 지혜가 요구되는 선교 전환점에 서 있음을 상기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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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신바울 사역자는 1988년도에 서남아시아지역으로 파송되어 자비량하는 직업선교를 감당하였다.

2) The world’s religious make-up, % of total population 2101, Source: Pew Research Centre.

3) Howard Coward, Pluralism: Challenge to World Religion(New York: Orbis Books, 1985), 한국 종교연구회 옮김. p10.

4) 필자가 문맥을 살펴 삽입한 것임.

5) 서철원.1976.『종교 다원주의』, 총신대학교출판부: 서울 p33.

6) 행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7) 섬너(W.G. Sumner)에 의해 새로이 만들어진 용어로, 그의 저서인 『민속습성』(1906)에서 사용되었다. 개인이 자기 집단을 중심으로 해서 사물을 보는 관점이고, 자기 문화의 우수성을 믿고, 모든 다른 사람들은 그것에 준거하여 측정되고 평가된다는 뜻을 갖는다. 섬너는 이 용어를 내집단과 외집단의 구분과 관련하여 사용하였고, 그것을 애국주의와 국수주의 양자와 결합시켰다.[네이버 지식백과] 자민족중심주의 [ethnocentrism] (사회학사전, 2000.10.30, 사회문화연구소). 출처사회학사전, 고영복, 2000.10.30, 사회문화연구소

8) 사도행전 15:1-4를 보라

9) 서철원. 1976.『종교 다원주의』, 총신대학교출판부: 서울 p.8-9

10) Howard Coward, Pluralism: Challenge to World Religion(New York: Orbis Books, 1985), 한국 종교연구회 옮김. p202.

11) 요한복음 1:12를 보라

12) 고린도전서 7:20를 보라

13) 사도행전 9:2 를 보라

14) 사도행전 11:26를 보라

15) Howard Coward, Pluralism: Challenge to World Religion(New York: Orbis Books, 1985), 한국 종교연구회 옮김. p205에서 재인용

16) 고전 7:17-20 를 보라

17) 열왕기하 5:17-19 를 보라

 

*본고의 그림 및 도표는 전방개척선교 본문을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전방개척선교 2015년 1-2월호(vol.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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